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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씨 Jul 24. 2017

소년이 온다

조용하고 날카롭게 꽂히는 문장들

읽기 전에 충분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그 소설. 소설가 김영하는 "독자들이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그 과정을 통해서 자기감정을 발견하고, 타인을 잘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문학이라고 했다. 이 말에 비추면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나에게 충분히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섣불리 감상을 이야기하기도 조심스럽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적어도 스스로의 무지함을 조금이나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는 할 수 있을지도.


솔직히 말하면, 작가가 해외 유명 문학상을 탔다더라 하는 뉴스로 떠들썩할 때 <채식주의자>를 사면서 우연히 같이 산 책일 뿐이었다. 왠지 주변에 좀 배웠다 하는 사람들이 다들 읽는 것 같으니 나도 봐야 하나 싶은 이유도 있었다. 5.18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나 사회적 인식이 크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분명 학교에서도 근현대사를 배우긴 했을 텐데,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쑥스러울 정도로 역사는 그다지 기억에 남지도 않는 과목이었다. 최근에야 한국의 민주주의가 짧은 시간에 놀랍도록 발전했고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과정을 통해서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관심이 조금씩 생겼을 뿐이었다.


과장되지 않으면서 묵직하고 날카롭게 꽂히는 문장들이, 간간이 미디어로 접했던 단편적인 사실들을 통해서는 공감하기 어려웠던 당시의 상황을 대면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프게 다가왔던 문장들을 되짚어본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P.17)


흐느낌 사이로 돌림노래처럼 애국가가 불려지는 동안, 악절과 악절들이 부딪치며 생기는 미묘한 불협화음에 너는 숨죽여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하면 나라란 게 무엇인지 이해해낼 수 있을 것처럼. (P.18)




흔히들 국가의 역할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부가 앞장서서 국가의 역할을 저버리는 사례를 우리는 숱하게 봐왔다. 


이 사회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반정부 인사로 낙인찍고,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서민들을 테러 집단에 비유하고, 권력의 부조리를 꼬집는 국민들과 대치하고 때로는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행사하는 현실에서 국가의 역할을 논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하는 무력감이 밀려오는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나라란 게 무엇인지 진정 이해할 수 있게 될까.




군인들이 무섭지, 죽은 사람들이 뭐가 무섭다고요. (P. 29)




가끔 농담조로 "귀신이 뭐가 무섭냐, 사람이 제일 무섭지."라고 말하곤 해왔다. 그런데 그게 결코 가벼운 농담으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던 것 같다. 


정말 사람이 어디까지 무서워질 수 있는지 경험한 적이 있기나 했던가. 같은 사람의 눈을 보면서, 몸서리쳐지는 공포를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인간에 대한 냉소를 퍼부을 자격이 과연 나에게 있을까.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적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는 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P. 45)


이상하고 격렬한 힘이 생겨나 있었는데, 그건 죽음 때문이 아니라 오직 멈추지 않는 생각들 때문에 생겨난 거였어.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P. 51)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P. 58)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P. 69)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럼 지금은 그럴 수 있는가. 언제쯤이면 그럴 수 있게 될까.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비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남겨진 자들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것이 진정 가능하기는 할까.




뜨거운 면도날로 가슴에 새겨놓은 것 같은 그 문장을 생각하며 그녀는 회벽에 붙은 대통령 사진을 올려다본다. 얼굴은 어떻게 내면을 숨기는가, 그녀는 생각한다. 어떻게 무감각을, 잔인성을, 살인을 숨기는가. (P. 77)


그녀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어떤 표정, 어떤 진실, 어떤 유려한 문장도 완전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오로지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살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P. 96)


하지만 형량은 무의미했습니다. 이듬해 성탄절까지 군부는 우리 모두를,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들까지 특사로 석방했으니까요. 그 죄목들이 부조리했다는 걸 스스로 자백하듯 말입니다. (P. 123)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P. 134)




꼭 인간이 잔인하다기보다는, 인간이 가진 여러 속성 중에 잔인성도 분명히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 몸의 여러 부위 중에 주로 사용하는 근육이 더 발달하고 단련되는 것처럼,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여러 속성 중 잔인성을 드러내는 것이 습관화되면 그런 인간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괴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알 수 없다이, 그날은 왜 내가 이름 한자리 못 불러봤는지. 입술이 달라붙은 사람맨이로, 쌕쌕 숨만 몰아쉼스로 뒤를 밟았는지. 이번에 내가 이름을 부르면 얼른 돌아봐라이. 대답 한자리 안해도 좋은게, 가만히 돌아봐라이. (P. 180)


이 원수는 내가 갚을랍니다. 그것이 뭔 소리다냐, 깜짝 놀라서 내가 그랬다이. 나라에서 죽인 동생 원수를 무슨 수로 갚는다냐. (P. 182)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P. 211, 에필로그)




누가 누구를 모독한다는 말인가. 살아남은 것이 모독할 일인가.


"미망인"이라는 단어가 있다. 생각해볼수록 기분 나쁘고 소름 끼치는 말이다. 아직 죽지 못한 사람이라니. 남편이 죽었는데 왜 아직 살아있냐는 건가. 뭔가 유교적 병폐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살아남은 것은 결코 모독할 일이 아니다. 누구도 그럴 자격은 없다.




어젯밤 그의 형은 계속해서 말했다. 동생이 운이 좋았다고, 총을 맞고 바로 숨이 끊어졌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고, 이상하게 열기 띤 눈으로 내 동의를 구했다. (P. 215, 에필로그)




독일인의 시선에서 2차 대전을 그린 <스탈린그라드 (1993)>라는 영화가 있다. 역사적 배경이 어떻고, 실상과 내용이 얼마나 일치하고 어쩌고를 떠나, 마지막 장면이 매우 기억에 남았던 영화다. 


러시아의 살을 에는 추위 속에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중위와 사병, 결국 중위가 먼저 정신을 잃기 시작한다. 사병은 죽어가는 중위를 끌어안고, "사막에 가본 적 있어요?" 라며 뜨거운 사막의 풍경을 묘사한다. 조금이라도 따뜻함을 느끼며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떠났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가족의 심정을 진정 이해할 수 있을까. 왜 그래야만 했냐고, 빠져나올 수도 있지 않았냐고 원망할 수도 있을 텐데. 이제는 편안히 쉬라는 마지막 바람은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지도.


다시 한번 문학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본다. 독자들이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그 과정을 통해서 자기감정을 발견하고, 타인을 잘 이해하도록 하는 것. 작가의 능력이기도 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열려있느냐도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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