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이 잠시 머물던 곳 – 길상사
2010년 3월,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길상사로 향했다.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을 지나 내렸다. 버스 정거장의 표지판에 길상사 추모관 가는 곳이라고 종이에 쓰여 있었다. 도보로 약 10분을 걸으니 길상사 이정표가 보였다. 이 길이 살아 생전 법정 스님이 걷던 길 이었을것이다.
그 길을 걸으며 법정스님께서 길을 걸으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어떤 풍경을 보셨을까 상상해본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니 길상사인듯한 곳이 보였다. 문 앞에는 차가 몇 대 주차되어 있었고, 추모객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길상사는 1987년 공덕주 길상화(吉祥花) 김영한님이 법정스님께 음식점이던 대원각을 청정한 불도량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청하였다. 1995년 법정스님께서 그 뜻을 받아들이셔서 6월 13일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 말사 ‘대법사’로 등록을 하고 주지에 현문 스님이 취임했다. 1997년에는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이름을 바꾸어 등록하고 같은 해 2월14일에 초대 주지로 청학 스님 취임 및 1차 도량정비불사 회향을 했다.
길상사를 둘러보며 스님이 잠시 머물렀던 그 발자취를 더듬어 보았다. 나무 표지판에 쓰여진 스님의 말씀이 쓰여진 글귀, 스님이 잠시 거처하던 방, 스님이 앉아서 휴식을 취하던 벤치 등 무엇 하나 스님의 체취가 남겨지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돌담에는 노란 봄 꽃이 피었다.
법정스님께서는 이 꽃을 보지 못하셨지만, 어느 해 봄 핀 꽃을 산책하시며 보셨을 것이다. 다리 아래 계곡에는 물이 흘렀다. 법정스님께서도 다리를 걷느시며 물 소리를 들으셨을 것이다. 나무에 새 한 마리가 앉았다. 스님도 그 새를 보셨을 것이다.
잠시 쉬기 위해 벤치에 앉았다. 이 벤치에도 언제인가 법정 스님이 앉으셨을지도 모른다. 디지털북에 노트를 하는데, 어디선가 디지털북 화면에 한 방울씩 떨어졌다. 비가 오는가 보다. 이 비는 추모객들의 소리 없는 눈물일까. 빗방울이 굵어진다. 벤치에서 일어나 법정스님께 마음 속으로 인사드리고 버스 정거장을 향해 걸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죽어 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나를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보다 지금 살고 있는 '생의 백서(白書)'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육신으로서는 일회적일 수밖에 없는 죽음을 당해서도 실제로는 유서 같은 걸 남길 만한 처지가 못 되기 때문에 편집자의 청탁에 산책하는 기분으로 따라 나선 것이다. - 법정스님 유서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