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너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뭐야

by 폴작가


[안전지대를 떠나다]

친구 집에서 머물 수 있어서 숙식을 아낄 수는 있었지만 한 가지 큰 단점이 있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친구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보니 친구집에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렇게 돈을 아껴 여행을 한다고 나한테 남는 게 뭐란 말인가...?"

돈을 쓰는 한이 있어도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홍콩을 떠나게 되면 정말 의지할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결국 남에게 민폐만 끼치는 여행을 할 것 같았다. 홍콩을 떠나기까지는 고작 이틀이 남았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래, 이틀은 호스텔에서 지내보자. 호스텔에 가면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홍콩에서 가장 싼 호스텔을 찾았다. 사람을 만나고 싶었기에 가능한 예약이 많이 되어 있는 곳으로 골라서 선택했다. 천인옌에게 고맙다는 작별의 인사를 하고 나는 호스텔로 거처를 옮겼다.

예상보다 호스텔에는 사람이 적었다. 도미토리에 3명이 예약되어 있다고 되어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텅 빈 방에 나 홀로 체크인을 했다. 사람을 만나러 왔는데 오히려 아무도 없어서 낭패였다. 또 머리가 하얘졌다. 그나마 여자 손님들이 몇 있는 것 같았지만 남녀 도미토리가 서로 분리되어 있어 쉽게 말을 걸기도 어려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 지 몰랐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돌아오니, 반갑게도 내 옆자리 못 보던 가방이 놓여 있었다. 잠깐 자리를 비운 듯했다. 누군가가 내 옆자리에 들어왔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설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돌아왔고, 내심 한국사람이길 기대했지만 유럽사람 같은 남성이 들어왔다.

먼저 인사라도 해주지. 그는 고개만 끄덕이더니 곧바로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여행을 떠나온 이후로 처음으로 외국에서 만나는 여행자라 너무나도 반가웠다.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서라도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자 마자 나는 반갑게 인사를 건냈다.

"만나서 반가워! 나는 한국에서 온 폴이라고 해!"

그제서야 무뚝뚝해보이던 그는 반갑게 악수를 해주며 나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는 프랑스에서 온 퀜틴이라는 친구였다.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랐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러다가 나의 여행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오게 됐다.

"그럼 모델이 필요하다는 얘기네? 내일 나 일정 없으니까 침사추이에 가서 같이 사진 찍고 노는 게 어때?"

적극적으로 먼저 사진을 찍겠다는 말에 나는 너무나도 고마웠다. 지금까지 프리포토를 하겠답시고 생쑈를 했지만 아무도 나에게 사진을 찍으러 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보다 쉽게 첫 촬영모델을 만날 수 있게 되다니...너무나 기뻤다. 불편한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그냥 놀고 오면 되는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퀜틴의 사진을 담기 위해 침사추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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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뭐야?]

"폴, 도대체 뭘 그리 고민해?"

카메라 매장에서 렌즈를 바라보며 고민을 하고 있던 나에게 퀜틴이 물었다.

"사실 이 렌즈가 필요해서 꼭 사고 싶은데, 이걸 사려면 지금 내가 가진 전 재산을 써야 되거든..."

전 재산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내 돈은 12만 원이 전부였다. 북경에서 외삼촌께서 용돈을 하라고 주신 500달러가 있었지만, 가족에게 받는 것은 자존심이 상한다며 결코 여행자금으로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였다. 하지만 사고 싶었던 렌즈 앞에서 그런 다짐은 이미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눈 여겨보았던 렌즈는 아기백통이라고 불리는 70-200mm 망원렌즈였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제품은 미개봉 중고제품으로, 미화 달러로 500달러에 판매하고 있다고 했다. 정확히 500달러였다. 그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흔들렸다. 나에게는 삼촌에게 받았던 500달러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간사했다. 이미 그 돈은 여행자금으로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그 돈을 비상금으로 쓰겠다는 생각을 벌써부터 하고 있었나보다. 렌즈를 위해 필요한 정확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이 돈을 쓰기가 망설여졌다. 이 돈을 쓰면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각에 잠겨 있던 나를 보며 퀜틴이 질문을 한 것이었다.

"네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게 뭔데?"

갑작스럽게 퀜틴은 나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차마 쪽팔리게 돈이라고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여행을 오래하는 것이 나의 본질적인 여행의 이유는 아니었다. 처음 여행을 출발 할 때 "내가 과연 사진을 돈보다 좋아하고 있을까" 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떠나왔던 나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진이지."

퀜틴은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이미 답이 나왔네. 도대체 뭘 고민해, 넌 이미 70달러도 안 되는 돈을 가지고 세계일주를 하겠다고 떠나온 미친놈이잖아."

"미친놈(Crazy Guy)"이라는 말이 썩 기분 나쁘지는 않은 말이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지금 내가 고민해야하는 것은 더 오랜기간동안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원래 이 돈은 내 계산에 있던 돈이 아니었지 않던가. 내가 만일 이 돈을 렌즈에 투자를 한 후, 여행 자금이 없어서 여행을 그만 두어야 한다면 그만 두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 500달러를 여행자금에 쓰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렌즈를 사자. 삼촌께서 나에게 렌즈를 후원해주었다고 생각하는거야."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렌즈를 구매했다. 이제 정말 내 수중에 남은 돈은 한국의 친구들이 조금씩 보태준 것을 포함하여 20만원도 채 남지 않았다.

마음은 극도록 불안에 휩싸였지만, 새로운 망원렌즈를 카메라에 장착하고 나니 뭔가 마음이 든든했다. 렌즈가 크니까 뭔가 정말 이제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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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해야할지 몰라 고민하던 나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준 퀜틴에게 너무나도 고마웠다. 퀜틴의 한 마디가 없었다면 나는 결코 렌즈를 살 수 있는 용기를 얻지 못했을 것만 같다. 더 나아가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 또한 잊고 살 뻔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무작정 돈을 아끼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됐다. 당장 여행을 그만두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써야 할 때는 꼭 쓰자고.

하지만 다음 여행지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 다시 현실적인 문제가 다시 나를 미치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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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글 폴작
작가블로그 walking-studio.com
작가인스타 @walking_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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