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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2020년대의 청년
청년이라는 말은 언제 생긴 걸까? 나는 종종 말의 기원에 대해 생각한다. 청년, 청춘. 푸르다는 것. 왜 푸르다고 했을까? 푸르뎅뎅한 새싹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일까. 예전에 어디서 들은 말인데 신생아들은 눈의 흰자위가 푸른색이라고 한다. 나이가 들면 하얗게 변하다가 탁해진다고. 눈이라는 것은 사람의 혼을 담고 있고 아마도 저 푸르다는 것은 눈의 흰자위를 가리키는 것 아닐까. 나의 추측.
"빨래방이라는 것은 우리가 일상에 받은 고민이나 스트레스를 세탁하는 것으로, 어떤 연극에서 감명을 받아지었습니다. " 너는 이렇게 말했다. 말하자면 청년 고민상담소.
"앞에 놓인 색색깔 천 중 원하거나 마음이 끌리는 천을 하나 골라주세요."
심리테스트 같은 건가? 나는 별생각 없이 오던 길에 보던 눈길이 생각나 하얀색을 집어 들었다.
너는 한동안 사람들을 기다려주었다. 나는 너와 눈이 마주쳤고, 싱긋 웃었고, 나는 너의 짧은 바지, 그 발목이 보여 네가 짧은 바지를 계속 입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짤막하게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익명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닉네임과 간략한 소개를 해주시면 됩니다.
내 맞은편에 앉은 남자, 갈색 모자에 양털 집업을 입고 있어 한 마리의 곰 같은 남자였다. 그는 모자창이 만들어낸 그늘 때문에 다크서클처럼 보이는 피로를 달고 있었다. 처음 보는 나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했고, 나도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는 갈색의 천을 골랐다. 갈색의 모자와 깔맞춤일까. 갈색을 좋아하는지도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대학원생이었다. 아니 그랬던 것 같다.
그의 옆에는 그와 대조적으로 왜소한 체격의 남자가 연체동물처럼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있었는데, 그는 20대 초반의 앳된 얼굴이었고 눈썹이 짙고 곱상한 얼굴이었다. 검은색 천을 집었다.
그리고 내 오른쪽 옆에는 단발머리의 여자가 앉아있었는데, 곰돌이인지, 토끼인지 모를 푸근한 동물이 나염 된 티를 입고 있었다. 어떤 천을 골랐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 닉네임을 말할 때, 나는 둘 중에 고민을 하다, 결국 혜안이라고 대답했는데, 여기 오면서 보던 fps 유튜버 혜안의 이름을 그대로 말해버렸다. 왜냐하면 다른 하나는 눈오리였는데, 눈오리라고 말할 수 없었다. 왜 눈오리라고 묻는다면 대답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 그럼 한 사람씩 왜 그 색깔의 천을 골랐는지 말해주세요."
나는 버스에서 내려 10분 정도 걷는 길에 눈길을 만났고, 그래서 눈을 골랐다고 대답했다. 그때 너는 내게 고민이나 스트레스는 없는지 물었고, 나는 스트레스는 없으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무래도 일을 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대답했고, 사람들이 웃었다.
그리고 동성친구로 보이는 두 사람은 담백한 커플이었고, 곧 결혼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스드메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직장에 새로 온 신입직원이 자신보다 나이가 스무 살이 많아 일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스트레스가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데서 오는 불편함 보다는 이러이러한 부분을 이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 즉 그 사람의 경험이나 지식수준이 생짜 신입이 아니기 때문에 기준을 설정하기 모호해 가르치는데 두 세배는 힘이 든다고 말했고, 말 또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 스트레스라고.
우리는 공감했고 충분히 지지했다. 음. 아. 같은 소리를 내뱉어 동조하지는 않아도 그 이야기를 충분한 시간 동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한결 편안해 보였다.
다음 다음 사람은 갈색모자의 곰처럼 생긴 남자였다. 그의 목소리와 말투에 조금 놀랐는데 굉장히 섬세할 것 같은 목소리를 가져서였다. 동굴소리가 아니라 약간의 하이톤의 가녀린 목소리와 어미의 끝을 길게 늘이고, 중간중간 아, 어, 음을 섞어 말하는 것을 보면 말을 하면서 생각을 많이 하는 모습이 그렇게 느껴졌다.
그가 갈색을 고른 이유는 그의 어머니는 현재 치매를 앓고 있고, 노모의 대변을 치우는 일이 그에겐 무척이나 힘든 일이라고 했다. 그 자신이 일평생 비위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는 것,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라는 것을 매번 상기하지만 매일 곤욕스럽고 힘들며, 이런 약한 자신을 계속 마주할 때 마다 괴로움이 든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존엄, 자신의 존엄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암병동에서 수술부터 회복까지 3주 동안 중환자실에서 막 일반병동으로 옮겨진 70대의 할머니와 간병인을 만났는데, 할머니는 드시는 것 없이 변을 자주 보셨고, 그게 또 병동의 식사시간과 겹칠 때면 아무리 커튼이 처져 있어도 힘들었다. 간병인도 힘들었는지 묵묵히 참아내지 못하고 말로써 변, 대변보셨어.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그러니까. 그게 자꾸만 상상이 되다 보니 냄새가 나는 것 같고, 나중에는 정말이지 속이 뒤집힐 것 같은 느낌까지 들어 헛구역질을 할뻔한 걸 겨우 참았다. 그러니까. 겪어보지 않았다면 나도 정말 몰랐을 것이다.
그는 약간 울먹였고, 우리는 또 묵묵히 들어주었는데. 마음과 마음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전해진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청년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생긴것인지는 몰라도, 푸르뎅뎅한 우리가 짊어져야할 무게 들은 조금은 버거워보였다. 온풍기로 실내에는 훈기가 감돌았지만 겨울의 냉기는 어쩔 수 없었고, 너의 드러난 발목은 시려보였으며 나는 바라볼밖에 별다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