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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씨 Aug 24. 2017

대화와 관계에 관한 짧은 생각

영화 <더 테이블>

대화 對話
(명사)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또는 그 이야기.


사실 대화를 잘 하는 편은 아니다. 사람을 만날 때, 특히 단 둘이 독대해야 하는 자리가 생기면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 전부터 걱정이 될 때가 있다. 가장 두려운 건 이따금 찾아오는 어색한 침묵. 소강기라고도 하고 포즈라고도 하는.


스스로 대화에 자신이 없다고 느끼는 이유는, 나 자신이 그닥 이야깃거리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종의 자격지심에서 기인한다. 또는 두 사람 사이에 공유하고 있는 기억이나 공감대를 찾아내는 데 서툰 것일 수도 있다.


세상 모든 일에 관심 없는 눈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사실이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사람 사이에 이야깃거리를 찾아내는 것은 어쩌면 세상에 대한 풍부한 관심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Source: Daum 영화


영화 <더 테이블>은 한 카페의 같은 테이블에서 하루 동안 머물다 간 사람들 사이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7일 만에 촬영했다."는 말을 듣고 잘못 들었나 싶었는데, 모두 한 장소에서 찍어서 그런 것 같다. 장소의 이동이라면 기껏해야 카페의 안과 밖 정도.


마음이 지나가는 곳, 마음과 마음 사이로 오가는 당신과 나의 이야기 등의 홍보 문구처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매개체는 각각의 대화이다. 처음 두 사람이 자리에 앉고 대화가 막 시작할 때까지, 그들의 관계에 대해 어떠한 단서도 주어지지 않는다. 조금 더 대화를 엿들을수록, 표정의 변화를 관찰할수록 두 사람의 관계와 공유하고 있는 기억에 대해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 전, 각자의 머릿속은 아마 복잡하고 미묘한 갖가지 생각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이제는 아주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지나간 연인에 대한 막연한 기대일 수도, 훌쩍 떠나버린 야속한 이에 대한 원망일 수도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숨기고 있는 진실이 부끄러운 두 사람과, 현실과 낭만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철없는 어른들도 있다. (그래도 "철들면 죽는다.")


각각의 대화를 중반까지 듣다 보면, '사람이라는 건 참 복잡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모두가 변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좋으면 좋다, 왜 그랬냐고 까놓고 물어보지도 못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짓말에 스스로 걸려들기도 하고, 인륜지대사를 앞두고 쓸데없이 흔들리는 건 다반사.


대화가 무르익고 서로에 대한 경계가 풀리면, 그 복잡함이 단순하고 명쾌하게 정리되며 대화가 마무리된다. 그저 추억으로 간직하는 게 더 좋았을 뻔한 두 사람은 너는 너, 나는 나 각자의 길에 충실하기로 하고, 서툴지만 미워할 수 없는 표현으로 불확실한 관계에 진전이 생기고, 어쩌다 보니 불편한 진실을 공유하게 된 이들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준다. 난데없이 짧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이한 남녀는 헛된 상상은 집어치우고 각자의 삶에 충실하기로 한다.


대화도, 관계도, 단순하게 정리될 때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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