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게 비지떡]
시엠립에 도착하자마자 앙코르와트와 가장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다. 지리적인 이점을 이용해 어떻게든 승부를 보겠다는 마음이 있는 것도 있었지만, 하루에 1.5달러라는 저렴한 숙박비 때문에 선택한 이유도 있었다.
첫날 도착하자마자, 툭툭이를 타고 밤에 숙소로 이동을 했다. 구글 지도만을 의지하며 숙소를 찾아갔다. 하지만 생각보다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가면 갈수록 빛도 없는 어두운 곳을 지나가게 되면서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혹시나 납치되면 어쩌지, 협박을 당하면 어쩌지 걱정에 사로잡혔다. 결국 지도가 표시한 대로 어렵게 도착하긴 했지만 정말 숲 속 중간에 위치한 외진 숙소였다. 툭툭 기사는 원래 1달러를 불렀는데, 너무 먼 거리에 왔다며 2달러를 요구했다. 지도를 보여주고 결정했기 때문에 절대 줄 수 없다고 싸우다가 '뻑킹 코리안' 이라는 말까지 듣기도 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곳에 있으니 가격이 쌀 수밖에.
숙소 환경은 생각보다 더 최악이었다. 시설은 나름 깔끔한 편이었지만, 샤워를 하는데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물이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머리에 샴푸 거품이 가득한 상황이었어서 당황스러웠다. 영국인이었던 주인한테 따졌지만, 지금 물탱크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며 생수 1리터를 가져다주었다. 한 병으로는 모자라 두 병을 달라고 해서 간신히 몸을 씻고 나와 몸을 누이려고 하는데, 갑자기 번개가 치더니 게스트 하우스 내에 전기가 다 나가버렸다. 푹푹 찌는 날씨였는데 선풍기까지 작동하지 않아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모기는 어찌나 많은지 자꾸 귀에서 앵앵거리는 바람에 잠을 설쳤다. 설상가상으로, 방 벽을 타고 자꾸 돌아다니는 도마뱀 3마리 때문에 신경이 쓰여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음날 샤워할 때 받았던 생수 2리터에 대한 비용 2달러를 지불하라는 말을 들었다. 당신네들이 마땅히 제공해야 할 물도 제공받지 못 해서 어쩔 수 없이 받은 물통인데 돈을 청구하면 어떡하냐고 따졌지만 한 통은 부탁을 안 했는데 더 달라고 했으니 1달러는 무조건 받아야겠다며 억지를 부렸다. 하루에 1.5달러라는 저렴한 숙소였지만, 시내까지 6킬로가 넘고 밤에는 가로등조차 없어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도 아니었다. 그래서 늘 툭툭을 이용해야 했는데, 툭툭 이용값만 왕복 2달러가 넘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
와이파이도 불안불안했다. 시도 때도 없이 정전이 되었기 때문에 그나마 되는 와이파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속도도 얼마나 느린지 간신히 메시지 정도만 주고받을 수 있는 정도였다. 숙소를 옮기고 싶었으나 예약을 3일간 한 상태였기 때문에 3일만 버티자는 마음으로 울며 겨자먹기로 버틸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두 번째 날 밤 페이스북을 통해 어떤 한 분이 연락이 오셨다.
[갑작스럽게 날라 온 메시지]
재밌는 프로젝트를 하고 계신 것 같은데
괜찮으면 우리 집에 오셔서 함께 지내실래요?
시엠립에 도착해서 게스트 하우스 라운지에서 페이스북을 하고 있었는데 한 여행 커뮤니티에 올렸던 포스팅에 누군가가 댓글을 남기셨다. 닉네임은 Agnes Lee 라는 분이셨는데, 캄보디아 시엠립에서 가이드를 하시는 분이라고 짤막한 소개를 해주셨다. 마음은 감사했지만 초면에 괜히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괜찮다고 했지만, 여행하는 친구들을 자주 초대해서 괜찮다며 부담 갖지 말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제가 지금 태국에서 휴가 중이라서 내일 저녁에나 도착해요.
