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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빨래방
즐겨찾는 게임유튜버의 방송을 보며 걷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하차해서 10분 정도 걸으면 되는 길이었는데, 7시면 초저녁이지만 겨울이라 밤 같아, 거리는 추웠다. 길이 미끄러워 위태롭게 걸으면서도휴대전화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도파민 중독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영상을 못 끊는 걸 보면 중독이 맞는 거겠지.
방금 전 온풍기를 틀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하라서 더 추운 건가. 땅밑이 원래 더 따뜻한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며 둥그런 원 모양으로 깔아놓은 9개의 방석을 봤다. 왜 캠프파이어나, 이런 모임은 동그란 형태로 좌석을 만드는 걸까? 원시부족 때부터 인류는 둘이 모이면 마주 앉고 셋 이상 모이면 둘러앉는 걸까. 서로의 얼굴을 잘 보기 위해서? 그러고 보면 원이라는 건 참 대단한 힘을 갖고 있다. 몇 명이 모여도 동그랗게 동그랗게만 만들면 서로를 연결할 수 있고 어느 방향에서건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잘 볼 수 있으니 말이야. 나는 그중 4시 방향에 앉았다. 내가 좋아하는 애매하고 모호한 그런 방향.
사실 이 모임에 참여하기 전에 너는 간략하게 나에게 빨래방이라는 심리극 치료모임을 소개해주었는데 이 번 회기의 마지막 모임이라고 했다. 다음회기가 진행될지는 미지수. 그러니까 나는 아마도 이 모임이 일회적이라서 참여하는 것이 더 괜찮다고 느꼈는지도. 한 번 해볼까? 딱 한 번. 그런 생각.
원의 중심에는 여러 색깔의 천이 예쁘게 말려있었다. 색색의 머플러를 둘둘 말아 진열해 놓은 것 같달까. 흰색, 갈색, 파랑, 초록, 노랑, 빨강. 뭐 하는 물건인고? 싶은 호기심에 한동안 천들을 보다가. 금세 흥미를 잃고 다시 휴대전화를 켜던 찰나 누군가 지하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일단 못 들은 척하기.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는 쪽을 봤는데 커플인지 친구인지 모를 두 명의 남녀가 걸어 들어왔다. 커플이라면 담백한 커플, 친구라면 내적 친밀도가 높은 동성친구로 보였다. 애매하군. 안녕하세요.
기다리고 있으니 서넛, 네댓. 사실 총 9명이 온다고 했는데 지금 기억나는 것은 너와 나, 그리고 5명 정도로. 일곱 명만 기억이 난다. 나머지 두 명은 기억 속에서 증발해 버렸는데. 얼굴도, 에피소드도 떠오르지 않는다. 완벽한 기억은 존재하는 걸까. 분명히 아홉이 왔던 거 같은데, 둘은 도대체 검은 형체만 남고 어디로 증발해 버린 건지. 거기 오셨다면 잊힘에 잠깐의 애도를.
마지막으로 네가 들어와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11시 방향에 앉았다. 네가 이 모임 이름이 왜 빨래방인지를 말하는 것으로 모임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