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세상이 동전의 양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과서나 동화책에서 보던 세상은 반짝반짝거리는 면이라면 그렇지 못한(타의적), 그렇지 않은(자의적), 세상도 분명히 있다는 생각을 했다. 스무 살 겨울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란 걸 했다. 주말 알바였는데 잡화점 판매 보조였다. 시급이 2100원이었다. 최저임금에 대해서 모를 때였고 당시에는 2100~2700원이 관행처럼 여겨졌고 불의에 순응했다. 찍-소리도 못하고 맡겨진 일을 묵묵히 했다.
그로부터 10년.
나는 지역 노동청 근로복지과 사무실에 업주와 함께 앉아있었다. 근로계약서의 임금 부분과 퇴직금에 대한 부분이 달랐기 때문이다. 좋은 사장도 많이 만났지만 악덕 사장도 태반이었다. 10년 만에 내가 얻은 것은 근로기준법에 대한 얄팍한 지식과 독기뿐이었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나의 최소한의 권리이기 때문에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고용주가 최종적으로 합당한 임금을 산정했을 때 법과 정의는 살아있다고 생각했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권리를 쟁취한 나 스스로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5년.
외벽에 화려한 사이비 종교시설에서, 관리하고 있는 고객의 종교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나는 3년 전 세례를 받은 천주교 신자였다. 이때는 영업직을 하고 있었다. 이 고객은 계약서에 서명은 하지 않고 종교행사에 참여시킨 게 벌써 세 번째였다. 처음에 이 종교시설에 들어오기까지가 어려웠지 두 번째, 세 번째는 쉬웠다. 팀장부터 이전 담당자까지 종교행사에 참여시켰다. 팀장은 계약서에 서명을 받아오라고 했다. 나는 그날 안경이 산산이 부서지는 꿈을 꿨는데 찾아보니 가치관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꿈이라고 했다. 양심을 팔았고 계약 수수료를 얻었다. 계약서에 서명을 받아 들고 나오며 나 스스로가 멋대가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있다. 이런 어른이 되어야지, 한없이 멋있고 자상하고 여유가 넘치는 어른, 그래서 내가 겪은 일을 겪고 있을 이들에게 작은 위로의 말을 건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어른이 되어있었다. 슬펐다. 종교적 신념, 삶의 가치관은 안중에 없고 나고 자란 35년 동안 그렇게 변해있었다.
부러진다. 휘어진다.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모호하지 않고 선명해서 내 안의 중심이 잡혔으면 좋겠다. 앞으로 5년 후, 10년 후에 나는 또 어떤 어른이 되어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