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매일 만나는 내 안의 까만 토끼
토끼는 혼란스럽다.
토끼는 언제나처럼 아침을 맞이했다. 유난히 햇살이 따뜻한 날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누군가가 또 있었다.
토끼는 두려웠다.
“저리 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래서 더 두려운 존재에게 토끼는 소리쳤다. 소용없었다.
토끼는 그것에게서 벗어나려고 열심히 도망쳤지만, 정체불명의 거대한 까만 토끼는 항상 바로 뒤에 있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나무 뒤에 꼭꼭 숨어봐도..
까만 토끼를 따돌릴 수는 없었다.
그 거대한 까만 토끼는 바로 자신의 그림자였기 때문이다.
나를 항상 쫓아다니는 그림자 역시 나의 일부로 인정해야 되는 것은 아닐는지. 내 안의 어둠과 우울, 냉소가 나를 뚫고 나오는 것을 볼 때마다 그건 내가 아니었다고 애써 부정하며 도망만 다닌 건 아니었을까.
외면하고 싶은 그림자가 때로는 나를 지켜주는 무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본 적이 없지만, 서양의 동화에는 용에게 붙잡힌 공주를 구하러 가는 왕자가 나온다고 한다. 꼭 왕자는 용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해야 하는 건지, 왕자와 공주와 용이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