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씨 Jul 04. 2017

이름의 의미

'나'로 산다는 것

좋든 싫든, 명함은 당신의 현재를 말하고 이력서는 당신 삶의 역사를 말한다.
당신 삶의 스토리는 늘 이렇게 일과 함께 전개된다. 필연적으로.

- 제현주,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언젠가부터 자주 듣게 되는 말 중 "인생영화"라는 단어의 정의가 인생 최고의 영화가 아니라 "인생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게 하는 영화"라고 한다면, 나에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그렇다.


(Source: flickr)


유바바에게 이름을 빼앗기고 센이라는 낯선 이름을 얻게 된 치히로에게 하쿠는 경고한다.  


이름을 잃어버리면 다신 돌아갈 수 없어.


곱씹어볼수록 유바바가 지배하는 세계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직업의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살아남기 위해선 모두가 일을 해야 한다. 일하지 않고 먹기만 하는 자는 가축으로 변해버린다. 어쩌다가 신들의 세계에 잘못 발을 들인 치히로는 살아남기 위해서, 돼지로 변해버린 부모를 구해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 일을 구해야 한다. 거절당한다 해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구해야 한다. 하기 싫은 일이어도, 힘들어도 절대 본심을 내비치면 안 된다. 유바바의 유도신문에 넘어가 '싫다'거나 '돌아가겠다'는 말을 했다가는 석탄으로 변해 없어질지도 모른다. 꿋꿋이 참으며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만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게 된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 아닌가.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야만 멀쩡한 사회인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 그 모진 풍파를 다 이기고 어느 정도 경력도 쌓이고 실력도 생기면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을 거라고들 한다. 일단 꾹 참고 직업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나야 비로소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만 같은 것이다.


학교를 벗어나 온갖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에 어떻게 해서든 적응해야 한다. 적자생존. 스스로도 이 곳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마치 내가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 하쿠가 건네주는 그 세계의 음식을 먹지 않으면 완전히 사라지고 마는 치히로의 처지와 같다.


(Source: Vimeo)


모든 것이 두렵기만 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쿠만이 치히로의 본래 이름을 불러준다. 우리는 모두 이름이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그 이름 앞에 다양한 수식어가 붙기도 하고, 이내 이름은 빼고 직급이나 직책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우리가 하는 일과 그 일의 역사가 우리의 정체성이 되어버린다. 내가 내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스스로 정체성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남들이 부르는 대로 불려지게 되는 거다. 원래 나는 어떤 모습인지, 내 안에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와 상관없이.


내가 하는 일이 별 볼일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면, 그냥 그렇게 살아지는 거다. 이 낯설고 차가운 일의 세계에서 진짜 내 모습을 알아봐 줄 하쿠를 그저 기다리고만 있기에는 시간이 생각보다 별로 없다.


선택하면서 살 것인가, 선택당하면서 살 것인가. 세상에 어떤 존재로 기억될지는 전적으로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


모든 것이 버겁고 힘겨운 치히로에게 기운 내라며 하쿠가 마법을 걸어 만든 주먹밥. 입맛이 없지만 억지로 욱여넣으며 치히로는 결국 서러움에 북받쳐 엉엉 울어버린다. 그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는 것이다.


졸업 후 두세 해가 지난 때였나.. 왠지 그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내가 원래 살던 세상 바깥으로 혼자 뚝 떨어진 듯한 기분.


지하철 구석탱이에서 아이팟 부여잡고 눈물을 훔치게 만들던 그 영화의 음악이 오늘도 나를 울리는구나..


Name of Life



작가의 이전글 느낀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