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담백해질 계획
어렸을 때, 대략 아홉 살에서 열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일명 ‘새 박사'로 유명했던 윤무부 교수의 새소리 테이프가 집에 있었다. 말 그대로 다양한 새들의 울음소리를 녹음한 모음집이다. 누가 산 건 아니고, ‘어린이
마을'이라는 전집을 사고 사은품으로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것이 묘하게 그다지 감성이 풍부하지 않은 어린이의 관심을 끌었는지, 한동안 매일 열심히 들었던 것 같다. 정말 꾀꼬리 같은 꾀꼬리 소리도 있고, 생소한 이름의 다양한 야생 새소리가 제법 좋은 음질로 녹음되어 있었다. 하긴 평생을 새 연구에 바치신 분의 작업이니 대충 했을 리가 없다. 어쨌든....
특히 기억나는 것은, 기대했던 파랑새의 소리가 굉장히 깼다는 것이다. 이름도 그렇고 각종 동요와 동화에서 희망의 상징처럼 다루어졌기에 그 울음소리도 참으로 맑고 곱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그렇게 맑지도 않고
찔끔찔끔 종이 찢는 소리처럼 맥없게 들렸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까마귀 소리가 오히려 더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느낌이었다. 소리로만 들으면 파랑새와 까마귀는 서로의 이름이 뒤바뀌어야만 할 것 같았다. 사람들이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고운 소리를 지녔음에도 불운의 상징으로 오해받는 까마귀가 참 억울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견우와 직녀에게는 다르겠지만....)
세상에는 이미지와 평판, 즉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이 실제 본인의 목소리보다 중요한 파랑새 같은 사람도 있고, 그 겉모습 때문에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고운 내면을 지닌 까마귀 같은 사람도
있다. 물론 그 두 가지 면이 공존하는 사람도 있다. 나의 경우 그리고 내가 쓰는 글의 경우, 허세 가득한 파랑새에서 진득한 까마귀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 중인 단계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해는, 그리고 그전 몇 년은 이것저것 벌이고 시작한 일은 많은데 뭔가 결과물을 낸 일이 거의 없었다. 문득 책장을 보니 캘리그래피를 배우겠다며 사놓고 반도 채우지 못한 책도 있고, 일본어 첫걸음 책도 5분의 1 정도 지점까지만 새까만 채로 그대로 꽂혀있다. 드로잉을 하겠다며 쟁여놓기만 한 드로잉북과 각종 도구도 그대로 당근에 내놓아도 될 정도로 거의 새것인 상태로 굴러다닌다. 뭔가 남들이 봤을 때 그럴싸하고 SNS에 올릴만한 결과물을 만들고 싶다는 얕은 생각으로 시작한 것들이다. 내년은 이 껍데기들을 차곡차곡 채워 나만 들을 수 있는 고운 소리를 내는 까마귀로 거듭나기를 계획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