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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씨 Oct 05. 2017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두가 공범자는 아닐지라도 방관자는 될 수 있다

2017년 5월 9일, 그리고 그다음 날, 몇몇 사람들은 세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또한 단지 정권만이 넘어간 것일 뿐, 달라진 건 전혀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솔직히 후자가 훨씬 공감이 된다. 잃을 게 많은 이들에게 "나라다운 나라"라는 말은 여전히 공허한 울림일 뿐이며, 어떻게 해야 본인이 가진 것들을 빼앗기지 않을지가 그들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선택의 기준이다. 정치인들은 아직도 민생을 두고 정치공학에 의한 거래에만 혈안이다. 힘 있는 자들이 견고하게 다져온 악의 고리는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시대의 소용돌이를 맨몸으로--믿을 수 없이 담담하게--맞아내며 모종의 결과를 이루어냈지만, 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간만 끌다 흐지부지될 위험도 없지 않다. "이게 나라냐?"라는 의문은 아직도 유효하다.


현란한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를 위한 도덕이었고,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이었고, 심지어 '주검'을 위한 도덕이었다. 때문에 공자의 도덕을 딛고 선 유교 문화는 정치적 기만과 위선, '남성적 우월' '젊음과 창의성의 말살' 그리고 '주검 숭배가 낳은 우울함'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이방인의 문화는 조선 왕실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되어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은 사농공상으로 대표되는 신분사회, 토론 부재를 낳은 가부장 의식, 위선을 부추기는 군자의 논리, 끼리끼리의 협잡을 부르는 혈연적 폐쇄성과 그로 인한 분열 본질, 여성 차별을 부른 남성 우월 의식, 스승의 권위 강조로 인한 창의성 말살 교육 따위의 문제점들을 오늘날까지 지속시키고 있다. 이것들은 오늘날 우리들 삶의 공간에 필요한 투명성과 평등, 번득이는 창의력, 맑은 생명들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것들이다. 유교의 유효 기간은 이제 끝난 것이다.

- 김경일,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누군가는 한국 사회의 발목을 잡는 고질적인 병폐의 원인을 유교에서 찾기도 한다.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긴 조선왕조의 근간이었던 유교 이데올로기를 너무 삐딱하게만 보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모든 문화는 필연적으로 어두운 단면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의 가장 어두운 단면은 '질문 혐오'일 것이다. 우리는 질문을 하는 것도 두려워하고, 질문을 받는 것도 싫어한다. 심지어 수업 시간에 질문하면 화내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바로 그 질문하는 것이 업인 사람들의 입을 막고 손발을 묶고, 아예 밑바닥까지 추락해서 다시는 올라올 꿈도 못 꾸게 하려는 권력의 추악한 얼굴이 지난 10여 년 동안 떵떵거리며 살아있었다는 사실. 영화 공범자들(2017)을 보면서,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는 것이 왠지 더 씁쓸했다.


공범자들 (출처: CGV)


부끄럽지만, MBC 막내기자의 반성문이라는 동영상을 처음 봤을 때 '너희도 알면서 MBC라는 안락한 울타리 안에 머무른 것 아니냐'라고 무지한 비판을 하기도 했다. 그들이 얼마나 악랄하게, 약자들의 어느 부분을 건드려야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지 가장 잘 아는 실무자 출신 부역자들을 내세워 그들만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왔는지 무관심했던, 의심 조차 하지 않았던 스스로를 모른 채.


언론의 핵심적인 기능은 질문의심이다. 이 사회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권력자들의 비뚤어진 욕망이 나라를 좌초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집요하게 의문을 제기하고 추궁하는 것이다. 물론 우선적으로 언론이 권력을 제대로 감시해야겠지만, 그 언론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것은 시민들의 몫이다. 스스로 시민의 권리를 외면하는 이상, 그들이 말하는 개돼지에 불과한 것이다.


솔직히 정치 잘 모른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무지했던 시절, 기득권자들과 그들이 장악한 언론에 휘둘려 눈과 귀가 가려진 나 또한 개돼지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최근 여실히 깨닫고 있다.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끈질기게 물어야 한다. 아니면 계속 그들의 개돼지로 남던가.


정말로 진리를 추구하고자 한다면, 인생에서 반드시 최소한 한 번은 모든 것을 가능한 한도까지 의심해봐야 한다.

- 르네 데카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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