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살아?”
“정릉이요.”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돌아오는 말은 늘 똑같았다.
“그게 어디야?”
우리 동네가 어디 있는지 설명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 보다가 결국 ‘그냥 강북 어디쯤’이라고 얼버무리곤 했다.
이 애매한 서울 북동쪽 변두리 동네에 살기 시작한 건 열두 살 때. 한강의 남쪽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받은 첫인상은 (조금 과장해서) 시간이 멈춘 동네 같다는 것이었다. 사실 하나하나 생각해 보면 그전에 살던 곳도 당시 엄청나게 발전한 동네는 아니었기에 그렇게 큰 차이는 없었다. 전에 살던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좁은 골목길, 더 이상 아무도 하지 않는 땅따먹기나 비석 치기 따위의 놀이를 하는 아이들 정도가 새로운 풍경이었을 뿐. 그런데도 왠지 그런 낯선 인상을 받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동네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 그렇게 말하기에는 내가 동네 사람들과 잘 소통하는 재질이 아니긴 하다. 집이나 골목의 풍경이 특별히 다른 것도 아니다.
요즘은 택시를 타도 기사님이 말을 걸어오는 일은 예전만큼 없다고 한다. 언젠가 퇴근길에 택시를 탔는데, 나이 지긋한 기사님이 목적지를 확인하더니 예전에 다니던 구두 공장이 정릉에, 그것도 우리 집 근처에 있었다며 약간의 반가움을 담아 이야기하셨다. 그다지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왠지 모를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거다. 특별하지 않음.
자신이 사는 동네가 특별하지 않다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특별하지 않음’이란 ‘평범함’과는 조금 다르다.
우리 집은 정릉동 안에서도 북한산 입구 바로 앞, 누구나 오면 공기 좋다는 말이 절로 나올 언덕배기에 있다. 오래된 연립 주택들 사이로 신축 빌라 몇 채가 들어서 있는, 주택가라고 하면 흔하디 흔하게 떠오르는 풍경을 하고 있다. 그리 대단하다 할 것도, 별다른 개성이라 할 것도 없다. 하지만 가끔 밤 산책 나오신 동네 스님들의 뒷모습을 볼 때면, 다른 동네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무엇인가가 시공간 사이에서 묘한 기류를 내뿜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정릉에 산다고 하면 “아 거기!” 하며 알아보는 사람이 종종 있다. 나이가 들어서 만나는 사람들의 범위가 넓어진 탓도 있겠지만, 어느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다는 이도 있고, 이중섭 등 몇몇 유명한 작가가 잠시 살았던 곳으로 조금씩 알려진 이유가 아닐지 싶다.
얼마 전에는 이런 말도 들었다.
“되게 예쁜 동네 사시네요.”
가끔 동네에서 사진을 찍는다. 이제는 눈이 마주쳐도 도망가지 않고 친히 식빵을 구워주시는 길냥이님, 비 온 뒤 낙엽 깔린 골목길, 단골 카페에서 본 풍경, 담장 밖으로 삐져나온 꽃나무. 찍어놓고 보면 제법 예쁜 동네 같기도 하다.
여전히 특별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