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

by 폴작가


[인도비자거부, 갑작스러운 귀국행]


방콕으로 돌아오자마자 인도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검색을 해본 결과, 인도에서 태국으로 넘어가는 비자를 받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았다.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들도 많고, 운이 나쁘면 서류 하나 때문에 퇴짜를 맞을 수 있다는 경험담도 보였다. 어찌 되었든 가보는 방법 밖에 없었다.

비자 발급을 위해 필요한 서류들을 가지고 태국 방콕에 있는 인도대사관을 방문했다. 대사관 담당 직원이 서류들을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당신은 왕복항공 티켓도 없고, 가서 어느 숙소에 있을지 바우처도 없네요.
무엇보다도 신용카드도 소지하지 않고 있어서 비자를 내줄 수가 없습니다.


출국 티켓은 인도에 가서 구입할 거라고 말도 해봤고, 숙소는 친구네 집에 있을 것이라서 바우처를 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신용카드는 없지만 통장에 충분히 여행자금이 있다고 말하며 직원을 설득했다. 대사관에 높은 사람이라고 하는 분까지 불러서 사정을 이야기해봤지만 도저히 비자를 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른 건 그렇다 하더라도, 신용카드가 없어서 나는 절대 인도 비자를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세 번이나 대사관을 찾아갔지만 똑같은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남은 방법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방법 뿐이었다. 하지만 내게 남은 비용은 고작 50여만 원. 원래는 비자비 약 7만 원 인도로 가는 항공료 10만 원을 제외하고 30여만 원을 들고 인도 동부 도시 콜카타로 입국할 생각이었다. 물론 이것도 터무니없는 비용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30만 원이면 인도에서 한 달 정도를 체류할 수 있다고 전에 한 여행자를 통해 들은 적이 있었고 지금까지는 더 힘들게도 여행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고작 인도 비자를 받기 위해 한국을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가용한 여행자금은 30만 원이다. 방콕-인천 간 왕복항공료가 저가항공인 에어아시아의 프로모션 티켓을 이용해도 27만 원 정도 소요된다. 이론적으로는 한국을 다녀올 수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나는 거의 여행자금이 전무한 상태로 인도에 입국해야 한다. 근데 문제는 '인도' 다. 여행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인도라고!!! 아직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다른 곳과는 차원이 다른 두려움이 나를 엄습했다. 두 달 여전 통장 잔고가 바닥이 난 상태로 캄보디아로 입국할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그때는 심리적으로 의지할 곳이라도 있었지, 인도는 의지할 곳은커녕 어떠한 정보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우선 한국에서 생각 외의 체류비용이 필요할지도 모르니 편도 티켓으로 인천행 티켓을 구매했다. 그렇게 여행을 출발한지 딱 4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한 번도 한국에 안 돌아가고 버티려고 했건만 자존심 상하긴 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병수 삼촌께서 부탁할게 있다며 나를 방으로 부르셨다. 둘로 나누어진 두툼한 1만 원짜리 수십 장.. 아니 백장은 거뜬히 넘어 보이는 한화를 꺼내시더니 뜬금없이 세보라고 하신다. 한 뭉치는 100만 원, 한 뭉치는 64만 원이었다.


100만 원은 한국에 가서 삼촌 통장에 입금 좀 해줘.
그리고... 이건 한국 가서 너 써라.


갑자기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이걸 왜 주시냐고 괜찮다고 했지만, 삼촌이랑 방콕에서 두 달 가까이 있으면서 삼촌 회사에서 영어 번역하고 운전도 하고 그랬으니 수고했다고 주는 용돈이란다. 돈 없다고 티 낸 적 없는데, 갑작스러운 한국행에 마음이 쓰이셨나 보다. 원래 주시려고 했는지 아니면 갑자기 생기신 마음인지는 모르겠으나 타이밍이 너무 적절했다.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세계일주 떠나기 전 두 번째 약속, 자발적인 호의는 감사하게 받는다를 이행한다. 큰 소리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돈뭉치를 주머니에 넣었다.

