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다섯. 의미를 부여하기엔 애매한 나이라지만 45라는 숫자가 풍기는 묵직한 느낌만은 뚜렷하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될 때 뒤를 먼저 돌아보는 것은 앞에서 어떤 이정표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다. 삶의 시작과 끝이 모두 아득해지는 중년에 이르고 나서야 간신히 지난 삶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흑백의 꿈같은 유년기, 불안으로 점철된 청춘이 무사히 지나간 것에 안도하면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몸부림의 흔적들을 몸소 정리하고 싶어졌다.
앞날은 여전히 두렵다. 내게 남은 건 지금껏 살아온 경험의 두께와 거기서 건져 올린 한 줌의 지혜, 그리고 고통이 남긴 굳은살들. 이것들을 방패 삼아 용기를 내어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다. 헌 몸으로 새 길을 걷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