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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토일 Feb 06. 2024

철권, 오스카와일드 그리고 아버지#5

낙선소설

 선우는 고무다라 공장에서 일했던 것, 할머니(미주의 증조모) 권유로 이발 기술을 배우던 때를 두서없이 말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치열했던 자신의 삶을 쓰라고 말했다. 미주가 진숙이 얻어 준 선우의 월셋방에 갔을 때 선우는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선우는 휠체어에 앉아 멀리 해가 떨어지는 동네 어귀를 바라보고 있었고 미주는 선우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선우는 우리 딸이 와서 기분이 좋다며 컵에 따른 소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선우는 조금 취했고, 미주도 취했다. 미주가 삼겹살을 두근이나 사 갔는데도 고기가 바닥을 보였다. 

 글 써서 뭐 될래? 선우가 물었다.

 작가 되지. 

 작가 아무나 하는 거 아닌데. 작가들은 가난하다는데. 

 옛날 말이야. 

 돈 많이 버냐?

 돈이 뭐가 중요해. 

 중요하지. 1등 해야 돈 벌지?

선우는 다시 소주를 벌컥벌컥 마시고 고기를 석점이나 입에 넣고 말했다.

 너 어릴 때, 집 앞 사거리 문구점 기억나지?

 응. 

 거기 뽑기 기계가 하나 있었잖아. 공 안에 1등부터 10등까지 종이가 들어있는 뽑기 기계. 기억나?

 응. 

미주는 구둣방 진이가 가지고 있던 핸들 모양 레이싱 게임기를 갖고 싶었다. 1등 상품이 레이싱 게임기였다. 그래서 100원, 200원이 생길 때마다 뽑기 기계 앞에 갔다. 

 저녁에 집에 왔는데 네가 안 와서 가보니까. 잠옷 바람으로 거기가 있더라고. 발로 공을 밟아서 종이를 꺼냈는데 8등인가, 7등인가 그래. 딱지 주는 거. 딱지를 받아 가지고 나오면서 엄청 실망해서 나오더라구.      

 선우는 지폐를 동전으로 교환해 뽑기 통 안에 든 플라스틱 공들을 전부 뽑았다. 부녀가 쪼그리고 앉아 뽑기를 했다. 그 안에 1등은 없었다. 선우는 미주의 손을 잡고 들어가 문구점 천장에 유혹하듯 걸려있는 게임기를 사주었다. 문구점 주인은 1등이 이미 나왔다고 말했지만, 선우는 미주를 안아들고 나오며 그건 거짓말이라고 귓가에 속삭였다. 1등은 원래부터 그 안에 없는 거라고. 뽑기 같은 건 하면 안 되는 거라고. 선우는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어린 딸의 다짐을 받고, 7살짜리가 못 알아들을 소리도 했었다. 

 인생이 원래 요지경이야. 

그리고 뽑기로 뽑은 2등, 3등 상품, 딱지와 불량식품을 봉지 가득 안고 집으로 갔다. 그 후로 미주는 사행성 높은 그런 류 게임은 하지 않았다. 1등은 그 안에 없다는 걸 그녀는 그 때 알았다.

 미주는 봉지에 남은 고기를 불판에 얹으며 고기가 좀 부족한지 선우에게 물었고 선우는 이만하면 됐다고 말했다. 고기가 익어갈 동안 부녀는 또 말이 없었다. 선우가 익은 고기를 뒤집었다.

 용서해라. 

미주는 뽑기 이야기를 할 때까지만 해도 선우의 존재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처럼 굴었다. 돌아온 선우를 대할 때마다 그냥 좀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차마 떨쳐낼 수 없는, 자꾸만 들러붙는 존재. 부모에게 자식이 그러하듯. 그런데 용서라는 말을 그것도 명령조로 듣고 나서 사춘기를 겪은 고등학생 때처럼 화가 났다. 불판에 삼겹살이 한껏 쪼그라들어 있었다. 

 뭐를. 

이제와서 뭐를.이라는 의미였다. 해준 것도 없으면서 바라는 게 많다는 생각이 치밀었다. 사실은 이런 원망과 분노가 해소되지 않은 채 그녀 마음 안 어딘가에 들어차 있었던 것이다. 미주는 컵에 남은 소주를 입 안에 들이붓고 그대로 일어나 집을 나왔다.     

 미주는 그날부터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 써놨던 소설들을 한 문장도 남김없이 모두 지웠다. 어두운 기억들이 마음 안에 닫아뒀던 상자마다 튀어나왔고, 거기서 꺼낸 것은 공터 주변에 폐자재처럼 그대로 쌓아뒀다. 그것이 그녀가 그녀의 정원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소설가가 말한 소설의 중심성에서도 점점 멀어져갔다. 용서라는 삶의 태도도 결정짓지 못하면서 인간 이해라느니, 인간 탐구라느니 써 내려가는 게 개소리 같았다. 그녀는 소설을 써보려고 억지로 수용적인 태도로 바로잡아보려고 했으나 도저히 용서가 안 되었다. 용서라는 말을 만든 사람은 사기당하기 좋은, 순진하고 덜떨어진 사람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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