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을 쥐어짜 비틀다 보면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운동이 너무 가기 싫다. 매일 가는 것도 아니면서, 일주일에 딱 3번 가는건데 정말 가기 싫다. 유병자, 유방암 수술 후 3년 차이기 때문에 운동을 아예 안 하고 싶을 때도 운동을 가야만 한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그 의무와 속박이 나를 더 힘들게 하는지도 모른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핑계를 만들어 안 가고, 오른쪽 무릎이 아프면 또 그건 그거대로 핑계로 써먹었더니 한 달에 한 번 운동을 간 달이 있었다. 작년 10월부터 12월까지 석 달은 지옥 같았는데 무기력하고 너무나 힘든 달이었다. 지나고 나서 보니 번아웃이 온걸지도?
요 근래는 다시 운동을 가고 있다. 운동이 미치도록 가고 싶기보다는 3년 차에 접어드니 약간 안 하면 몸이 이상한 정도. 그래서 이 운동의 힘 운동의 내 마음을 변화시킨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뭐 하나 꾸준히 하지 못하고 꾸역꾸역 살아내는 내 마음을, 안 하면 이상한 느낌이 들 정도로 바꿔준 운동의 힘에 대해.
오블리크는 약간 불에 구워지는 오징어 자세로 상체를 비틀며 하는 운동인데, 오블리크를 하려면 우선은 척추를 꼿꼿이 세워야 하고, 그 과정에는 상체의 근육들, 특히나 복부근육을 많이 사용해야 하는데, 내 몸은 자꾸만 늘어져서 기술어지도 중력의 방향에 내맡겨지는데 그것을 제어하기 위해서 오로지 복무와 기립근으로 버텨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어깨의 근육이나 팔근육을 사용하면 안 된다. 그러니까, 내 몸은 어깨와 팔근육을 사용해서 쉽게 상체를 들어 올리고 싶어 하는데 그것을 내 의지로 통제해야 하고 그 와중에 복근과 등근육을 써서 몸을 좌 우로 15도씩 움직여 들어 올려야 한다.
30초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나는 문득 운동이 저항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박약한 의지와 내 강인해지려는 또 다른 의지의 충돌, 운동을 가기 싫은 의지와, 운동을 가야만 하는 다른 의지사이사이에 일어나는 저항. 그런 생각을 하면 사실 운동의 원리는 쉽다. 무게를 이기기 위한 저항, 중력을 견디기 위한 저항.
올해 초에는 고통(쇠약, 통증)을 다른 고통(상대적으로 빈번하지만 견딜만한 고통)으로 상쇄시키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렇다 보니 운동 가기가 더 싫어졌는데, 고통이 아니라 고통에 맞서기 위한 저항이라는 생각을 하니 내가 하고 있는 행위가 약간은 신성해지기까지 했다.
어제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수분정도 지속했지만 실행하지는 못했는데, 그러는 동안 요즘 하는 이러한 저항에 대해 생각했고, 그 수분 동안의 내 상태 아무것도 안하고 멈춰있는 상태를 죽음에 대한 저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지난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지만 살아있다는 것 자체는 죽음에 대한 저항이니까. 그렇기에 오롯이 그대로 존재를 감내하는 어떤 행위든 그 자체로 신성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