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너란 녀석
어릴 적 외갓집에 가면 외숙모와 삼촌들이 쓰던 타자기가 있었다. 그게 무슨 신기한 장난감이라고 되는 듯이 아무 말이나 치며 놀곤 했다. 자판을 누를 때마다 얇고 기다란 쇠막대기가 엇갈려 일어나며 자음과 모음을 하나씩 종이에 찍어내는 것이 재미있었다. 처음 피아노 뒤뚜껑을 열고, 건반을 누를 때마다 조그만 솜 망치 같은 것이 벌떡 일어나 현을 두드리는 걸 봤을 때처럼.
예전부터 부모님이 맞벌이를 했기에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낮에는 혼자 집을 보는 일이 많았다. (엄연히 나는 외동이 아니다. 각각 일곱 살, 열 살이 많은 청소년 언니들은 공사가 다망하여 좀체 집에 붙어있지를 않았…….) 방학 때는 가끔 아빠가 사무실에 데려갔는데 그곳에도 타자기가 한 대 있었다. 심심하면 타자기로 텔레비전 방송 편성표 같은 걸 치면서 놀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텔레비전을 친구 삼아 살았던 나는 매일 신문 뒷면에 있는 방송 편성표를 줄줄 외우고 다녔다. 그래. 그때는 일간지에 그날의 방송 편성표와 주요 프로그램 소개가 게재되던 시절이었다. 추억 여행은 여기까지.
지난여름, 통영에서 근 삼십여 년 만에 타자기를 만져 보았다. 충무교 입구에서 버스를 타고 자칫하면 지나치기 십상인 한적한 정류장에 내려 골목길 사이로 걸어가다 보면, ‘쓰는 마음’이라는 공간이 있다. (현재는 봉숫골 전혁림 미술관 근처로 이전했다고 한다.) 박경리 작가를 모티브로 한 소설가의 책상을 예약했다. 그 시절 작가들이 썼을 법한 타자기도 써볼 수 있고, 갓 내린 커피 한 잔과 함께 비치된 책들을 읽거나 이것저것 끄적이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사실 버스 내릴 곳을 지나쳐 다음 정류장에 내려 허겁지겁 빠른 걸음으로 예약 시간을 넘겨 도착한 자가 바로 나다. 친절한 사장님은 마침 다음 시간 예약이 없다며 조금 더 머물러도 된다며 타자기 사용법을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어릴 때 가지고 놀았던 타자기의 추억이 몽글몽글 떠올랐다. 무엇을 쳐볼까, 책상에 비치된 박경리 작가의 시집을 뒤적였다. ‘정릉의 벚나무’라는 시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작가가 우리 동네에 살 적에 손주를 업고 정릉을 산책하고 쓴 시인가 보다. 무료하고 평온하고 소박한 정릉의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마실 나가기 좋았던, 비교적 번화가인 ‘돈암동 거리’까지 두 시를 골라 쳐보기로 했다.
그래도 한때 타자기를 장난감 삼아 놀던 가락이 있는데 금방 클리어하지 않을까, 의기양양하게 덤볐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타자기로 한글 쓰기가 그렇게 어려울 줄이야. 특히 쌍자음이나 이중모음, 겹받침을 찍으려면 서너 단계의 프로세스를 거쳐야 하는데,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철제 기계 장치의 정체성을 뽐내듯 자판 하나하나의 무게도 상당해서 어쩔 수 없이 독수리 타법을 구사할 수밖에 없고, 기본적으로 손에도 힘이 많이 들어간다. 한 줄도 채 다 못 쓰고 눈치 없이 눌려대는 오타의 향연 속에서 이면지만 백만 장 양산하며 시 두 편을 겨우 쓰고 나니 손가락이 다 얼얼하다. 근대화 시절에 태어났으면 타이피스트로는 절대 취직 못 했을 것이다.
쌍자음에, 이중모음에 겹받침까지 중무장한 한글. ‘너 따위가 오타 한번 없이 끝까지 칠 수 있을까?’ 하며 나를 내려다보는 한글. 너란 놈 정말 더럽게 어려운 것이었구나……. 이렇게 복잡하고 예민한 언어를 어린 시절에 그리 큰 어려움 없이 깨우칠 수 있었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국뽕은 아니지만, 손으로 쓸 때는 물론이고 컴퓨터나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때도 한글이 비교적 참 편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글은 말하자면 조립식 글자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쭉 나열해야만 하는 외국어와 달리, 초성과 중성, 종성을 한 글자 안에 조립하여 끼워 넣는 한글은 같은 면적에서 전달할 수 있는 정보가 훨씬 많지 않은가. 레고 블록을 한 조각씩 떼어서 늘어놓는 것이 외국어라면, 글자 하나하나가 집이고, 빌딩이고, 자동차 같은 하나의 형상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한글의 또 다른 면모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가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글을 쓸 수 있게 하려는 하나의 의도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문자가 세월을 초월하여 영원에 가까운 시간에 걸쳐 널리 사용되고 있는 사례도 거의 없을 것이다. 얼마나 과학적이고 경제적인 문자인가를 떠나서, 백성들이 글을 알지 못하고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긴 그 마음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생각하며 괜히 울컥한 적이 있다. 새삼 세종대왕님께 깊은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