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몌짱이 Nov 08. 2022

나 지금, 시간을 걷고 있어

새벽을 서성이는 당신에게




새벽이 찾아오면 반가운 친구를 맞이하듯 눈을 좀 더 크게 뜨고 하얀 손을 내밀어본다. 조금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찹찹한 바람이 스멀거리면 그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몸속에 소복소복 눈이 쌓이는 것 같은 차가움도 지금이 가을 새벽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아 그저 계절에 몸을 맡기고픈 기분이 든다. 



언제부턴가 이 시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하늘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서 어둠을 단란하게 밝히고 있는 몇몇 조명들과, 멀리 떨어진 도로에서 허둥지둥 움직이는 자동차들을 보는 일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불면의 밤이 마치 작은 저주 같았던 시간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 저주마저 그저 짓궂은 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니, 어쩌면 이 시간을 내게 주려고 누군가가 만들어낸 어떤 서툰 선물 같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망상들도 밉지 않게 느껴지는 이 시간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 



새벽을 즐길 때엔 작은 소리의 음악을 곁들여도 좋다. 낮에 듣는 음악과는 또 사뭇 다를 테니까. 음악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새벽에 듣는 음악은 그 악보를 친절하게 내어준다. 왠지 모르게 눈에 보일 것만 같은 음악들을 직접 손에 잡아볼 수 있는 시간이다. 약간씩 어깨를 들썩일 수도 있고 혀 끝으로 가사를 음미할 수도 있다. 



때로는 인생이 혼자 깨어 있는 새벽처럼 외로울 때도 있을 것이다. 새벽은 하얗고, 아주 조그맣고, 외로운 게 사실이니까. 그저 그렇게 생각할 무렵의 나는 잠이 오지 않아도 꾸역꾸역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잠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더 외로울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막연한 기다림보다, 차라리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것을 선택했다. 이 찰나의 시간과 마주하는 과정이 왜 그리도 어려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이 시간이 두렵지도 외롭지도 않다. 



새벽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루의 시작과 끝이 교차하는 이 시간은 너무나도 우아하다. 모두를 곤히 잠재울 수 있는 따스함이 있으면서도, 아직 잠들지 못하고 깨어 있는 이들에겐 섬세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 새벽의 시간을 모두에게 공유하기엔 사실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새벽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그리고 더 긴 글을 쓰기엔 이 새벽이 너무 짧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도 서투른 나를 안아 주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