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거절을 마주하며 알 수 있었던 것들

by 폴작가


[사람들을 만나러 가다]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떠나온 여행이었다. 하지만, 거창한 꿈을 찾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기 이전에 사람을 만나는 것에 조금 더 관심이 있다는 걸 느꼈다. 사람을 만나려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가야 했다. 그러려면 하노이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노이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 어디가 있을까요?"

호스텔 직원에게 물어보니 하노이에서는 호암끼엠 호수 주변이 여행자 거리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사람이 많다고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기에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숙소를 나섰다. 숙소를 나서자 마자 숨막히는 하노이의 열기가 나를 맞이했다.

"오늘도 쉽지 않은 하루가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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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호암끼엠 호수에는 과연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있었다. 베트남 현지인들도 많았고, 외국 여행객들도 많았다. 곳곳에 한국 단체 관광객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래, 이정도면 홍콩보다는 훨씬 더 상황이 좋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호암끼엠 호수를 계속 돌면서 기회를 엿 보기로 했다. 무턱대고 좋은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다보면 한 사람 정도는 만나지 않을까를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홍콩에서와 마찬가지로 막상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하니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성적인 내 성격으로는 도저히 용기를 내기 쉽지 않았다.

내심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주길 바랬다. 그래서 일부러 거대한 망원렌즈만을 장착한 채로 이곳 저곳을 서성였다. 크고 좋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 사람들이 먼저 알아봐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졌다.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내가 큰 망원렌즈로 사진을 찍고 있으면 그 모습에 호기심을 가지고 포즈를 취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거대한 카메라가 부담스러웠는지 나와 눈이 마주치면 인상을 찌뿌리며 시선을 피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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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찍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고, 사람들에게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때로는 한국여행객들이 보이면 사진을 찍어드리겠다고 먼저 인사를 건네며 다가가기도 했다. 하지만, 부담과 회의감, 그리고 두려움에 가득찬 눈빛 만을 마주할 뿐이었다. 외국 친구들에게도 시도해보고 싶었지만, 한국인들에게도 다가가기 쉽지 않은데 외국인들에게는 내 마음을 열기가 더 쉽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걸까. 왜 사람들은 나에게 찍히기를 원하지 않을까..."

그렇게 호수 주변을 서성이기를 벌써 6시간, 단 한 명의 여행객도 제대로 담지 못했다. 그나마 혼자 사진 찍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먼저 다가가 몇 장을 찍어주기는 했지만 그 몇 장이 전부였다. 그 다음 지속적으로 그들과 대화를 하고 싶어도 공감대가 없기 때문에 바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야 했다.

사람은 많았고, 사람들을 만났으나 진정한 의미에 있어 사람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점심도 먹지 못한 채 걸어다니기만 했더니 힘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힘든 것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허무한 마음으로 호수 주변 벤치에 앉아 하늘 만을 바라보아야 했던 나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도저히 답을 모르겠다. 우선 오늘 남은 시간은 하노이 구경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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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유취, 有意有趣]

호암끼엠 근처에 있는 세인트요셉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남아에서 유럽식의 성당이라니 이색적인 모습에 사진을 찍기도 참 좋았지만 그 이상 느껴지는 감흥은 없었다. 옛날에는 한국과 다른 곳이면 그저 재밌어서 다녔던 시간들이 있었지만, 3년 전, 유럽을 두 달간 여행하면서, 목적 없이 관광지만 쫓아다니던 여행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남는 것이 없다고 이미 흥미를 잃은 지 오래였다.

세인트요셉성당에 담긴 재미있고 의미깊은 일화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더 많이 정보를 접할 수 있고 지금 이 순간의 여행에 보다 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당장 나에게는 그것들에 대해 알고 싶은 동기부여 생기지 않았다. 아무런 목적없이 그 놈의 "꼭 봐야할 것들, 꼭 알아야 할 것들, 꼭 느껴야 할 것들, 꼭 가봐야 할 것들" 이라는 것들에 의해서만 평생을 살아왔다. 내 스스로 내면에 원하는 것이 아니면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꼭 봐야할 것들, 꼭 알아야 할 것들, 꼭 느껴야 할 것들을 논하기 전에, 왜 그것을 해야하는 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 분명한 이유가 내 가슴을 뜨겁게 했다. 그 이유가 분명한 상태에서 보아야 할 것들을 보아야 했고, 알아야 할 것들을 알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제되지 못한 편견들을 내 가슴 속에 불필요하게 쌓아둘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유가 분명하지 않으니 아무런 의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의미가 없으니 재밌지도 않았다.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그 어떤 멋진 관광지를 가도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그저 허무함과 걱정, 미래를 향한 두려움 이라는 쓰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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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무렵 만난 특별한 인연]

하노이 시내에는 공자문묘라는 곳이 있다. 물론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지금도 모른다. 무엇을 알려고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공원이 아늑하고 좋은 것 같아서 공원 내 벤치에 앉아 노래나 들으며 청승맞게 석양이나 볼 생각이었다.

