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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몌짱이 Aug 07. 2022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정말로




순간 속에 이렇게 흔들리지 않고 가만히 서 있으면 다 해결될 줄 알았던, 그리하여 수많은 시간이 나를 맞받아쳐도 끄떡없을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내가 우주 속의 아주 작은 존재라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던 아주 날 것의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들은 정말이지 이 별 위의 바닷물을 다 마실 수 있을 만큼 몸집도 크고 힘도 강했다. 하지만 그 시간도 어느덧 늙고 힘이 약해지기 마련이었고, 내가 그 바닷물을 대신 마셔야 할 지경이 되었다. 그걸 알게 된 순간이 내 삶에서 가장 두려운 순간이었다. 




부산에 사는 나는 이따금씩 바다에 간다. 시퍼런 파도의 무리를 보며 딱히 할 필요는 없는 생각을 한다, 나는 어쩌면 도망친 것일지도 모른다고. 한편으로 또 생각한다, 도망친 게 정말이지 잘 된 일이라고. 내가 미쳐 마시지 못한 이 바닷물 속에서 누군가는 헤엄치고, 누군가는 서성이는 파도를 보며 위안을 얻을 것이 분명하니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그러다가도 문득 그 모든 게 핑계 같게 느껴지는 날에는 바다를 떠나 사람이 많은 도시로 갔다. 바닥에 깔린 블록을 곱씹으며 한 걸음이 수천 걸음이 되도록 걸었다. 생각을 하는 것이 사치가 될 만큼 빠르게, 하지만 지치지는 않을 만큼 걸었다. 그렇게 또 하루씩 시간이 가고 나도 묵묵히 걸었다. 결코 힘들지 않았다. 




그 모든 순간에 나는 나에게 진심이었을까. 두려움과, 그 두려움이 필요로 한 위로를 스스로에게 해 줄 수 있는 존재였을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에게 '다 괜찮아'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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