갑자기 여유금이 생겼다. 방콕 리턴 티켓을 구매했다. 반드시 써야 할 곳이었으니까. 혹시나 마음이 바뀌어 돌아오지 않으면 안되니까. 그 자리에서 질렀다. 삼촌 덕분에 한국에서 일주일간 볼 일을 다 보고 오더라도 원래 계획보다 조금 더 많은 40여만 원을 들고 인도에 입국할 수 있게 됐다. 여전히 풍요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충분했다.


20150720-IMG_6198.jpg?type=w1200
20150713-IMG_4598.jpg?type=w1200
20150728-IMG_7642.jpg?type=w1200
20150718-IMG_5390.jpg?type=w1200
20150717-IMG_5191.jpg?type=w1200


[포기하지 마]

한국에 도착해서야 하늘이 왜 나를 한국으로 보내게 됐는지 이유를 조금씩 알게 됐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만나자는 사람들로 연락이 쏟아졌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사람들의 환영에 어안이 벙벙했다. 특별하게 한 것도 없이 그냥 여행만 하고 잠시 돌아왔을 뿐인데, 많은 분들이 보고 싶다며 연락을 주셨다. 여행을 처음 출발할 때, 가장 먼저 후원을 해주셨던 작가, 주영이 형이 연락이 왔다. 갑자기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포기하는 거냐고 물었지만 잠시 돌아가는 이유를 말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날라온 10만 원 입금 메시지. 곧바로 형에게 답장을 보냈다.


형 나 진짜 괜찮은데...나 여유 있어요.


괜찮다는 말 내 말에 형의 대답은 생각보다 싱거웠다.


어 알아, 포기하지 마:)


한국에 도착해서 형을 만났고 비록 시간이 없어 한 번 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형은 단 한 푼도 못 쓰게 했다. 그러고는 잘 다녀오라며 또 응원을 해주며 떠났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닌 나를 줄곧 믿어준 형이다. 정말 고맙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또 하나의 메시지가 날라왔다. 군대 선임이었고 지금은 파일럿 과정을 밟고 있는 지원이었다.


형! 이번에는 도와야겠어
많이는 못하지만 행운을 담아 보낸다!


그가 나에게 보낸 후원은 77,777원. 대학생에게 결코 작은 돈이 아닐 터인데 그는 웃는 얼굴로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 또한 만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 처리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었지만 어떻게 이런 친구를 보지 않고 떠날 수 있으랴. 다행히도 서로의 시간이 맞아 한국에서 인사를 하고 올 수 있었다.

지난번 라오스에서 만났던 민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식당에서 셰프로 일하고 있어서 시간을 내기 어려웠지만, 고마운 마음에 그녀가 가능한 시간에 내가 맞추어 찾아갔다. 지난번 라오스에서 장염으로 며칠간 쓰러져 있던 나에게 한식을 만들어 챙겨주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밥을 사주고 싶었지만, 그녀를 만날 때 갑자기 식사를 대접해주시겠다는 분이 나타났다. 페이스북에서 평소 나의 이야기를 즐겨 보시던 팔로분이셨다. 덕분에 민지와 맛있는 육개장을 대접받을 수 있었다. 식사 후, 커피를 마시면서 그동안 못 나눈 여행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민지가 나에게 무언가를 내밀며 말했다.


오빠, 라오스에서 내가 후원해주고 싶었는데
그때는 나도 여행자라서 못한 게 맘에 걸렸는데
이번에 이렇게 기회가 오네.
이걸로 오빠가 인도 가서 정말 먹고 싶은 거 먹었으면 좋겠어.
나는 그 모습을 찍은 사진으로 엽서를 받겠어!


