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앙프라방의 만낍뷔페]
루앙프라방에 올라가면 만낍뷔페라고 있는데, 만낍(한화 약 1,300원)만 내면 다양한 요리를 접시에 최대한 많이 담아서 먹을 수 있어요! 올라가서 지금까지 못 먹은 거 실컷 드시고 오세요!
베트남에서 늘 가장 싼 베트남 쌀국수만 먹던 내가 안쓰러웠는지, 호스텔에서 만난 한 여행자께서 만낍뷔페를 소개시켜주셨다. 비록 여행을 시작한 지 이제 3주 남짓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음식을 잘 먹지 못해서 그런지 속이 미식거리고 안색이 좋지 않았다.
전재산이 고작해야 몇 만원 밖에 없으니, 하루에 생활비로 5천원 이상 쓸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하노이에는 1.5달러 수준의 도미토리가 있었고 로컬 베트남 쌀국수도 한화로 1,000원 이내로 아주 저렴했기 때문에 5천원이라는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굶지 않는 것에 감사해야 했지만, 그래도 매일 아침 11시에 일어나서 아침을 거르고 남은 두끼를 베트남 쌀국수와 1리터 물병으로만 버티는 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했으니 만낍뷔페와 처럼 같은 가격이라도 무한으로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있다는 소식이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에슐리나 계절밥상같은 뷔페에서 발휘했던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겠다는 일념으로 루앙프라방에 도착하자마자 야시장으로 뛰어갔다.
만낍짜리 뷔페도 있었지만 모두가 만낍은 아니었고 만이천낍짜리 뷔페들도 여럿 있었다. 차이는 음식의 종류에도 있었지만 만낍뷔페는 요리시간이 좀 되어 식은 채로 비치되어있는 것들이 많았고, 만이천낍짜리들은 팬에 다시 한 번 데쳐주었기 때문에 같은 요리라도 조금 따뜻하게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천낍은 고작 260원에 불과한 차이었지만, 나에게는 큰 돈이었기 때문에 차가워진 음식이지만 만낍뷔페를 선택했다. 차갑긴 했지만 지금까지는 누리지 못했던 호사였다. 나는 욕심에 작은 그릇에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요리를 담아 올렸다. 주인 아주머니의 눈치 속에서도, 꿋꿋하게 남기지 않고 담아온 모든 요리를 순식간에 해치워버렸다.
여행을 떠나온 이후로 가장 푸짐하게 먹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맨날 국수를 먹고 물로 뿔려서 나의 거대했던 위장을 유지했었는데 오래간만에 포만감을 느낄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맛을 떠나서 배부를 수 있다라는 기쁨이 정말 컸던 순간이었다.
새벽이 되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배에 이상한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건가 했지만, 토를 하기 시작하면서 증세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먹은 걸 다 토해낸 거 같은데도 속은 나아지지 않았고, 밤새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 여행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아픈 날이었다.
[강력한 장염 치료제, 요리사 민지가 만들어 준 고추장 찌개]
이틀간 화장실을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움직일 수가 없었다. 새벽에도 화장실을 수십번 왔다갔다 하니라, 잠을 거의 잘수가 없어서 회복속도도 더디어졌다. 누가 밥 해주는 사람도 없으니 나가서 사먹어야 하는데, 나갈 힘이 도저히 생기지 않았고 이틀간 거의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그러던 중, 한 한국인 여행자가 내 방에 들어왔다. 민지라는 친구였다.
민지는 요리를 전공하고 한국에서 요식업계에서 종사하다가 일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온 친구였다.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장염으로 쓰러져 있던 나를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오빠 그거 한국 음식 먹으면 나을거에요! 제가 고추장을 갖고 다니니까 밖에서 이것저것 장봐서 저녁에 맛있는 찌개 만들어줄게요!
좋은 재료를 사야한다며 민지는 장만 두 차례 봐왔다. 귀찮을 수도 있는데, 그녀의 얼굴에는 피곤함 속에도 즐거움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고추장 찌개만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민지는 갑자기 부침개도 만들어보고 싶다더니 일을 점점 더 벌려갔다. 가만히 있어도 뜨거운 여름인데, 더 뜨거운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어가는 민지의 표정에서 '재미있다' 라는 것이 느껴졌다. 돈이 되는 일도 아니고, 힘들기만 할 수도 있는 일인데, 그것과 상관없이 행복해보이던 그녀의 모습에서 그녀가 정말 요리를 좋아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원래는 한국인들끼리만 먹으려고 했던 건데, 어느새 규모가 커지더니 호스텔 로비에 있는 식탁을 가득 채웠다. 매콤한 냄새가 호스텔 내에 가득 퍼지기 시작하면서 흩어져 있던 호스텔 식구들이 킁킁거리며 삼삼오오 로비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고추장찌개는 우리에게는 맛있을 수 있으나 외국인들에게는 지나치게 매울 수 있어 걱정이 많이 됐다. 하지만 몇 몇 호스텔 직원들을 제외하고는 그릇까지 싹싹 긁어먹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특별히 유럽 친구들은 남은게 더 없냐며 한 그릇을 더 부탁하기도 했고, 한 독일 친구는 내가 먹다 남은 그릇까지 깨끗하게 먹어치우기도 했다.
2주만에 먹는 한식이라 그랬는지, 입맛이 없었던 나도 눈 앞에 놓인 고추장찌개를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워버렸다. 장염에 안 좋다는 기름기 가득했던 부침개까지, 거침없이 입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식사 후, 거짓말같이 장염기운이 싹 사라졌다. 그토록 자주 가던 화장실도 더 이상 신호가 오지 않았고, 식은 땀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약으로도 해결하지 못했던 장염을 한식이 한 방에 해결해주었다.
장염에 걸렸던 한 사람을 돕기 위해 시작했던 한식파티는 어쩌다보니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장염으로 더이상 고생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맛있었던 고추장 찌개의 기억보다, 나는 요리 앞에서 웃음을 잃지 않던 그녀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더 나아가 그녀의 행복했던 모습이 단순히 그녀에게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행복은 그녀의 손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흘러들어갔고, 많은 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랑은 전혀 다른 분야지만, 민지를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누군가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 재미를 넘어 참 뜻깊은 일이라는 것을.
사진 / 글 폴작
작가블로그 walking-st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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