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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중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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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미 Apr 29. 2021

검은 축포를 터뜨리며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마음이 돌연 검은 축포를 터뜨리며 비몽사몽 하던 정신을 흔들어 깨웠다. 갇혀 있던 먼지구름이 수직으로 솟으며 흩어지고 뜨거운 것이 꿀렁꿀렁 흘러넘쳤다. 모든 변화는 파괴에서 시작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흔다섯. 의미를 부여하기엔 애매한 나이라지만 45라는 숫자가 풍기는 묵직한 느낌만은 뚜렷하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될 때 뒤를 먼저 돌아보는 것은 앞에서 어떤 이정표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다. 삶의 시작과 끝이 모두 아득해지는 중년에 이르고 나서야 간신히 지난 삶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흑백의 꿈같은 유년기, 불안으로 점철된 청춘이 무사히 지나간 것에 안도하면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몸부림의 흔적들을 몸소 정리하고 싶어졌다. 


앞날은 여전히 두렵다. 내게 남은 건 지금껏 살아온 경험의 두께와 거기서 건져 올린 한 줌의 지혜, 그리고 고통이 남긴 굳은살들. 이것들을 방패 삼아 용기를 내어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다. 헌 몸으로 새 길을 걷는 것이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블로그 이웃이나 번역가 친구들이 진작 브런치를 권했는데 실천하기까지 일 년이 걸렸다. 열린 공간에 무엇을 써야 할까 막막하지만 미리 고민하지 않기로 한다. 구에게나 말하고 싶은 것이 있고 때때로 그 욕망은 강렬한 법이다. 일단 마음의 날씨와 풍경들을 차곡차곡 적는다는 태도로 임하고 싶다.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으면 더없이 행복하겠고 홀로 떠다니다 풀어헤쳐져 소실되더라도 후회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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