"중국인 이세요?"

입장료를 사는데 한 베트남 친구가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걸었다. 지금까지 베트남 사람이 하는 영어 중에 발음이 너무 원어민 같아서 깜짝 놀라 쳐다보게 되었다.

"아뇨. 한국인이에요."

혼자서 여행 온 분인 줄 알았는데 뒤에는 그녀를 막연히 따라온 듯한 가족들이 보였다.

"혼자서 여행해요? 베트남에는 왜 왔어요?"

하루종일 나한테 먼저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갑자기 나한테 다자고짜 먼저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있어 신기하기도 하고 반가웠다. 비록 한국 사람은 아니었지만, 영어가 워낙 유창했던 그녀 덕분에 나 또한 대화하는 데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못해 나도 모르게 계속 대화를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내가 왜 여행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게 됐다.

"와... 대단해요. 저는 지금 세계보건기구 하노이 지사에서 오피스 닥터로 일을 하고 있어요. 공부만 하고 지내서 베트남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데 정말 부러워요."

25살의 나이에 세계보건기구 의사라니... 오히려 내가 그녀의 이력에 더 감탄을 할 입장이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나의 삶이 더 부럽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25년간 단 한 번도 가족들과 함께 놀러 가본 적이 없어요. 고향이 다낭인데, 이번에 가족들을 하노이로 초대해서 처음으로 여행을 하게 되네요. 할머니가 꼭 호치민 묘를 와보고 싶다고 하셨거든요.(웃음)"

비록 그녀에게는 국내여행에 불과할 수 있겠지만, 그녀에게는 아주 의미있는 여행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얼마나 지금 이 순간에 집중을 하고 있는지 또 얼마나 소중하게 느끼고 있는지 눈빛을 보며 알 수 있었다.

"그럼, 어차피 제가 사람들에게 사진을 나누면서 여행을 하고 있으니까, 여기서라도 함께 다니면서 가족 사진을 찍어드릴까요? 돈을 받는 게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구요:)"

그녀는 나의 제안에 정말 뛸듯이 기뻐했다. 변변한 카메라 하나도 가지고 온 것이 없었다. 스마트폰도 아닌 투지폰에 있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었던 그녀는 좋은 카메라로 담아준다는 말에 내심 기대를 많이 했었나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녀의 가족과 함께 합류하게 되며 사진을 찍어주게 되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공식적으로 첫 번째 사진나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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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40분을 동행하며 찍어준 사진이었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촬영이 끝난 이후에는 그녀의 할머니께서 베트남 말로 뭐라고 하시면서 시원한 물 한 병을 사다주셨다. 비록 작은 대접이었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내 사진에 고마움을 표한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 나에게 뜻 깊은 물 한 병이었다.

"폴, 내일 일요일인데 뭐해요? 혹시 괜찮으면 저랑 같이 놀래요? 모처럼 쉬는 날인데, 제가 하노이 구경 시켜줄게요. 폴의 여행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어요."

할 일이 있을리가 있나.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뛸듯이 기뻤다. 하노이에서 드디어 만남다운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억지스럽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게 된 만남이었기에 더 기뻤다. 게다가 내가 모르는 하노이를 직접 오토바이를 몰아 구경시켜준다고 하는데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럼 내일 만나요. 내가 숙소로 픽업갈게요!"

아무 생각없이 온 공자문묘에서 이런 멋진 인연을 만날 줄이야. 그냥 사람을 만나도 좋은데, 영어를 아주 유창하게 하는 엘리트 현지인이라니! 가슴이 뛰었다. 오늘 6시간 동안 거절을 당하며 허무하게 호암끼엠 주변을 돌았던 시간들에 대한 트라우마는 언제 있었냐는 듯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한국 청년이 베트남 가족들과 동행하며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이 신기했던 지 때마침 그곳을 여행하고 있던 한 한국인 가족여행객분들께서도 자신들의 사진 몇 장을 부탁하셨다. 그녀와 만나면서 또 한 번의 자연스럽게 이어진 사람들이었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처음으로 누군가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가슴 뛰는 시간이었다.

처음으로 다음 일정이라는 것이 생겼다. 내일이 이토록 기대가 되는 것은 여행을 떠나온 이후로 처음이었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이렇게 기뻐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비록 수많은 거절을 마주했지만, 그 거절 덕분에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진심으로 충분했다.

사진 / 글 폴작
작가블로그 walking-studio.com
작가인스타 @walking_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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