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릴 뻔한 인연]
이번에도 페이스북이다. 한 여행자와 연락이 닿았다. 두 달 전부터 나를 팔로워 했던 홍윤기라는 여행자였다. 원래는 일정상 만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말레이시아에 있었고, 나는 곧 인도로 떠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한국을 다녀오게 되면서 인도로 떠나는 일정은 7월 31일로 변경되었다. 방콕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공교롭게도 방콕에 있었다. 나도 그가 방콕에 머물고 있다는 걸 알았고, 그 또한 내가 다시 방콕으로 돌아왔다는 걸 알았다.
원래 있던 약속이 취소되면서 저녁시간이 비었다. 그 또한 무슨 일인지 그날만큼은 숙소에 일찍 들어와 쉬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분이 시간이 되시면 만날까 했다. 솔직히 약속 장소에 도착했는데 파토가 되어서 짜증이 나있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할 게 없어서 보자고 한 이유가 컸다. (지금 생각하면 윤기에게 참 미안하다) 페이스북 메시지로 그의 위치를 물었다.
후이쾅 역 앞에 있는 YIM 호스텔에 계신다고요? ㅋㅋ
거기 제가 있는 곳 바로 옆에 있는 곳인데요 ㅋㅋ
보통 방콕으로 오는 여행자들은 숙소를 카오산로드 쪽에 잡는 편이다. 여행자들이 많고 활동하기 좋기 때문이다. 여유가 좀 있는 여행자들은 보통 스쿰빗과 같은 신도시 쪽에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후이쾅에 숙소를 잡았다는 사람은 처음이다. 2달간 방콕에서 지냈지만 진짜 단 한 번도 보지 못 했다. 그만큼 '여행' 과는 상관없는 일반 시민들이나 방콕 내 한인들이 사는 주거지역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집에 가는 길이었으니까 잘 됐지 뭐. 그를 만나고 집에 가면 딱 좋을 듯했다. 그는 파란 남방에 옅은 갈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여행자라고 하기에는 깔끔한 차림이었다. 물론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장기 여행자라고 하기에는 모양새가 점잖았다. 첫날에는 간단하게 자기소개만 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간도 늦었고 저녁에 삼촌이 뭘 먹으러 가자고 하셔서 갑작스럽게 집에 좀 일찍 들어가야 되게 됐다.
이렇게만 헤어지기 미안하고 아쉬워 다음날 일정을 물었다. 그는 딱히 일정이 없다고 했다. 마침 삼촌께서 차를 빌려줄 테니 방콕 근교에 있는 아유타야를 다녀오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하지만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사실 별생각이 없었는데 그와 함께 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사진을 하는 친구이니 서로가 사진을 찍어주면서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괜찮으면 내일 저랑 아유타야나 같이 갈래요?
우리 삼촌이 차 빌려주신다니까 편하게 다녀올 수 있을 거예요.
가는 김에 오늘 못다 한 이야기나 나눕시다!
그는 흔쾌히 승낙했고 우리는 다음날 아침에 함께 방콕 북부에 위치한 아유타야로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일정이 맞지 않아 엇갈릴 뻔 했던 두 사람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나 때문에 세계 일주를 나왔다고?]
제가 하고 싶었던 일과 여행을 당신이 먼저 하고 있는 거예요.
오랫동안 고민만 하고 있었는데 당신을 보며 용기가 생겼죠.
결국 고민 끝에 일을 그만두고 이렇게 나오게 됐네요.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나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두 달 전부터 나를 지켜봤다고 한다. 늘 오랫동안 고민만 하고 있었던 그에게 나의 이야기는 크나큰 자극을 주었고, 결국 오랜 시간 동안 걸어온 사회복지사의 길을 접고 세계여행을 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데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소 당황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그저 내가 좋아서 떠난 여행이었을 뿐인데, 내 의도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괜히 안정적으로 살고 있던 사람에게 불필요한 도전의식을 심어준 건 아닌가, 괜히 다른 사람에게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별의별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그는 이후 계속 여행을 하다가 체코 프라하에서 자리를 잡으며 사진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녹록지 않은 그의 삶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여전히 미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하루는 전화를 하면서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지만 그는 답답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웃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네가 동기를 제공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이 길을 선택한 것은 나니까
네가 그런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네.
