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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씨 Jul 31. 2017

기억해내고 싶은 것

쏟아질 것처럼 별이 흐드러진 하늘을 본 적이 있었다. 


중학교 때 특별활동반 선생님이 철원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천체 관측 행사에 관심 있는 아이들 몇 명을 데려갔는데, 나도 그중 하나였다. 별을 보려고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운동장에 돗자리를 깔고 드러누워 현실감 없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다른 선생님 한 분이 마이크를 잡고 어떤 별자리가 보이는지 설명을 해주었다. 별자리 중에서 가장 큰 것이 바다뱀자리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바다뱀의 꼬리 부분만 볼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지금은 흔하디 흔한 디지털카메라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라, 그 그림 같은 광경을 오로지 내 눈에만 담을 수 있었다.


왜 다들 그렇게 잊어버리고 싶어 하는 걸까?
난 잊어버리기보다 기억해내고 싶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별이 가득한 하늘을 봤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처음으로 자신의 손발을 움직였을 때 얼마나 신기했는지...
막 태어났을 때 느낀 그런 것들을 지금 하나하나 다 기억해내면 정말로 굉장하겠지?
그때의 마음만 기억해내면 무슨 일이 있어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니?

- 야옹이형, 보노보노 극장판 쿠모모나무의 이야기 중


오래전 보노보노가 CG로 제작되어 극장판으로 나왔었다. 쿠모모나무, 즉 향기나무는 보노보노와 친구들이 사는 숲 속 마을 언덕 한가운데에 있는 커다랗고 나이 든 나무였다. 쿠모모나무 아래 앉아 오묘하게 풍기는 향기를 맡으면 나쁜 기억을 잊어버리는 효능이 있다. 슬픈 일이나 괴로운 일이 있을 땐 다들 그 나무를 찾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쿠모모나무의 가지를 훔쳐가는 녀석이 있다는 소문이 숲 전체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일대 소란이 일어난다. 심란한 보노보노는 숲의 현자라 불리는 야옹이형을 찾아가는데, 그때 그는 오히려 잊어버린 기억들을 되찾고 싶다고 한다. 실제로, 쿠모모나무는 불에 타면 평소와 다른 냄새를 풍기며 다들 뭔가를 기억하게 하는 또 다른 힘이 있다. 


보노보노 역시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하늘을 가득 수놓은 별들의 모습을 기억해낸다.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얼마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는지,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두 기억해낸다.


그때, 별이 꽉 찬 하늘을 보며 감탄하던 때의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었을까. 지금처럼 별생각 없이 하루하루 떠밀려 가듯 넘겨 보내지는 않았을 텐데.


어떤 꿈을 꾸고 어떤 것들을 느끼고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었을까. 기억해낼 수만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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