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다녀오는 길

by 금토일

요즘은 내가 소설을 쓰고 싶은 이유, 소설가가 되고 싶은 이유에 대해 꽤나 자주 시간을 할애에 생각한다. 사실 일하지 않거나, 잠자기 전, 운동할 때, 걸을 때 생각한다.

작가가 되고 싶은 거면 장르를 불문하고 다른 글을 써보는 것도 방법일 텐데, 굳이 굳이 이렇게 게으른 사람이 소설이라는 걸 쓰고 싶은 이유는 뭘까. 이 생각에는 소설가의 깜냥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가가 될만한 그릇일까? 나는 왜 나라는 그릇에 소설을 담으려는 걸까? 깜냥도 안되면서.


서점에서 원하는 책을 찾지 못하고 허탕치고 돌아오는 길. 건널목 신호를 기다리며 인터넷 주문을 하고 거리의 풍경을 눈에 담아본다. 터미널 주변이라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많다. 사람구경하기가 좋다. 트렁크를 들고 버겁게 움직이는 행인, 맘처럼 속도가 붙지 않아 바삐 걷지만 트렁크 무게 때문에 몇 발자국 나아가지 못한다. 종종종.

안전모를 쓰고 허리에 공구들을 차고 있는 전기기술자처럼 보이는 두 남자가 앞서 걷고 있다. 높은 전봇대에 매달려 고압전선을 다루는 사람들을 언젠가 다큐멘터리인가 어디에서 본 적이 있는 고된 직업이다. 노동의 경중은 없겠지만 육체노동자들의 노고는 말할 수 없겠지.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두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길을 걷는 사람의 뒷모습은 나를 어쩐지 아련한 마음이 들게 한다. 사람에 대해 내가 느끼는 여러 감정 중, 그들의 얼굴이나 눈썹, 눈, 손이나 발에서 느끼는 감정들도 있지만, 뒷모습은 특히 더 짠하다. (애잔하다고 쓰려했지만 짠하다는 말이 더 와닿아서)


아뿔싸. 그들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눠 든다. 순식간에 불쾌한 담배연기가 바람을 타고 얼굴로 날아든다.

연민이 식어버리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는다. 나는 내 마음에 올라오는 마음을 들여다보고는 웃었다. 1초 만에 뒤바뀌는 얄팍한 감정에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져본다. 육체노동자에 대한 감사, 등짝에 대한 연민이 불쾌한 담배연기가 되는데 1초도 안 걸리는 데 글은 써서 뭐에 쓰려는 걸까.


유명해지고 싶고, 돈을 벌고 싶은 것인가. 맞다. 밑바닥에 그런 감정이 아주 없진 않으니.

자아실현을 하고자 하는 일신의 욕구라면 다른 걸로 해소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을 멈추기로 하자, 앞서 걷던 한 사람의 행인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성별을 알 수 없는 한 사람이 서점봉투를 들고 있다. 나이는 20대, 유행이 지난 떡볶이 단추, 빛이 바랜 낡은 코트차림을 보아 시선이나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일지도. 그의 손에는 서점봉투가 들려있었고, 두세 권의 책이 들어있었다. 시집으로 보이는 얇은 책도 보였다.


저 사람이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순수한 기쁨. 재미. 그게 전부인 즐거움. 100년, 200년 전의 작가가 "순수한 기쁨과 재미를 담아 당신께 보냅니다." 라는 카드와 함께 나에게 보내는 선물이라는 생각. 그 뿐. 그것이 전부. 인간에 대한 연민, 지나치게 현학적 태도, 인간 혐오에 대한 자기반성 같은 자기 현시적 욕구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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