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이 낯설어도 슬퍼하지 않아

by 몌짱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진 엄마가 끓여 놓은 보리차나 둥굴레차 같은 걸 주로 마셨다. 고소하면서 달달한, 잘 물리지 않는 익숙한 맛이었다. 보온병에 담아 마시기도 하고, 기숙사에 있을 땐 티백을 우려내 차로 마시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생이 되고 자취를 시작하면서부터 생수를 마실 일이 많아졌다. 물을 끓이더라도 딱히 뭘 넣어서 끓일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밖에서는 작은 병에 든 생수를 사 먹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익숙했던 보리차나 둥굴레차 같은 끓인 물들을 지금은 잘 즐겨 마시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 맛없게 느껴져 오히려 속이 더부룩했던 생수가 지금은 더 맛있게 느껴진다.





30대 중반 즈음이 되고 나니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어지고, 반대로 낯설었던 것들이 익숙해지는 시점을 제법 많이 마주한다. 예를 들면, 어른이 되어 혼자 살게 되면서 여럿이 함께 사는 것에 익숙했던 것이 낯설게 되고,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면서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게 또다시 익숙하게 다가오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어쩌면, 삶에 일정한 변화의 주기가 있어서 내가 느끼는 것들 또한 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일일이 말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이유는, 사람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끊임없는 변화를 맞이하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우리가 삶에서 부닥치는 것들은 거의 모두가 새로운 것이다. 아예 똑같은 상황이 존재하는 것은 어렵다. 사실 우리가 매일 학교에 가고 회사에 가더라도, 그에 따른 부수적인 상황은 다 다를 수 있다. 오늘은 어제와 다른 일을 겪거나 다른 사람을 만날 가능성도 있다. 변화에 대처하기 힘듦을 느끼는 사람들도 사실은 무수한 변화 속에서 자신을 지탱해 나가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과정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익숙했던 것들이 문득 낯설어짐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당황하기도 한다. '예전엔 이랬었는데', '예전엔 이게 편했는데' 등등의 생각으로. 그리고 나 같은 경우는, 이러한 변화들이 조금은 서글펐다. 좋아하는 물 맛이 변했을 때도, 자취를 시작하며 혼자 사는 것에 적응했을 때도, 그리고 내게는 소중했던 수많은 익숙함의 상실들도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모든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익숙하던 것들에 집착하던 태도를 버리고 새롭게 다가오는 내일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또다시 차츰 익숙해져 오롯이 내 것이 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낯선 노력이었는데, 나중에는 그것마저 익숙한 것들이 되었다.







익숙해진 것들을 찬찬히 둘러본다. 모든 것이 소중하다.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하지만 만약 그 모든 것이 조금씩 변하고 결국 낯선 게 되더라도 슬퍼하지 않을 생각이다. 변화하는 것들을 미워하지 않았기에 새로운 것들을 내 것으로 맞이할 수 있었고, 덤으로 또 다른 '익숙함'을 선물 받아왔다는 것을 이젠 잘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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