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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씨 Oct 09. 2017

무난하고, 무던해지고 싶다

장 자끄 상뻬가 말하는 우정, 혹은 관계

상뻬의 그림은 언제 봐도 사랑스럽다.


커버 사진은 장 자끄 상뻬와 그를 인터뷰한 언론인 마르크 르카르팡티에의 대화를 담은 <진정한 우정>의 표지이다. 우정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특성이 있으며,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우정이 있는지. 그것들을 모두 우정이라고 할 수는 있는 건지 조금은 가볍지만 제법 진지한 생각들이 오고 간다. 인간관계에 대해 조심스럽게 꺼내는 상뻬의 말들은 세밀하면서도 과하지 않고,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로운 그의 그림 자체다.



르카르팡티에 (L) 우정과 신중함, 언어는 어떻게 해야 화해시킬 수 있을까요? 그 세 가지는 항상 뒤죽박죽으로 꼬일 위험을 안고 있지 않습니까, 안 그런가요?

장 자끄 상뻬 (S) 우리가 살다 보면 겪게 되는 많은 일들이 그렇듯이, 그 역시 상당히 미묘하고 섬세한 거죠. 당신이 이해하는 데 애를 먹는 것도 어쩌면 그렇기 때문일 겁니다! 그것들이 순조롭게 잘 맞물려 돌아가느냐 아니냐...... 제법 복잡한 문제입니다.


S (얼굴 빨개지는 아이에서) 두 소년은 그저 함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거죠! 쓸데없이 정치 얘기나 꺼낼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직업이 뭡니까?> 라거나, <어제저녁은 누구와 먹었어?> 라거나, <바캉스는 어디로 갈 거야?> 따위의 질문은 할 필요도 없는 거죠.

오늘날의 인간관계는 그저 불안감을 누그러뜨릴 요량으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반면 얼굴 빨개지는 아이와 그의 친구는 바로 그 침묵할 수 있는 힘 덕분에 이 같은 야만성을 빗겨 갈 수 있는 겁니다!



침묵할 수 있는 힘. 인간관계를 지탱해 주는 가장 강력한 힘이 아닐까. 강력한 만큼 갖기도 매우 어려운 힘이다. 특히 더 중요하게 여기는 관계에서 잠깐의 침묵은 왠지 더 두렵다. 뭐가 그렇게 불안한 걸까. 상대방의 기준에 미치지 못할까 봐, 그래서 나와는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할까 봐, 그래서 관계가 지속되지 못할까 봐 두려운 걸까. 얼마나 더 치이고 단련이 되어야 그 힘을 키울 수 있을까. 결국 침묵할 수 있는 힘이란 건 서로가 소통하고 공유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단련되는 것이지, 혼자 키운다고 되는 것이 아닐 거다.



L 어쨌든, 우정이라면 기꺼이 상대방을 위해 양보할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S 하긴, 이 모든 것이 언제나 명확하진 않습니다. 과도한 친절이나 예의가 지나치면 감정을 상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L 정도의 문제란 말씀인가요?

S 늘 그렇죠. 그 미묘한 균형이 문제입니다......


L 우정은 언제든 깨질 수 있는 불안정한 것일까요? 혹시 우정의 영원성에 대해 의심하시나요?

S 나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나는 우정이 매우 불안정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스털에 대해 의심하지 않지만, 그것이 깨지기 쉽다는 사실 또한 인정합니다.


S (침묵) 사랑에선, 우린 괴물이 됩니다. 서로 잡아먹질 못해 안달하니까요. 상대가 잡아먹혔다 칩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에게 왜 잡아먹히도록 가만히 있었느냐고 비난합니다. 반대로, 상대가 전혀 나를 잡아먹으려 들지 않으면 관심이 없어서 그러는 거라고 트집을 잡으면서 그에게 원한을 품죠. 이보다 더한 코미디는 없습니다. 완전히 미친 짓이지요. 우정도 사랑이 지닌 이 엄청난 자기중심적 사고방식과 존재 욕망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S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정은 기적입니다. 우리네 삶에는 작은 기적들이 있을 뿐입니다. 추론이며 이론, 난 그런 건 믿지 않습니다. 오직 사소한 기적과 우연들이 있을 따름입니다......


S 내가 보기에, 우정은 사랑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사랑에선 설명하고, 사과하고, 고백합니다. 우정에선 이런 것들이 훨씬 더 힘들지요. 우정이란, 매우 드문 일이긴 하지만, 인간이 받아들여 볼 만한, 자신을 던져 볼 만한 도전입니다.



읽다 보면 '과연 진정한 우정이란 무엇인가?'라는 거창한 물음보다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는 많은 사람들, 자의건 타의건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여러 가지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심지어는 이미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과의 우정까지.


'친구를 많이 가지려면, 무난한 성격에 한가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냐?'는 르카르팡티에의 질문에 상뻬는 친구가 많다는 말 자체가 수상하지 않으냐고 되물을 뿐,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고 대화를 맺는다.


결국, 집착을 버리는 것이 관계를 해치지 않는 유일한 답일 수도 있겠다.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이 두려워 관계에 매달리고, 욕심 내고, 요구하고, 짐작하고, 일방적으로 기대하다 실망하고, 배신감에 괴로워하고... 그렇게 스스로 만들어낸 감정의 벽 속에 갇혀서 자신을 소모한다.


내가 아닌 그 누구도, 나를 좋아하거나 (혹은 적어도 싫어하지 않거나) 다정하게 대해야 할 (혹은 냉랭하지 않아야 할) 의무가 없고, 상대방의 태도가 변했다고 비난할 권리가 나에겐 없다. 머리로는 매우 잘 이해가 되지만, 받아들이고 실천하기엔 너무나 버거운 일이다. 그럴 땐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무던할 수 있는 무난한 성격이 참 부럽다.


나만 이렇게 어려운 건 아니겠지. 모두가 그저 나약하고 지극히 평범하고 어설픈 인간인 거겠지.


We're just ordinary people. We don't know which way to go.

- John Leg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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