내일 아침에 우리 아들이랑 친구 녀석이 모시러 갈 겁니다.
다음 날 아침, 건장하고 우람해 보이는 두 남성이 나를 픽업하기 위해 차를 끌고 KFC로 찾아왔다. 나이는 둘 다 27살이라고 했는데 둘 다 몸도 좋고 근육으로 각진 얼굴 때문에 나보다 형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아들인 재헌이는 특전사 부사관 출신이고, 친구였던 정인이도 육군 부사관 출신인 직업군인 출신들이었다. 얼마 전 전역 후, 어머니를 따라 가이드 일을 배우기 위해서 캄보디아에 왔다고.
나를 만나자마자 점심부터 대접하겠다며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대접받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인데, 어머니가 잘 해드리라고 했다며 두 친구들은 나를 세심하게 챙겨주었다. 아무리 어머니 부탁이라고 해도 자기 시간 내서 오는 것이라 귀찮기도 했을 텐데 나중에 내가 떠나는 그날까지 나를 극진히 대해주었다. 그렇게 그들과 하루 종일 편안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이 되어 방콕에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신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뜻 밖의 제안]
내일부터 내가 투어를 3일간 진행하는데
같이 동행하면서 손님들 사진을 찍어주는 건 어때?
사진 한 장당 1달러씩 받으면 많이 부담을 갖지 않으실 거야.
이번 기회를 통해서 용돈도 벌면 좋잖아.
집에 돌아오시자마자 여독이 풀리지도 않으셨을 텐데 나를 앉히자마자 뜻밖의 제안을 하셨다. 3일간 투어 비용이나 교통비용은 걱정하지 말고 같이 동행하면서 가족 단위로 오신 여행객분들께 사진을 찍어드리면 용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며 나에게 촬영을 권하셨다. 하지만 여행을 출발하기 전, 사진으로 최소 1년간 돈을 벌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기에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우선 알겠다고 한 후, 다음날 투어에 참여했다.
가이드님께서는 버스에서 자기소개를 마치시더니 나에게 갑자기 자기소개를 시키셨다.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그냥 간단하고 짤막하게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무료로 사진을 찍어주며 세계일주를 하고 있는
워킹스튜디오 사진작가 이정현이라고 합니다.
사진 한 장당 1달러씩 받으라고 했는데 무료로 찍어준다고 했으니 가이드님께서 약간 당황하신 듯했다. 하지만 머리가 아닌 가슴이 나를 그렇게 말하게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이드님께 설명드렸더니 우선은 찍기로 했으니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사진을 찍어드리라는 말씀을 남겨주셨다. 그렇게 3일간의 일정이 시작됐다.
날씨가 무척이나 더웠고 투어는 생각보다 강행군이었다. 하지만 아주 재밌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나는 물론 사진을 찍는데 정신이 팔려있기는 했지만, 때로는 가이드님의 박학다식한 지식과 재미난 설명을 들으며 셔터를 누르는 것을 잠시 잊을 때가 많았다. 무슨 캄보디아 역사학과에서 앙코르와트의 역사에 대해 교수님의 수업을 듣는 기분이었다. 가이드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전혀 관심도 없던 앙코르와트와 캄보디아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태국에서 <라마유르> 라는 책을 구해서 다 읽어보게 되는 열정까지 생겼었다. 역시 좋은 선생님은 자신이 모든 것을 잘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질문을 유도할 수 있게 하고 더 공부하고 싶게끔 만드는 사람인 듯. 이런 고퀄리티 투어 상품을 사진을 찍는다는 이유로 무료로 들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유익하고 좋았던 시간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었다.
폴작가 이렇게 더운 날에 고생하는데
우리 뭐 좀 해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
차에서 이동할 때마다 가이드님은 내가 의식되셨는지 손님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센스 있는 재치를 보여주셨다. 너무 대놓고 손님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마치 영업을 뛰는 것 같아 손님들이나 나에게도 큰 부담이 되었을 텐데, 워낙 말씀을 잘하시는 분이시라서 손님들께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주실 때가 많았다. 확실히 15년 차 베테랑 가이드의 역량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래서 사람은 정말 말을 어떻게 하느냐가 정말 중요한 듯.