아유타야에서 하루 종일 그와 동행하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치, 경제, 사회, 심지어 종교적인 부분까지 수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경이로운 건축물로 여행자들의 시선을 끌었던 멋진 아유타야였지만, 나는 그것보다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이 훨씬 더 기억에 남았다. 한편으로는 사진을 찍으며, 한편으로는 인생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우리는 태국의 아주 작은 도시 아유타야에서 동갑내기 친구로서 첫 인연을 맺었다. 윤기와의 만남이 앞으로 내 여행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사진가에게 늘 아쉬운 것]
여행을 하다 보면 늘 아쉬운 점이 있다. 특히 혼자서 여행하는 이들에게 가장 아쉬운 점은 바로 자기 사진을 남기는 것이다. 아무리 셀카를 찍는 기술이 좋아졌다고 하나 여전히 누군가가 나 대신 셔터를 눌러주는 것만큼의 품질을 기대하긴 힘들다. 빈민국가의 경우 괜히 삼각대를 세워놓고 찍다가 도난을 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부탁한 사진들도 썩 맘에 들진 않는다.
사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진가들에게는 그 아쉬움이 더 크다. 사진을 보는 눈이 높다 보니, 웬만해서는 잘 만족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사진가의 여행 사진에는 늘 자기사진이 많이 없다. 어설프게 찍는 것보다는 차라리 남기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 또한 세계 일주를 하면서 남긴 내 사진이 손에 꼽을 정도다.
아유타야를 여행하면서 윤기가 내 사진을 많이 담아줬다. 나중에 인도와 이탈리아에서도 이 친구와 조우하게 되는데, 그때도 그는 늘 내 사진을 열심히 담아주었다. 아마 세계 일주를 하며 남긴 사진 중 2/3는 이 친구가 담아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 또한 열심히 그의 여행하는 순간을 담았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이었으니까.
[내게 눈을 선물해 준 친구]
얌마, 그거 너 줄게 써라.
어차피 나는 그거 잘 안 쓰게 되더라고.
네가 나보다 더 잘 쓸 거 같다.
윤기가 가지고 있던 50.4 렌즈로 재미가 들려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보더니 윤기가 뜬금없이 렌즈를 주겠다는 말을 했다. 윤기의 50.4 렌즈는 새것으로 구매하는 경우 50만 원이 넘는 상당히 좋은 렌즈였다. 윤기도 사진가이기 때문에 렌즈가 누구보다도 중요한 것을 알기 때문에 괜찮다고 고맙다는 인사만 전하고 거절했다. 하지만 자기는 어차피 그 렌즈를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짐만 된다며 다시 나에게 렌즈를 건네주었다. 자기는 지금 있는 렌즈로도 충분하다며 앞으로 여행을 하면서 여행자들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면 그걸로 자기는 만족한다며 나에게 렌즈를 선물로 주었다.
사실 한국에 잠시 돌아갔을 때, 카메라 매장 앞에서 50.4 렌즈를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 당시 가진 렌즈라고는 오래된 줌렌즈와 저렴한 망원렌즈가 전부였기 때문에 단렌즈가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품 매장에서 알아보았을 때 렌즈의 가격은 50여만 원, 중고로 구매하려고 알아봤지만 그마저도 35만 원이었다. 당시 전 재산도 50만 원도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갖고 싶었지만 도저히 살 수 없었고 그냥 그렇게 구매를 포기했었다. 그런데 하필 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만난 이 친구가 나에게 50.4 렌즈를 선물해줬다. 우연이었지만 너무나 소름이 돋았던 순간이었다.
왜 굳이 이 렌즈를 내게 선물로 주냐고 물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너는 남들한테 어떤 도움을 줄까 생각하면서 다니잖아
그래서 도와주고 싶었다. 돈으로 후원을 할까도 했지만
사진가에게는 역시 눈을 선물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서...
그 이후로 내가 찍은 사진은 대부분 그가 준 이 렌즈로 찍은 사진이다. 내가 그 이후에 찍은 사진 중 가장 사랑하는 사진들도 그가 선물해 준 눈으로 담은 것들이다. 처음으로 단렌즈를 쓰는 것이라 당시에는 어색했다. 제한된 화각으로 인해 답답했고, 그만큼 열심히 뛰어다녀야 해서 피곤했다. 하지만 그가 준 이 렌즈 덕분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확연히 바뀌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분들도 내 사진이 개선되고 있다는 걸 느껴주셨다. 나중에는 이 렌즈가 주는 답답함이 좋아졌다. 아니 점점 그 화각이 사랑스러워졌다. 내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만들어내려는 과정 속에서 사진에 대한 애정도 더 깊어졌다.
그는 단순히 렌즈를 선물해준 게 아니었다. 내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선물해줬다. 4개월간의 동남아시아 여행이 끝나고 인도로 넘어가는 그 골목 끝에서,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선물을.
너는 이제 내 아바타야 ㅋㅋ
지켜볼 거야 친구.
사진 / 글 폴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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