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제가 더 감사한걸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숨이 턱턱 막혔다. 엄청난 습도와 온도가 동남아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다낭국제공항은 우리나라의 일반 지방 버스터미널만큼이나 작았다. 수속을 마치고 입국장을 나섰다. 거대한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를 단 번에 알아보았는지, 만나기로 했던 카우치서핑 호스트가 손을 흔들며 다가와 나에게 동남아 특유의 영어역양으로 인사를 건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쉔니하오라고 해요."
베트남 사람인데 이름이 마치 중국 이름처럼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할아버지가 중국 분이셨다. 중국계 베트남 사람이라서 중국어를 잘 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녀는 중국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영어도 서툴렀다.
"이렇게 처음보는 외국인을 초대해주셔서 고마워요."
"오히려 지금 제가 더 감사한걸요!!! 카우치서핑 손님을 처음 받아봐요. 그래서 지금 기분이 너무 좋아요."
그녀는 대학에서 국제통상학을 전공했지만 아직까지 해외에 한 번도 나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영어를 배우긴 했지만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를 해보는 것도 처음이라고 했다. 그녀가 왜 그렇게 반가워했는지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이 다낭을 잘 몰라요. 대부분 휴양지로 오기 때문에 카우치서핑을 신청하는 분들도 많이 없어요.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드디어 첫 번째 손님이 와서 너무나도 기분이 좋답니다. 정말 고마워요 폴!"
그녀는 정말 기분이 좋았는지, 첫 날 하루는 나에게 자신의 오토바이를 하루 종일 마음껏 타고 다니라며 아무 조건 없이 빌려주었다. 저녁에 만나려면 연락이 되어야 한다며 베트남 심카드도 선물해주는 꼼꼼함도 잊지 않았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감사한데, 어떻게든 더 잘해주려고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로 무언가 해주고 싶었다.
[예상치 못한 여행]
"쉔니하오, 저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 선물하면서 세계일주를 하고 있어요. 혹시 괜찮다면 나를 초대해준 보답으로 사진을 선물하고 싶은데 어때요?"
그녀는 매우 기뻐했다. 사진을 아주 좋아한다면서 그동안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곳에서 찍고 싶다고 했다. 오히려 나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오토바이로 약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후이안으로 놀러 가자고 제안했다. 자신의 오토바이를 한 대 더 빌려줄 테니 함께 가서 후이안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자며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다낭도 생소한데 후이안이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곳도 가보게 되다니... 홍콩에서 교통수단이 없어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로 바로 가지 못하는 것이 불운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법을 찾다가 새로운 다낭이라는 도시도 알게 됐다. 그곳에서 쉔니하오라는 좋은 현지호스트도 만나게 되고, 예상치 못하게 후이안이라는 도시로의 여행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아, 이것이 바로 전화위복이라는 것인가.
후이안에는 쉔니하오의 남동생이 병원 레지던트로 일을 하고 있었다. 남동생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지만, 쉔니하오가 옆에서 통역을 해주며 잠깐이지만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베트남어로 여행을 응원하는 메시지도 써주었다. 베트남 친구에게서는 처음받는 메시지라고 하니, 사뭇 좋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옷 좀 갈아입고 올게요. 잠깐만 기다려 줄래요?"
사실 후이안에서 사진 찍는다고 했는데 너무 프리한 차림으로 와서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그녀는 가방에서 하얀 원피스와 악세사리를 꺼내더니 잠시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녀는 안경도 벗고 완전히 변신을 해서 나타났다.
베트남은 오토바이가 주된 교통수단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베트남 여성들은 아무리 중요한 자리를 가더라도 오토바이를 탈 때는 편한 옷을 입었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을 때가 많았다. 오토바이를 타면서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 헝클어질 수도 있고 옷이 땀에 다 젖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그녀의 오토바이를 탈 때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찍기를 거부했다. 물론 결국 웃으며 한 장을 찍었지만, 베트남 여성들도 뭇 다른 나라 여성들처럼 이쁜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것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았다. 당시에는 포토샵을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어 피부 보정을 할 줄 몰라 사진을 기본 보정만 해서 주었는데, 쉔니하오에게 피부 보정은 왜 안 해주었냐며 핀잔을 듣기도 했다. 뭇 여성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시 아름다움에 예민하다.
이후 나의 보정기술이 조금씩 좋아졌고, 1년이 넘은 시간이었지만 쉔니하오의 사진을 다시 재보정해서 페이스북으로 보내주었다. 그랬더니 자신을 잊지 않고 사진을 다시 보정해서 보내주어 너무나 고맙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다낭을 떠나기 전, 쉔니하오의 요가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주었다.
예상치도 못한 다낭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무계획 여행이 주는 특별한 매력이었다. 출발 전에는 온갖 걱정이 내 머릿속을 휘저었지만, 결국 또 현장에 오니 오히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상황이 전개됐다. 저렴한 비행기 티켓이 없어 어쩔 수 왔던 다낭에서 너무나도 친절한 첫 번째 카우치서핑 호스트를 만났고, 덕분에 나는 내가 계획한 것 이상의 여행과 인연과의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경험자체가 특별했다기 보다는, 예상하지 못했던 경험이기 때문에 특별하지 않았을까.
이 날부터 나는 다짐했다. 여행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불평보다는 지금 그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최대한 집중해보자고. 이번 나의 여행은 적어도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닌, 내가 사진을 진심으로 좋아하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여행이니까.
마지막으로 다낭을 떠나는 날, 쉔니하오의 가족사진을 선물해주었다. 이번 세계일주를 시작하며 처음으로 선물하는 가족사진이었다. 비록 당시에는 비루한 실력으로 작업한 사진을 데이터로 밖에 전달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녀의 가족들은 참 좋아해주었다.
아무런 계획도 연고지도 없는 곳이었지만, 처음으로 내가 꿈꿨던 여행을 할 수 있어 의미가 깊은 시간이었다. 이곳에서 시간들 덕분에 앞으로도 여행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이후 기대하고 있던 하노이여행에서 또 한 번 현실의 벽에 마주하게 되는데...
사진 / 글 폴작
작가블로그 walking-studio.com
작가인스타 @walking_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