커피를 샀는데, 도리어 10배로 후원을 해주고는 그녀는 떠났다. 하루하루 지나기 무섭게 1일 1후원이 이어졌다. 고마우면서도 점점 이 여행이 나만을 위한 여행이 아닌 어떤 사명을 져야 하는 것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또 한 명의 익명의 후원자. 이 분의 이야기를 가장 담고 싶지만, 끝까지 자신의 후원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만날 시간이 여의치 않아 홍대에서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만남을 가졌다. 첫 만남에 나의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25만 원을 그 자리에서 후원하고 가셨다. 아무런 연도 없는 분이다.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지만 그 분은 그후로 여전히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 밖에도 많은 분들이 여러 형태로 응원을 해주셨다. 책으로 후원을 해준 분들도 있었고, 음악 시디로 응원해준 분들도 계셨으며, 자신의 식당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해주신 분도 계셨다. 무엇으로 나를 도와주셨던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나를 찾아와주신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마음의 큰 후원이 되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아도 될까라는 부담도 덩달아 몰려왔지만 그 부담은 결코 재수를 하고 삼수를 할 때 느꼈던 부담과는 전혀 다른 긍정적인 부담이었다.

모두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응원해주셨지만, 결론은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아주셨다. 비록 잠시 멈추어 가지만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보고 싶다는 분들의 응원 덕분에 한국에서 생각지도 못한 후원을 받았다. 덕분에 든든한 마음과 넉넉한 여행자금을 들고 인도로 향한다. 또 한 번의 위기에 내몰렸지만, 늘 나만 중심을 잘 잡고 있으면 됐다. 그러면 될 일은 어떻게든 되어졌다.

20150722-IMG_6314.jpg?type=w1200
20150714-IMG_4750.jpg?type=w1200
20150714-IMG_4681.jpg?type=w1200


[3명의 사진가]


안녕하세요? 이정현 작가님.
전 이번에 아이슬란드에서 나눔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정양권이라는 청년입니다.
여미를 통해서 작가님이 하시는 일들 눈팅만 여러 번 해왔더랬죠.
하하. 워킹스튜디오의 취지나 사진나눔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아서 그러는데요.
한국에 계실 때 짜투리 시간을 내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사실 태국으로 돌아갈 날을 하루 정도 남겨 놓고 있어서 좀 부담이 됐다. 일주일 내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사람들을 만나 오다 보니 가기 전날만큼은 좀 쉬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왠지 이 사람은 꼭 만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다른 약속은 다 취소했는데, 이상하게도 이 분에게는 마음이 갔다. 결국 나는 시간을 조율해서 중간지점인 금정역에서 그를 만났다.

그냥 나의 여행을 좋아하는 팬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는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들어주었고, 자신의 이야기는 잘 꺼내지 않았다. 그저 나와 동갑내기였고 아이슬란드로 나눔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만 남겼을 뿐이다. 3시간 정도 이야기가 끝난 후, 그는 작별 인사를 하며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건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제가 쓴 책이에요.


책을 열어보며 깜짝 놀랐다. 그는 사진작가였다. 더군다나 이미 3년 전, 수많은 분들로부터 후원을 받아 세계일주를 다녀온 청년이었다. 그 결과물로 이미 책까지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는 선배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갑자기 3시간 동안 떠들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나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는 사람 앞에서 그렇게 열심히 떠들었으니. 알고 보니 그의 나눔여행은 사진여행을 의미하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이후 우리는 말을 트는 친구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방콕으로 떠나는 날 아침, 그 역시 김포공항에서 나눔여행을 위해 아이슬란드로 떠났다. 공항에서 그가 올린 사진을 봤다. 도저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당시 내 수준으로는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사진은 그냥 시중에 돌아다니는 사진과는 확실히 격이 달랐다. 뭐라고 정확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의 사진은 분명 배운 사진이라는 티가 났다. 뿐만 아니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한 사진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에게 그의 사진에 무한한 찬사를 보냈다. 권은 늘 부끄러워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야! 나 완전 허접한 사람이야 ㅋㅋ
제발 그러지 좀 마 ㅋㅋ 창피하니까 ㅋㅋㅋ
우리는 사부 관계가 아니라 동역자 관계야.

