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역을 생각할 때마다 엄청나게 높고 많은 계단들을 떠올리곤 했다. 나는 이 계단을 오를 때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도저히 못 올라갈 곳이라고 투덜거리곤 했다. 하지만 미워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정이 드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처럼, 너무 높아 미웠던 계단도 어느 순간 정이 들었다.
사실, 부암역에 큰 볼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괜찮은 주거지에 숨겨진 맛집도 꽤 있는 조용하면서도 예쁜 동네이지만, 더 많은 편의시설과 여러 가지 볼거리를 가진 다른 곳들에 이미 한눈을 팔고 있는 나로서는 사실 부암역은 그렇게 애착이 가는 지하철역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암역 이야기를 꺼낸 것은 부암역 근처에 내가 좋아하는 장소가 있기 때문이다.
부암역을 자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부산시민공원 때문이다. 부산시민공원은 '도심 속의 자연'이라는 테마가 있다면 어디든 가보고 싶어 하는 나로서는 너무나도 좋은 장소이다. 정말이지 어느 계절 어느 시간대에 가도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어 부산에 산 이후로 꾸준히 방문하고 있는 곳이다. 나는 주로 부암역을 지나 시민공원에 가는데, 오는 방향에 따라서 부전역을 통해서 갈 수도 있다.
오늘은 너무 멋진, 그래서 나만 알고 싶지만결코 숨겨지지 않을(?) 나의 장소, 부산시민공원 이야기를 하려 한다.
부산시민공원의 규모는 473,911㎡ 정도인데, 직접 걸어 보면 공원이 참 넓고 트여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공원에 들어가는 입구도 여러 곳이며, 한 개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방으로 여러 길들이 얽혀 있어 길을 선택해서 걸어 보는 재미가 있다. 시민공원의 모든 길을 그날 다 밟아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될 만큼 여러 개의 길이 있다. 각각의 길들은 모양도 폭도 주변 풍경도 너무나 달라서 그 짧은 순간에 길을 선택하는 와중에도 선택 장애에 걸리곤 한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가지 않은 길이 너무도 아쉬울 것만 같은 곳이다.
시민공원이 나의 최애 장소인 가장 큰 이유는 이 공원을 통해 부산이라는 도시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원에 들어선 순간 더 잘 보이는 탁 트인 파란 하늘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도시의 아름다움을 두 배 세 배로 느끼게 한다.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 건물들 사이에서 본 하늘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오히려 도시에서 조금 떨어져 그 장소를 바라봄으로 인해, 사실은 그 도시가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장소인지를 깨닫게 해 준다.
공원 속에는 다채로운 자연이 그대로 담겨 있다. 사람의 힘으로 빚어낸 화분의 꽃도, 땅과 물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여러 나무와 풀들도 모두 다 아름답다. 봄과 가을엔 계절을 담은 꽃들로, 여름에는 초록초록한 풀들로, 겨울에는 흑백의 감성적인 풍경들로 공원이 가득 찬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고 싶은 풍경들로 가득하다.
선명하게 흩날리는 봄꽃,
여름의 해바라기.
낮과 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고 감을 반복하는 동안 나는 줄곧 시민공원을 방문하곤 했다. 공원 곳곳에 내가 웃고 울었던 흔적이 묻어 있어 오늘도 공원을 걸으며 그것을 줍느라 긴 시간을 보냈다. 부산진구에 오게 될 일이 있다면, 늘 가던 도심 중앙에서 약간 지루해졌다면, 한 두 정거장을 더 지나쳐 부암역에 내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