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방황 속의 희망

by 폴작가

[심장 떨리게 하는 도시]

"삑삑~!!! 빵빵~!!! !@#$%^&*"

이른 아침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로 진입했다. 조용하고 아늑했던 다낭과는 다르게 하노이 시내는 그야말로 전쟁터를 연상하게 했다. 수백대, 아니 수천대로 보이는 엄청난 오토바이 군단들이 좁은 도로 사이를 무자비로 질주했다. 결코 질서는 없었지만, 그들만의 암묵적 질서가 있는 듯 했다. 1분 1초도 오토바이 경적이 울리지 않는 순간이 없었다. 앞에 방해물이 있던 없던 그들은 살기 위해서는 무조건 경적을 울리는 듯 했다. 그야말로 하노이는 질서있는 혼돈의 도시였다.

뜨겁게 달구어진 아스팔트 위로 오토바이 뒤로 뿜어나오는 시커먼 매연이 하노이 시내 상공을 가득 메웠다. 안 그래도 푹푹 찌는 더위에 공기까지 퀘퀘한 것이 마치 거대한 광산 속을 거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안그래도 무거운 배낭 때문에 온 몸이 지쳐 있는데 조금이라도 빨리 숙소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복잡한 하노이 시내구조와 정신 없는 도로 상황은 나의 심장을 끊임없이 요동치게 했다. 어딘가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아 미치겠다. 빨리 어디든 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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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을 여유가 없다]

간신히 사전에 알아두었던 숙소를 찾았다. 하루에 1.5달러(한화 2,000원) 밖에 하지 않는 도미토리였다. 가격도 저렴한데 아침도 제공해준다고 해서 여기로 결정을 하게 됐다. 우선 도착하자마자 5일간의 숙박비를 지불했다. 5일간 있어도 숙박비가 만원이 조금 넘는 아주 저렴한 가격이었다.

정신 없는 하노이 도심을 마주하고는 혼이 나가 방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자금이 떨어질 지 몰랐기 때문에 막연히 그냥 숙소에만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우선 도심 리서치라도 해야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태한 생각이 들기 전에 찬물로 샤워를 했고 곧바로 카메라 하나만 들고 숙소 밖을 나섰다.

막상 나오긴 했지만 어디를 가야할 지 몰랐다. 홍콩 때와 상황은 비슷했다. 인터넷을 찾아봤지만 그닥 나의 흥미를 끄는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그냥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그냥 도심 곳곳을 열심히 쏘다녔다. 찍다보면 길이 생기겠지 라는 막연한 마음이 그냥 나의 걸음을 이끌었다. 사람과 오토바이가 서로 얽혀 춤을 추는 하노이 도심에서는 사진을 찍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오토바이들 때문에 마음놓고 사진을 찍기도 위험했다. 그래서 가능한 계속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가게 됐다. 골목 구석구석으로 들어가니 그제서야 조금 마음의 여유를 갖고 셔터를 누를 수 있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여행이 끝날지 모르는 두려움에 계속 사로 잡혀 있던 나였지만, 전원적인 하노이의 교외 풍경을 바라보며 잠깐이나마 누구를 만나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를 계속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은 나를 불안하게 했지만, 이렇게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풍경이나 찍으면서 여행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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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야하지]

오전에 열심히 돌아 다니긴 했지만 여전히 가슴은 답답했다. 돌아다니고 있는 분명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금이 여유로운 여행이라면 그냥 도심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여정이 되겠지만, 목적이 없는 방황은 지속적으로 나를 불안의 늪으로 이끌었다.

"도대체 어딜 가야 할지를 모르겠다. 내가 지금 이 사진은 또 왜 찍고 있는거지..."

이국적이라는 이유 말고는 셔터를 누르는 이유가 없었다. 이국적인 광경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재미는 있었지만, 여행의 미래가 보이지 않기에 답답함을 피할 수 없었다. 남은 자금은 최대로 아꼈을 때 10일정도 밖에 버티지 못할 돈 뿐이었다. 무작정 돌아다니다보면 답이 생길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오전에는 도심을, 오후에는 하루에 5,000원도 안하는 오토바이를 빌려 시외까지 나가보았지만 아무런 단서가 나타나지 않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우선 사람을 만나야겠어. 이렇게 아무런 목적없이 돌아다니는 건 불필요한 지출만 발생시킬 뿐이야."

결국 풀이 죽은 모습으로 다시 숙소로 향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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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쌀국수 한 그릇]

오전에 다낭에서 카우치서퍼 집에서 아침식사를 한 것을 제외하고는 식사를 하지 못했다. 너무 배가 고파서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서 가장 저렴할 것 같은 식당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인상이 좋은 아저씨에 이끌려 한 현지 쌀국수 집으로 향했다.

완벽한 로컬식당이었다. 쌀국수 가격도 한 그릇에 한화로 1,000원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고기를 먹어야 겠다는 생각에 한화로 300원정도 되는 돈을 더 지불하고 소고기가 조금 들어간 쌀국수를 시켰다. 쌀국수를 내오던 사장님은 갑자기 나를 향해 웃으며 영어로 말을 걸었다.

"꼬리아?"

보통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이냐고 물어보는데 나를 보고 한국인으로 물어봐주는 아저씨가 신기했다. 아저씨는 한국드라마를 아주 좋아하고 예전에 부산에 놀러 가본 적이 있다고 하면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영어를 잘 하시는 편은 아니었지만, 아저씨가 다녀온 부산에 대한 이야기, 또 드라마 대장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완벽하게 통하지는 않아도 서로 웃으면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하루종일 한국여행객들은 커녕 외국사람들과 이야기 한 번 못하고 혼자서 불안에 떨며 이리저리 방황만 하고 다녔는데, 하루일정을 마감하는 마지막에 쌀국수 집 사장님과 잘 되지도 않는 영어로 몇 마디 주고 받은 게 어찌나 즐겁던지, 오늘 하루 일정 통틀어 가장 보람된 시간이었던 것 같다. 기분이 너무 좋아 내 카메라로 함께 사진을 찍은 후, 그 자리에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발송해드렸다.

"그냥 가요. 대신 나중에 또 놀러와요."

사진을 받고 기분이 좋으셨는지 아저씨는 쿨하게 쌀국수 한 그릇을 쏘시겠다며 계산을 하지 않으셨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쌀국수 한 그릇을 지불할 돈은 있었지만, 아저씨는 기분이 너무나 좋다며 한사코 결제를 사절하셨다. 이제 여행을 시작한지 15일 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그 때까지 먹은 밥 중에 가장 따뜻했던 식사대접이었다.

사람을 만나는게 즐거웠다. 아저씨를 만난 이후로 내일부터는 아무 목적없이 관광지를 돌아다니지 말고, 우선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됐다. 숙소로 돌아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 어딘 지를 검색했다. 거대한 카메라를 가지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가면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갑자기 내일이 기대됐다. 내일은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사진 / 글 폴작
작가블로그 walking-studio.com
작가인스타 @walking_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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