나보다 한참 앞서 있으면서도 권은 겸손했다. 이후 내가 한국에 잠시 체류할 때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나를 만나주며 사진을 알려주기를 꺼리지 않았다. 무시할 수도 있는 사람일 텐데 그는 나를 수준 낮은 사람이나 제자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진정 동역자로 바라봐주었다. 그를 만난 이후, 사진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바뀌었다. 더불어 나 또한 사진을 다루는 자세가 조금씩 달라졌다. 그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사진이 바뀌어가고 있음을 감지했다. 그날 그를 만난 것은 내가 사진을 잡은 이후로 가장 큰 행운 중 하나였다.

권이를 만나기 전, 또 다른 두 명의 사진가를 만났었다. 그중 한 명은 전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요셉이라는 사진작가였다. 사진을 시작한 이후로 페이스북을 통해 그를 만났다. 특유의 감성이 담긴 짧은 글과 사진, 특별히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신앙이 담긴 그의 흔적이었다. 처음 그의 사진을 마주한 것은 예배사진이었다. 누군가는 그냥 평범한 예배사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의 사진을 보며 처음 느낀 생각은 이랬다.


사진으로도 예배를 드릴 수가 있구나.


사진이라는 것이 단순히 기록 만을 남기는 행위인 줄 알았는데, 그를 보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사진으로 예배를 드렸다. 마치 찬양팀이 자신의 악기로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셉을 처음 만난 그날, 그의 손에는 여지없이 카메라가 쥐어져 있었다. 사진을 하는 사람들도 카메라를 늘 소지하고 다니는 사람이 드문데, 그의 일상은 어떤 순간이든지 사진으로 담아내고 자신을 표현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그날 밤 그와 짧지만 홍대 출사를 다녀온 후, 우리는 그렇게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셉은 그날도 변함없이 짤막한 사진일기를 썼다. 나의 대한 글이었다. 역시나 셉다운 글이었다. 그의 시선에 닿을 수 있어 진심으로 고마웠고 영광이었다. (*요셉작가는 다가오는 10월 3일 나의 결혼식을 담는다)


만났습니다.
잠시 한국에 들어오신다 길래,
마침 서울 갈 일이 있어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워킹스튜디오, 세계일주를 하며, 화보사진을 찍어주던 정현이 형.
세 시간 남짓, 대화를 하며
참 많이 느끼고, 배우고, 생각했습니다.
함부로 셔터를 누르지 않는 사람.
사진보다 소통을 중요시하는 사람.
페이스북에서 보던 대로 형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또 한 명의 사진가. 성숙해 보이지만 아주 어린 학생이었다. 만나보니 학교 후배. 게다가 같은 단과대학 후배였다. 학연은 나쁜 거지만, 그래도 마음이 먼저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녀는 사진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학생이었다. 어린 나이부터 사진에 미쳐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했다. 아직 어리지만 사진을 향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대단한 여성 사진가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특별히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이 그녀의 사진을 더욱더 빛나게 해줄 것 같았다. 아직 새내기에 불과하지만 비전 있는 후배 청년을 만날 수 있어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위기라고 생각했던 한국행에는 오히려 오지 않았더라면 후회했을 수많은 숨겨진 이유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만일 내가 한국에 오지 않고 '돈'이라는 것 때문에 무작정 태국에서 버티고 있었거나, 가고 싶었던 인도가 아닌 다른 곳을 택했다면 내 여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지 못할 뻔했다. 목적과 상관없는 내 눈앞의 이익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내가 바라보아야 할 곳에 집중하니 결국은 모든 일이 삐거덕 대기는 했지만 순적하게 돌아갔다. 그에 필요한 돈은 보너스로 따라왔음은 물론이다.

한국에서 3개월 인도 비자도 잘 받아냈다. 신용카드도 동생 덕분에 가족카드발급이 가능하여 내 이름으로 된 신용카드도 생겼다. 특별히 어떤 분의 후원으로 인해 그동안 없었던 포토프린터까지 장만할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너무나도 감사한데, 여행자금은 어느새 120만원이라는 생각하지도 못한 수준까지 채워져 있었다. 한국행은 결코 위기가 아닌 하늘이 준 기회였다.

사진 / 글 폴작
작가블로그 walking-studio.com
작가인스타 @walking_studio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6. 외로움과 고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