[보수가 아닌 후원금이에요]
작가님 이거는 사진에 대한 보수가 아닌
고마운 마음에 드리는 여행 후원금이에요.
3일간의 투어가 끝나고 여행객들을 공항으로 모셔다 드리기 전 저녁식사를 다 마칠 때쯤이었다. 여섯 가족의 대표 분들이 갑자기 밖에 담배를 피우러 나가시는 것처럼 나가시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오시더니 나에게 봉투를 건네주시며 해주신 말씀이다. 더운 날씨에 3일간 너무 즐겁고 고생 많으셨다며 즐거운 추억을 선물해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주시며 내 손에 하얀 봉투를 꼭 쥐어주셨다. 나중에 집에 와서 열어보니 350달러. 한화로 무려 40만 원에 이르는 큰 액수였다.
사실 그냥 사진에 대한 보수라고 해도 되셨을 텐데, 사진에 대한 보수는 받지 않지만 자발적인 후원만 받는다는 말은 어디서 들으셨는지 말 한마디에 나에 대한 배려심이 가득 담긴 말씀이셨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가이드님께서 귀띔을 해주시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투어도 무료로 제공해주시고, 3일간 숙식을 모두 제공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디저트까지 열심히 챙겨주셨기에 너무 받는 것만 아닌지 감사한 마음과 죄송스러운 마음을 모두 금할 수 없었다.
꺼꽁에서 봉사팀으로부터 받은 후원금 중 남은 돈은 약 150달러, 이번에 여행객들을 통해 받은 것까지 하면 총 500달러 (한화 약 58만 원)이라는 엄청난 여행자금을 선물로 받았다. 당시 나의 생활 기준 동남아에서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최소 한 달 반을 버틸 수 있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누군가는 비웃을 수도 있는 작은 돈일 수도 있으나, 여행 초기 7만 원으로 출발했던 나는 이렇게 부자가 됐던 순간이 없었기 때문에 감격의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냥 너무나도 감사했다.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사진 뿐이라 그저 죄송했을 뿐이다.
[목적이 분명하면 수단과 방법은 따라온다]
누군가의 사진을 찍어 선물해드리는 것이 좋아서 그렇게 선택했을 뿐이었다. 돈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 절대 아니었고, 돈 생각이 조금도 나지 않았던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내가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도움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그 후원이 더 값졌던 이유는 내가 의도한 기쁨이 아닌, 의도하지 않은 기쁨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행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여행을 하는 본질과 사진을 찍는 본질에서 결코 벗어나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혹여나 돈이 없어 여행을 그만두고 집으로 되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러한 경험과 추억들만 내게 주어진다면 여행을 더 못하더라도 충분히 행복할 것 같았다.
캄보디아 시엠립에서 겪은 사건을 시작으로 8개월 후 이탈리아 피렌체에 도착하는 날까지 단 한 번도 여행자금이 바닥을 친 적이 없었다. 돈이 떨어질 때가 되면 기가 막히게 어디선가 도움의 손길이 나타났다. 그 도움은 단 한 번도 내가 부탁을 해서 들어온 도움이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가 그 분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늘 돈 걱정을 해야 하는 여행자였지만, 그렇지 않으려고 늘 노력을 했다. 써야 할 때라면 과감히 썼고, 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게 행동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나를 가난한 여행자로 보지 않았다.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서야 돈이 없는 줄 알았다고. 목적이 선하고 분명하면 수단과 방법은 조금 부족하게 느껴질 수는 있어도 늘 충분하게 채워졌다. 그래서 나는 남아있는 돈의 액수보다 내가 움직이는 방향성과 목적을 더 중요시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과정 속에는 늘 물질보다 사람이 먼저였다.
사진 / 글 폴작
작가블로그 walking-st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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