우리 첫째는
감정에 관한 한 색맹 같다.
굉장히 섬세하게 느끼지만,
그 감정들을
까맣다와 하얗다로만 나눈다.
무섭다, 화난다, 놀랍다, 신기하다는 까맣다.
좋다, 선물받았다는 하얗다.
그 사이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이 감정이 까맣기만 한 건 아니라고 설명하기 전에
이미 까맣게 번진 마음부터 안아줘야 한다.
그게 요즘 부쩍 버겁다.
오늘도 그랬다.
“니가 던졌잖아!!!”
동생의 장난감을 망가뜨린 첫째,
그걸 본 아빠의 화,
그리고 그 사이에서
더 까맣게 물들어버린 아이.
“사과 안 해!!”
우리는 다그쳤고,
아이의 머릿속에는
까만 감정만 남았다.
이 아이는 분위기를 잘 읽는다.
분위기는 읽으면서 그 색깔의 다양함을 모른다.
까만색과 하얀색으로만 나뉜 세상은
아이에게 그저 두렵다.
아기였을 때는 그게 귀여웠다.
“사랑해” 하면 울고,
“미안해” 하면 웃던 아이.
그때는 몰랐다.
이 아이가 이렇게까지 깊이 느끼는 사람일 줄은.
그리고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하는지도.
오늘도 아이는
잘잘못보다
까만 기분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나는 그게 막막하다.
너의 감정은 어디까지 가 있니.
나는 그걸 어디까지 이해해야 할까.
아이는 점점 깊어지는데,
나는 여전히 읽기가 어렵다.
“속상하구나.
그런데 이건 까맣기만 한 건 아니야.”
그 말을 하다가,
문득 알았다.
나는 그동안
내 감정을 너무 모르고 지냈다는걸.
이유없는 서글픔,
막연한 두려움이라고만 불러버렸던 것들.
아이에게 가르치며
나도 그 감정들에게
하나씩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농도를 알게 된다.
나는 아이 셋을 낳고
조금 더 똑똑해졌다.
감정에 대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