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에서 인심 난다더니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작년 여름, 다니던 사무실이 대표님의 사정으로 다소 갑작스럽게 문을 닫게 되었다. 정기적으로 후원해 온 세 기관 중 두 곳(그린피스와 세이브더칠드런)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정기 후원을 중단해야 할 것 같다고, 다시 고정적인 소득원이 생기면 후원을 재개하겠다고 문의 메일을 보냈다. 실업 급여를 받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이전처럼 후원을 유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었다. 잠시 후 각 기관에서 전화가 와서, 사정이 그러하면 6개월 정도 일시적으로 중지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나머지 한 곳은 문화 예술과 관련된 곳인데, 금액을 절반 이상 줄였다. 다시 원래대로 후원할 수 있는 날을 기약하며.
어느덧 후원 일시 중지 기간이 끝나고, 다시 계좌에서 자동이체로 후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조금씩 아르바이트도 하고 이것저것 배우기도 하면서 6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백수이기에, 후원 중지 기간을 연장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금액을 줄일 수 있는지 다시 문의했다. 각각 절반 정도 씩 감액할 수 있는지 메일을 남겼다. 다시 수입이 들어오면 증액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번에는 별도의 전화 없이 바로 감액이 되었다.
길거리에서 각종 단체의 조끼를 입고 후원자를 모집하는 봉사자들을 볼 때마다 저 멀리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 무심한 인간이다. 이런 내가 세 개나 되는 단체를 후원하게 되었던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전에는 체리티 워터(Charity Water)라는 해외 단체에도 일시 후원을 한 적이 있다. 아프리카 등지의 물 부족 국가에 식수와 관개 시설을 지원하는 단체다. 페이스북을 많이 하던 시절, 배우 에드워드 노튼이 이 단체에 후원하고 있다는 포스팅을 보고 막연히 따라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나도 어쩐지 그처럼 의식 있는 문화인처럼 보이지 않을까 해서, 게다가 해외 단체라니 왠지 좀 더 그럴싸해 보일 것 같다는 얇디얇은 생각에서.
그린피스에 후원하게 된 계기는 한 캠페이너가 출연한 유튜브 방송을 보고 나서였다. 어이없게도, 무슨 내용이었는지 당장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란 인간……. 핵폐기물이나 원전 뭐 이런 것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현실이 참 심각하구나 했다. 내가 뭘 할 수 있나 싶기도 하고, 사실 게을러서 무엇인가 행동에 옮기는 것은 귀찮기에 푼돈이라도 좀 보태면 마음의 짐이 덜어질까 해서 정기 후원을 신청했던 것 같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내가 봐도 좀 의외다. 솔직해져 보자. 나는 사실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때로는 싫기도 하고 가끔은 무서워하기도 한다. 공공장소에서 어린아이들이 시야에 들어오면 일단 온몸이 경직된다. 그리고 조용히 짐을 챙겨서 그 자리에서 꺼진다. 한 번은 동네 도서관에 앉아 있는데, 한 아이가 먼저 “안녕하세요.” 하고 꾸벅 인사를 건네는 것이 아닌가. 도서관에서 어른을 보면 먼저 인사해야 한다고 교육받은 듯했다. 평소에도 어린이와 그다지 친하지 않은 나는 인사를 받아주는 것도 아니고 안 받아주는 것도 아닌, 어정쩡하기 짝이 없는 눈빛을 전송하고 말았다. 이토록 성숙하지 못하고 나이만 먹은 어른 나부랭이보다는 순수하고 해맑은 어린이가 이 세상에 더 필요하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생각만 하고 행동할 능력은 없는 한심한 인간이기에 한 달에 몇 푼이라도 보태기로 한 것이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기부나 후원을 한다. 본성이 착한 사람이라서, 측은지심이 넘쳐서일 수도 있고, 종교나 신념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남아돌아서일 수도…. 처음부터 기부나 후원 같은 것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스스로 썩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도 아니고, 거창한 대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가진 것이 많지도 않다. 어쩌면 비루한 자존감 때문인 것도 같다. 나보다 약하고 보호해야 할 존재, 지켜져야 할 것들을 위해 대신 싸워주는 이들에게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는 내가 그래도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최악은 아니라고 스스로 달래기 위함일지도.
결국 순전히 나 자신을 위해서다. 내가 이기적인 인간임에는 달라질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