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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씨 Nov 16. 2017

외로움과 함께 살아가기

고슴도치의 소원

그냥 지금 네 모습 그대로 있는 건 어때?
외롭고, 아무것도 확신 못하고, 조금은 불안한 대로.
그렇더라도 조금은 행복하지?


사람은 원래 불완전하고 외로운 존재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외로움을 대하는 자세는 저마다 다른 것 같다.


외로움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고, 즐기는 사람도 있다. 우연히 중고 서적 서가를 구경하다 충동구매한 그림책 한 권. 혼자인 게 익숙하지만, 다른 동물들처럼 한 번 누군가를 초대해볼까 이런저런 상상에 빠지는 고슴도치에게 어쩐지 동질감이 느껴졌다.


고슴도치의 소원, 톤 텔레헨 소설 (2017)


어느 날 고슴도치는 동물들을 초대해보자고 생각하면서 편지를 쓴다. 쓰던 편지를 그냥 찬장에 넣어버리고는, 초대한 동물들이 방문했을 때 생길지도 모르는 온갖 난처하고 예상 못 한 일들을 상상하면서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계속 생각한다.


전혀 들어본 적 없는 동물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면 어쩌지? 그들이 바라는 게 집에 없으면 어쩌지? 내가 들어줄 수 없는 곤란한 부탁을 자꾸 하는 건 아닐까?


고슴도치는 사실 혼자 있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아마도 혼자 있을 땐 누구도 나를 재단할 일도 없고, 그것 때문에 내가 아닌 다른 존재인 것처럼 꾸밀 필요도 없을 테니.


가시든 뭐든 전부 그대로, 지금 내 모습 그대로 날 받아들여야 해.


그럼에도 누군가를 초대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마도 외로움 때문이겠지. 누군가 찾아와 주길 원하면서 또 누군가 오는 걸 원하지 않는 고슴도치의 모습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한 편으로는 외로움을 극복하려 누군가 옆에 있으면 하다가도, 또 누군가 갑자기 내 삶 속으로 들어와 마구 헤집어놓을 것 같아 두렵기도 한 것이다.


차라리 익숙해진 외로움에게 적당한 자리를 내주는 건 어떨까.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아니면 그냥 계속 머물도록.


"누구야?" 누군가가 물을 것이다.
"외로움."
"여기 살아?"
"글쎄. 여기 사나……. 그냥 여기 있어.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고."
"아."
차를 다 마시지도 않았고 뭔가 아주 중요한 이야기도 아직 하지 못했겠지만, 둘은 문득 외로움을 느낄 것이다.
"갑작스러운 이 느낌은 뭐지?" 누군가는 당황해서 물을 것이다.
"내 외로움." 고슴도치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할 것이다.
날이 어두워진다. 누군가는 조용히 떠날 것이다. 외로움은 머물 것이다.


내 외로움은 어떤 모습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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