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호감 1

정중한 무책임

by 이동주

꽤나 유쾌하고, 파티를 좋아하며, 어쩌면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사람. 그게 그녀의 첫인상이었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나는 저 사람 여자친구야.”

스스럼없이 다가온 그녀는 쾌활한 미소를 띠고, 공들인 손톱이 돋보이는 손으로 악수를 청했다.

나는 가볍게 손을 잡고 웃으며 인사했다.


“너는 어디 사람이야?”

예상대로였다. 그녀 역시 내가 어느 나라 출신인지 짐작하지 못한 듯,

커다란 안경알 위로 한쪽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물었다.


“아—한국인이구나! 그럴 줄 알았어. 그런데 너는 내가 본 한국인들이랑 많이 다르다. 피부도 나처럼 태닝되어 있고, 스타일도 다르고.”

자주 듣는 말이었다. 원체 피부가 자외선에 예민해 잘 타는 데다, 베트남에 온 이후 새벽 러닝을 즐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까맣게 탔다. 패션을 전공한 덕분에 스타일이 눈에 띈다는 말도 익숙했다. 나는 웃으며 그런 이야기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왜, 한국 사람들 다 스타일 비슷하고, 피부 타는 거 엄청 싫어하잖아. 생긴 것도 다 비슷하게 생겼고.”

나는 웃으며 받아쳤다. “너네도 다 비슷하게 생겼잖아.”

그녀는 그 말에 빵 터지더니,“나 너 진짜 마음에 들어!” 하고 웃었다.

초면의 무례에 굳이 감정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그 순간, 그녀와 나의 시선이 머문 곳엔 한 무리의 남녀가 있었다. 50대 초반의 한국 남성들과,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현지 여성들. 해변가의 바 한가운데, 아이들도 함께 있는 공간에서 그들은 여자의 몸을 물건 다루듯 만지고 있었다. 한국어로 큰소리로 가오를 부리는 모습까지.


“나 호치민에서 한국 기업이랑 베트남 기업 연결하는 에이전시에서 일했거든? 저런 접대는 기본이야. 한국인들 사업차 오면 얼마나 더럽게 노는지 몰라. 가끔은 나를 룸싸롱 아가씨처럼 취급하더라니까?”

맞아, 한국에서도 알려진 이야기다. 동남아에서 한국 남성들이 성매수를 한다는 기사, 비난. 나라망신이라는 말이 나올 법도 했다. 그런데 그때,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호감이었을까, 아니면 기회를 포착했다는 흥분이었을까.


“내가 일하면서 보니까 진짜 한국 남자들 세상에서 제일 쓰레기 같아. 무조건 업소 가자고 해서 아예 접대 루트가 고정되어 있었어. 한식당에서 소주 마시고—나 소주 진짜 좋아해—2차로 업소, 3차로는 어린 여자애 데리고 호텔. 베트남 남자들도 바람은 피지만, 한국 남자들처럼 전 세계 돌아다니면서 하진 않아. 우리는 전 세계에서 이혼율이 가장 낮은 나라야.”


나는 당황했다. 그렇게 위험한 자리에 여성이 가야 했던 이유는? 접대 루트를 만든 건 그녀의 회사였는데, 왜 모든 책임은 한국 남성에게 향하는 걸까. 베트남 이혼율이 낮은 건 사회적 낙인 때문이란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걸까?


“어… 그렇긴 해. 베트남은 아직 보수적이라 이혼하면 여자한테 딱지가 붙고, 살기 어려워져. 나도 이혼했고…”


반박하지 못한 그녀는 말을 흐렸다. 잠시 침묵. 그리고 다시, 눈이 반짝였다.

“그나저나, 뭐 하나 물어봐도 돼? 한국 여자들 그렇게 물질주의적이야?”

“뭐라고?”

“내 남자친구가 한국에서 살았는데 그러더라고. 한국 여자들은 차 없으면 연애 안 하고, 성형 엄청 하고, 시골엔 진짜 못생긴 여자들 많다고. 근데 베트남 여자들은 적은 돈에도 감사하고, 성형도 안 하고, 차 없어도 괜찮대.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아담하고 예쁘지 않아?”

정말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단순한 무지가 아니다. 이건 명백한 비하였다.


“내가 보기엔 한국 여자들 그렇게 물질적이지 않아. 네 남자친구가 시골에 살았다면, 차가 없어서 이동이 불편했겠지. 성형 여부로 외모를 단정짓는 건 위험해. 그리고 내 주변엔 그런 이유로 관계를 끊는 사람, 한 명도 없어.”

“그래서 너가 쿨한 거야! 너 친구들도 다 너처럼 쿨하겠지! 하하하!”


만약 이 자리가 남편의 회사 모임이 아니었다면, 나는 벌써 자리를 떴을 것이다. 대신 웃으며 말했다.

“너네 남자친구는 한국어도 못한다며? 그럼 다양한 한국인을 만날 기회도 없었겠네. 그런 편협한 시선으로 한국을 판단한다는 게 좀 아쉬워.”


그녀는 내가 충분히 긁히지 않은 것이 아쉬웠는지, 또 다른 화제를 꺼냈다.

“한식 자주 먹어? 좋아하는 레스토랑 있어?”

“아니. 집에서 해 먹는 편이야.”

내 탈출구를 찾는 눈이 분주했다.

“나는 한국식 바비큐 진짜 좋아해. 떡볶이, 삼겹살, 소주! 근데 너네 음식 진짜 건강에 안 좋잖아. 너무 맵고 짜고, 생각만 해도 속 아파. 나는 베트남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건강한 것 같아. 야채도 많고!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이번엔 웃음 속에 숨긴 무례함이 아니라, 대놓고 무례한 말이었다.


나는 더는 참지 않기로 했다.


“베트남 음식 맛있지. 근데 너무 탄수화물 위주라서 영양적 균형은 좀 떨어지는 편이야. 그리고 너 한국 안 가봤다며? 한국에서 사람들이 뭘 어떻게 먹는지 잘 모를 수도 있겠다. 우린 반찬에 국에 나물, 균형 맞춰서 먹어. 너희도 매끼 반미랑 쌀국수만 먹는 거 아니잖아.”


내가 하나하나 웃으며 반박하는 동안, 그녀의 웃음은 점점 더 쾌활해졌다.

“나 너 진짜 마음에 들어! 다음에 같이 파티하자! 역시 너는 다른 한국인이야. 너는 쿨한 한국인이잖아!”


그녀는 나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그 말은 칭찬처럼 들렸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너는 괜찮아’라는 말은 결국 ‘너희는 아니야’라는 뜻이라는 걸.

그녀는 나를 호감의 대상으로 취급하면서 동시에, 내가 속한 집단을 조롱하고 경멸했다.

그 호감은 나를 향한 긍정이 아니라, 스스로의 무례함을 정당화하기 위한 장치였다.


진짜 무례는, 종종 웃으며 건네진다.

그리고 때로, 가장 불편한 호감은 칭찬의 얼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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