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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왈이의 마음단련장 Feb 14. 2021

통제감을 잃었을 때는
브레이크를 매만지기

[쉬는 법을 몰라서요 #03]

요즘 들어 가장 '바쁘다'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는데요. 바쁘다고 말할 때 마음에서 일어나는 약간의 안도감, 뿌듯함이나 우월감을 느끼는 것에 경계심이 큰 편입니다. 사실 기준에 따라 안 바쁜 사람은 없고, 마음이 바쁘다는 건 여러모로 별로 매력적인 상태가 아니잖아요. 빽빽하게 채워 넣고 있다는 게 제대로 살아가고 있단 걸 증명하는 지표는 아닌데도, 자칫 바쁨이 주는 안락한 느낌에 홀라당 빠져버릴 수가 있더라고요.


또다시 '바쁘다'를 노래하는 저의 마음을 좀 들여다보기로 했어요. 일 다음 일, 일 다음 일. 일에 대한 모든 생각이 폭포처럼 쏟아져요. 생각 폭포가 제 마음을 가리고 있었는데, 사실 저를 가장 무겁게 짓누르는 건 무서움이었어요.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공포를 연료로 태우고 있었던 거죠. 결코 마주 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상황을 그려두고, 그걸 피해야 한다는 다짐이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내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정확히 뭔지도 모른 채 공포에 불을 지피며 나아갑니다. 앞으로, 앞으로.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에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에 타고 있다고 생각하며 일할 때 마음이 고꾸라져서 다시 일어서기까지 오래 걸렸거든요. 안 좋은 질의 연료를 지속적으로 차에 넣어주다 보니 가끔 말도 안 되는 양의 일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해낸 적은 있어도, 오래도록 건강하게 달리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일에 쫓길 때 브레이크를 매만지는 저만의 의식이 생겼나봐요. 내가 두려워하는 그 끝은 어디에 있는지, 끝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마주해보는 거예요. 시속 140킬로가 넘어서야 갑작스럽게 브레이크를 밟는 대신, 속도를 천천히 올리고 있을 때 브레이크를 매만지는 것이 속도 조절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창업한 이래로 제가 쭉 두려워하는 것은 이 일의 끝이었어요. 마음단련장의 끝. 이 일을 정리하는 날은 어떤 식으로든 오겠지만, 전혀 준비되지 않은 끝은 여전히 무섭게 느껴지거든요. 


어제는 마지막 날의 편지를 썼어요.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요. 이건 이렇게 팔고, 이건 누구 주고, 이제까지 해온 것들은 어떤 식으로 정리해두고. 저에게 이렇게 말해줬어요. '나에게는 언제나 브레이크가 손에 있어. 이 모든 일에도 끝이 있어. 나에겐 오늘 하루만 있는 게 아니라, 한 달 뒤, 일 년 뒤, 운이 좋다면 10년 뒤가 있어.'


안녕하세요. 왈이의 마음단련장 김지언입니다.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왈이의 마음단련장은 문을 닫습니다. 세 명이 여섯 명이 되고 다시 두 명이 되는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왈이를 만나 출근길 표정을 바꾼다는 황당한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왔지요. 카펫을 청소하고, 먼지를 털고, 향을 피우고, 컵을 닦으면서 공간을 매만지는 기쁨을 누리기도 하고, 멍상가들을 만나 마음을 이야기하며 같이 휴지 산을 쌓기도, 칠렐레 팔렐레 뛰어놀기도 했네요.

덕분에 무서워도 발을 뗄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저희가 어떤 길을 어떻게 걷게 될지는 좀 더 열어두고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이제까지 저희 둘을 닮은 서비스를 운영해왔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맞닿아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되겠죠. 또 만날 거예요.

마음단련장에서는 끝을 맺는 의식이 있는데요. 아닛짜(Anicca)라고 말하며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누는 거예요. 언제까지고 영원할 것 같은 것도 일시적이잖아요. 시작된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는 의미인데, 자주 잊어버리곤 하는 최소한의 진실이죠. 마치 오늘을 위해 이런 의식을 준비한 듯 자연스럽게 느껴지네요.

여러분, 모두 아닛짜.


생각은 모호하게 남겨둘 때 가장 압도당하기 쉬운 것 같아요. 약간의 용기를 내서 귀신 소리가 나는 복도에 나가보면, 내가 무서워하던 게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 소리구나 싶잖아요. 이유도 모르고 맹목적으로 달려 나가고 있다면 브레이크를 한번 매만져볼 때가 아닐까요? '그래, 끝이 있으면 뭐 어때. 아님 말고!'라는 말이 튀어나올지도 몰라요.


내가 정말 무서워하는 것의 실체를 두 눈으로 바라보고 나니 어떠셨는지 제게도 꼭 들려주세요. 어떤 끝은 허무맹랑해서 헛웃음이 나기까지 하거든요. 그리고 이렇게 끝을 그려봤을 때 지금 내게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든다면 무서워도 내 자리에서 변화를 만들어내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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