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불편함

by 폴작가


[홍콩에서 만난 대학친구]


"그래. 결국 도착했네."

쿠롱역으로 마중나온 홍콩친구 천인옌이 던진 첫 인사말이었다. '결국' 이라는 말이 다소 힘이 실렸다. 4개월 전, 군대에서 마지막 휴가를 나왔을 때 한국에 놀러온 천인옌에게 세계일주를 떠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만일 출발을 하게 되면 홍콩부터 시작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후, 네 달 뒤, 70달러도 안 되는 돈을 가지고 정말로 세계일주를 떠났고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는 어이 없다는 듯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어찌 되었던 난 이미 출발했고, 홍콩에 도착했다. 통장에는 기존에 있던 7만원과 친한 친구가 입금해 준 10만원이 전부였다. 물론 며칠 전 삼촌께서 주신 500달러가 있지만, 없는 돈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으니까.

천인옌은 반가워하면서도 한숨을 깊게 내쉬며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홍콩에 있을 때까지, 누추하지만 자신의 집에서 부담없이 지내라며, 집은 정말로 작았다. 이런 방이 홍콩에서는 4억을 웃돈다. 살고 있는 인구에 비해 땅이 너무 작아서다. 마치 일본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천인옌의 어머니께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딸과 닮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아담한 체구가 그녀의 어머니를 짐작케 했다.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도착 전부터 저녁상을 준비하고 계셨다. 부담드리기 죄송스러웠는데, 서투른 만다린어로 '메이스 메이스'(괜찮아요)만 반복하실 뿐이었다. 여행을 떠나온 후, 가족이 아닌 남의 집에서 처음으로 신세를 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집 내부를 촬영하거나, 음식을 찍는 행동은 않았다. 괜히 친구 어머니의 마음에 불편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사를 하고, 두 사람은 다음날 출근을 해야되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3평 남짓한 거실에 있는 티비 앞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다리를 쭉펴고 눕기에는 터무니 없이 좁은 공간이었다. 잠자리 불편해 몸을 뒤척이기를 수십번, 그렇게 홍콩에서 첫 날이 지나갔다.


[친구의 부탁]


홍콩으로 떠나온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나에게 부탁을 하나 했다. 자신이 일하고 있는 초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아이가 둘이 있는데, 그 아이들이 한국어 교육관련하여 스킷드라마를 찍는데 도와줄 수 있냐는 부탁이었다. 게다가 내가 이번에 한국에서 한복을 협찬 받아 가지고 간다는 소식을 듣더니 내심 더 반기는 목소리였다.

한국의 전통절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는 과정을 녹화하는 것이었다. 녹화 자체는 간단한 작업이었다. 단지 아이들이 계속 NG를 내는 바람에 예상보다 한 시간 정도 작업이 더 지연되었다. 사진과 관련된 일도 아니고, 더운 날씨에 한복을 입고 있으려니 고역이었다. 얼른 촬영을 끝내고 한복을 벗어버리고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겉으로 드러내지만 않았을 뿐 마음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다.

천인옌이 수고했다며 저녁을 사주었다. 가뜩이나 물가 비싼 홍콩엥서 나에게 숙식을 해결해주는데, 오히려 고맙다고 밥을 사주다니. 덥고 짜증나고 불편하다고 속으로 불평만 하고 있었던 내가 참 부끄러웠다. 이 정도도 못하면 애초 이 말도 안 되는 여행을 시작하지 말았어야지... 고생할 거 뻔히 알고 떠나왔으면서도, 참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간사했다.



[불편한 설렘]

식사를 끝마친 후, 천인옌에게 집에 들어가기는 이르다며, 홍콩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조금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본인도 좋다고는 했지만, 갈 때가 없다면서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다. 천인옌이 학생시절 때 한국에 멋진 곳을 소개시켜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갈 곳이 없어 고민하던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홍콩은 달랐다. 사방팔방이 이국적이고 특색이 넘치는 거리들로 가득했는데 갈 때가 없다는 그녀의 이야기에 의아했다. 내 눈에는 홍콩의 사소한 모든 것들이 그저 아름답고 즐겁게만 느껴졌다.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천인옌에게 말했다.

'천인옌, 혹시 부산 가봤어? 홍콩은 참 부산이랑 비슷한 것 같아.'

천인옌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부산이 훨씬 더 멋지고 볼 것도 많아!'

서울보다 홍콩이 훨씬 낫다고 할 때도, 그녀는 늘 홍콩에는 볼 게 없다며 투정이다. 심지어 빅토리아피크보다 서울의 남산타워가 훨씬 좋다고 말한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그녀는 불에 타서 새로지은 건물이라도 좋으니 한국의 숭례문처럼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내가 예전에 공부하던 캐나다는 볼 것도 많고 기후도 좋아 살기가 참 좋은 나라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도 여러면에서 불편한 점이 훨씬 더 많았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내가 살아오던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또한 천인옌과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뭔가 불편한데, 그냥 캐나다에서 있는 것이 더 좋은 그런 감정.

사실 여행은 무언가 특별한 것을 보러가는 것이 아닌, 그저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또 다른 모습의 평범'을 보고 싶어하는 욕구일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이 익숙하다는 사실보다 더 많은 유익을 줄 때가 많다. '설렘' 이라는 감정은 익숙함에서는 누리기 힘든 감정인 것처럼.

내 인생에 있어 처음으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떠나온 여행, 익숙한 것은 당연히 없고, 계획을 한 것이 없으니 불편하기 짝이 없다. 바로 코 앞에 미래도 어찌 될지 모르는 운명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상하게도 계속 가슴이 뛰고 설레는 이유는 왜일까. 이러한 불편함이 내게 크게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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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글 폴작
작가블로그 walking-studio.com
작가인스타 @walking_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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