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생이 많다

태어나서 좋긴 하지만

by 몌짱이


스스로 태어나길 소망해서 생명을 얻게 되는 사람은 없다. 그런 이유에서, 살아가면서 태어남을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 삶은 꽤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오롯이 자신의 태어남을 축하할 수 있는 삶, 그리고 그 속에서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후회 같은 건 안 해도 되는 삶, 그 정도면 충분히 축복받은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 태어남으로 인해 일정한 크기의 고난이 주어진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사람은 늘 행복할 수만은 없고, 자신에게 주어진 적당한 슬픔과 기쁨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사실에 절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사람마다 그 슬픔과 기쁨의 크기가 다르고 우리의 노력에 의해서도 이 두 가지 가치의 크기가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슬픔과 기쁨을 자신이 통제할 수는 없다.





뒤 돌아보지 않기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유형의 사람이다. 나는 어떤 일이나 과거의 상황에 대해서 후회 같은 건 잘 안 하는 편이다. 과거의 '그' 시점에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고, 그 순간부터 나는 그 결정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도 내가 같은 선택을 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태어남에 대해 후회하는 감정 같은 건 가질 리가 없고, 그래서 나는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물론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은 행복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슬픔이나 기쁨의 크기에 대해 그다지 예민한 편이 아니다. 대신, 주어진 감정에 솔직하게 대응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내가 지금 좀 고생하더라도 태어난 쪽이 훨씬 마음에 들게 된다.


태어나 줘서 고마워


'태어나 줘서 고마워'라고들 말한다.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낭만적인 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처음에 말했듯이 스스로가 태어나기를 갈망하거나 태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았더라도, 태어나서 여태껏 힘을 내어 살아줘서 고맙다는, 아름다운 표현이다. 모든 사람의 삶과 생명은 결국 아름다운 것이고 아름다운 것은 오래도록 지켜져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새삼스레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생명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 소중함은 자기 존중과도 관련이 있다. 자신의 시작을 축복하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어려운 일이지만 자라면서, 나아가 자립하게 되면서 자신이 지나온 삶을 축복하고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자신이 좀 부족하더라도 그런 좋고 나쁨, 혹은 옳고 그름의 가치에서 벗어나서 자기 자신을 존중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할 것이다. 자신을 존중하게 되면 세상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이 소중하고 가치 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가치 있음'은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자체에 대한 '기쁨'으로 승화된다.



마음대로 해도 되나요?


사람은 태어나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단순한 사실이 사람을 더 잘 살게 만들어준다. 만약 개개인의 운명이 분명히 정해져 있고 자신의 슬픔과 기쁨, 행운과 시련의 크기가 정해져 있다면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굳이 열심히 살 필요도 없고, 노력해서 무언가를 얻기를 소망하는 일도 부질없다. 하지만 삶은 어떠한 가능성이 전적으로 열려 있는 영역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개인의 환경에 따라서 어쩔 수 없는 굴레에 굴복해야 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삶의 요소들은 무조건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들은 아니다. 그러므로 비로소 사람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고,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삶은, 뒷 일을 예측할 수 없고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에 꽤 매력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잘' 살기 위해 무언가를 시도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그 삶을 지켜내고자 하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움직이는 것


하지만 아무리 여러 사람들에게 축복받고 태어나 기쁜 마음으로 생을 시작하였다 할 지라도 사람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힘든 마음을 부여잡고 넘겨야 하는 고비도 여러 개가 될 수 있고 슬퍼해야 할 일도 가지가지다. 게다가 삶의 끝은 누구나 '죽음'이라니, 결코 쉽지 않은 것이 삶인 것만 같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했을 때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어서 365일이 '행복'에 치우쳐 있다면 과연 그것을 행복으로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적당한 슬픔, 적당한 힘듦, 적당한 고난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힘든 건 분명히 힘든 것이고 우리가 반드시 힘들게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차피 힘듦을 피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면, 우리가 그런 가치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에게 좋을지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좌절하지 않는 것, 그리하여 비록 뻔한 이야기일지라도 삶의 날카로운 가시마저 안고 살아갈 수 있는 것,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크게 상처 받지 않는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삶이 행복할 때도 고달플 때도 있지만 우리는 조금씩 살아내고 있다. 조금 더 힘을 내면, 살아 '내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을 즐기며 즐겁게 사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때로는 스스로에게 '내가 고생이 많다'라며 위로하게 되는 순간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삶의 주인공이라는,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크게 애쓰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해서 무작정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삶을 가장 크게 기뻐하고 축복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삶은 우리의 마음과 행동에 의해서 엄청나게 큰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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