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위의 정체성

죄책감 서린 미소에 대하여

by 이동주

아주 강렬한 기억은 종종 그 순간의 열기, 냄새, 그리고 어색한 미소를 담고 있다.

10년도 더 전, 맨해튼 어퍼 이스트에 위치한 요가원. 땀에 절어 노곤한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오르던 중, 앞서 가던 두 중년 여성의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나마스테가 무슨 뜻인지 알아?”

“아니, 잘 모르겠어.”

“미들클래스 백인 여자라는 뜻이지, 뭐. 하하.”


약간의 교양이 묻어나는 동부 액센트, 전신을 룰루레몬 요가복으로 감싼 그녀들.

평일 낮, 어퍼 이스트에서 1시간 반짜리 요가 수업을 마친 여유는 그 농담의 실체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 나른한 농담은 자조적이었고, 어쩐지 조금 웃기기도 했다.

서양에서 소비되는 요가 문화,

백인 중산층 여성들의 취향 속에 깃든 오리엔탈리즘을 스스로 비트는 농담처럼 느껴졌으니까.

동양인으로서, 그 밑바닥에 깔려 있었을지도 모를 위선과 구조적 차별을 감지했지만,

딱히 화가 나지도, 기분이 상하지도 않았다.

그저 ‘아줌마들의 시시한 농담’쯤으로 흘려보내려던 참이었다.


그러다 공기가 바뀌었다.


그중 한 여자가 뒤를 돌아보더니,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화들짝 놀란 그녀는 친구의 팔을 치듯 건드렸다.

그리고 무언가 들킨 사람처럼 허둥지둥 변명을 내뱉었다.

“아니, 웃기다는 게 아니고… 너, 그 매들린 알지? 걔가 한 농담인데, 너무 인종차별적이더라구.

걔 진짜 이상하지 않아? 나는 같이 있으면 불편해서 멀리하게 되더라.”

파란 눈동자 끝으로 나를 의식한 채, 어색한 웃음을 흘린다.


죄책감과 당황, 민망함과 방어가 뒤엉킨 얼굴.

그 웃음은 진심이 아니라 전략처럼 느껴졌다.

어떻게든 나를 설득해야만 한다는 사람의 웃음.


‘나는 그 농담에 동의하지 않아요. 제발 오해하지 마세요.’


그 말은 그녀의 표정으로, 웃음으로, 그리고 침묵 속의 몸짓으로 흘러나왔다.

스쳐 지나가던 시덥잖은 농담은 바로 그 순간 의미를 가졌다.

그들의 죄책감이 서린 미소는 내 존재에 하나의 역할을 덧씌웠다.


나는 “화내야 하는 동양인”이 되었고, 그 농담은 “차별”의 실체를 입증하는 증거가 되었다.

내가 등장한 그 순간, 그 농담은 죄가 되었고, 그 죄를 덮기 위한 그들의 몸짓은 나를 경계 밖으로 밀어냈다.


그날의 정체성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시선이, 그 당황한 미소가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먼저 정해버렸다.

그 웃음은 사과가 아니었다.

자신의 불편함을 정리하고 싶은 사람의 웃음이었고, 나를 타자화함으로써 자기 세계를 지키려는 방어였다.


그들이 그토록 당황한 이유는, 그 농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진짜 두려워한 것은— 내가 그들의 ‘무의식적 차별’을 자각하게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공기, 계단, 말, 그리고 그 웃음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너무 많은 것을 부정했다.

그리고 내 존재는, 그 부정에 대한 반증이었다.

그 정중한 무책임의 얼굴은 아직도 내 안에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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