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혼돈의 땅이 내게 준 생각들

by 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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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것은 없다]


9시가 되어서야 눈을 떴다. 창문을 열어보니 여전히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많이 오는 것은 아닌데, 비를 흩뿌리는 날씨가 계속됐다. 나가고 싶지만 우산이 없다. 우산이야 사면 되지만, 우산과 카메라를 동시에 들기에는무리가 있다. 고로 나가기가 꺼려졌다. 괜히 나갔다가 카메라 털리면 어떡하라고. 여긴 인도잖아.

다행히도 오전 중에 비가 완전히 그쳤다. 옷을 주섬주섬 주어 입고 밖으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어제에 이어 또 한 번의 멘탈이 붕괴되는 상황을 목격한다. 시내가 온통 물바다다. 이런 젠장! 이건 도저히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물이 내 무릎 바로 밑까지 차올랐다. 비가 그렇게 많이 온 것 같지도 않은데, 그 사이에 하수구가 넘쳤나 보다. 눈앞에는 바퀴벌레들이 헤엄치고, 쓰레기를 포함한 온갖 오물들이 둥둥 떠다닌다. 여행자들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현지인들은 이미 익숙한 지 아무렇지도 않게 물 사이를 헤쳐 제 갈 길을 갔다.

자동차들은 엔진에 물이 차 시동이 꺼졌는지 멈춰 있는 자들이 즐비했다. 오토릭샤라고 예외는 아니다.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싶어도 엔진까지 차오르는 현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이 상황에 운행을 하는 교통수단이 있었으니, 어제 숙소로 오는 길에 본 릭샤다.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엔진에 물이 닿을 일이 없다. 어제까지만 해도 쪽박을 차고 있었던 릭샤들은 오늘은 그야말로 대목이다. 비어있는 릭샤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에게 물이 더럽고말고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손님이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운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를 향해 브이를 지어 보이는 여유도 보인다.

어제까지만 해도 누가 저런 걸 타나 했건만, 물이 무릎까지 차오른 콜카타 시내에서 릭샤만큼 좋은 교통수단이 없었다. 평소에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비 오는 순간만큼은 가장 빠르고 유용한 탈것이 되었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 마음과 나갈 때 마음이 다르다더니 이런 것들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토록 타기 무서웠던 릭샤를 타보니, 생각보다 재밌었고, 덕분에 빅토리아 메모리얼 파크까지 큰 고생을 하지 않고 갈 수 있었다. 50루피였지만, 수고한 릭샤 기사에게 20루피를 더 쥐여주었다. 겨우 300원인데, 릭샤 기사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해맑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들은 없다. 단지 우리가 평소에 어디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사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나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들이 많다. 한국에서 라면 한 봉지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하찮은 것에 불과하지만, 인도에서 작은 한 봉지의 라면 수프는 녹익을 때로 익은 향수병을 위로해 줄 진통제가 되어줄 수 있듯이, 평소에 내가 하찮게 생각했던 것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나에게 큰 도움이 될 때가 많았다. 단순히 사물뿐만 아니라, 사람 또한 그러했다. 쓸모 없는 것들은 없다. 쓸모 없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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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콜카타 시내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 여행자들만 보면 대놓고 구걸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가난하지만 결코 다른 이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를 데리고 있는 한 현지인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는 어눌한 영어로 뭐라 뭐라 설명하더니 손가락으로 내 카메라를 가리킨다. 자기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역시 인도인들은 사진을 좋아한다는 말이 맞기는 맞는 건가. 내가 어렵게 다가가지 않더라도 이렇게 먼저 다가와 주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아들과 함께 서 있는 모습을 한 장 담았다. 프린트를 갖고 나오지 않아서 사진을 뽑아줄 수는 없어, LCD 창으로 사진을 보여줬다. 그러더니 그 남성이 하는 말.


내 사진을 찍었으니 돈을 내세요.


이미 찍었으니까 할 말은 없는데, 갑자기 돈을 달라고 해서 기분이 확 나빠졌다. 아니 그럴 거면 처음부터 돈을 요구하던가. 찍히고 나서 돈을 달라는 경우가 어딨나. 내가 부탁해서 사진을 찍은 게 아니기 때문에 돈을 줄 수 없다 했고 그를 떠났다. 그는 계속 나를 쫓아오며 따졌고 나는 결단코 줄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더니 그는 알아듣지 못할 힌디어로 욕처럼 뭐라고 내뱉더니 아들 손을 잡고 떠나버렸다.

길가에서 또 다른 한 명의 인도인을 만났다. 그는 배짝 마른 것이 마치 도인 같았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느껴져 잠시 동안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시선을 돌렸다. 평소에 시선이 마주치면 나를 빤히 쳐다보며 다가왔던 인도인들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신기하여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여행하는 사람인데, 혹시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신지요?


그는 정신수양(Mental Train)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다음에는 영어랑 힌디어를 섞어서 이야기하는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의 모습을 담고 싶어 그에게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나를 계속 바라보시려고 하시는걸, 그냥 자연스럽게 담고 싶어 손가락으로 반대편을 가리키며 시선을 돌리길 유도했고, 그 모습을 담았다. 사진을 뽑아 드릴 수는 없으니 그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50루피를 손에 쥐어드리고 왔다. 그는 웃으며 그 돈을 거절하지 않고 받았다.

같은 사진인데, 개인적으로 사진 자체로는 아이와 함께 찍은 아버지의 사진이 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내용 면에 있어서는 도인처럼 보인 그 할아버지의 사진이 더 마음에 든다. 결과적으로는 할아버지에게 내 돈이 나갔지만, 그 과정이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또한 나와 눈을 마주친 순간, 나에게 돈을 필요로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먼저 구걸을 하지 않았고 나는 그 모습에 호기심을 느꼈다. 결국 내가 그에게 먼저 다가갔고, 내가 원하는 사진도 담았으며, 그분 또한 그 대가를 받았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할 때도 있지만, 그것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들이 있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라는 존재가 먼저 필요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상대방이 나를 원해야, 내가 다가가도 그 걸음이 헛되지 않을 수 있었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데, 상대방이 나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는데, 그저 내가 원하는 것만 챙기겠다고 들이대는 것은, 원하는 것은커녕 상대방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끌어안아야 할 때가 많았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상대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는 것,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도 얻고, 상대가 원하는 것도 채워주며 서로 기분 좋은 마무리를 지을 수 있는 삶의 지혜였다. 10분이라는 시간을 두고 참 좋은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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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


빅토리아 메모리얼 파크에 도착했다. 콜카타는 과거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삼을 때 가장 중요한 근거지였다. 그래서 콜카타 시내에는 오래된 영국의 잔재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빅토리아 기념관이다. 당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인도 아그라에 있는 타지마할을 보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다. 그 모습을 본 당시 친영파 인도인들이 빅토리아 여왕의 마음을 사고자 했고 그렇게 타지마할을 본떠서 만든 건물이 바로 이 건물이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식민지 시대의 잔재물이었던 조선총독부 건물로 비교될 수 있겠다. 우리나라의 경우 김영상 정부 시대 때 일제 잔재물들을 다 처리했는데, 그때 당시 조선총독부도 함께 철거가 됐다. 나 또한 마땅히 그래야 했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하지만 인도는 자신들의 아픔의 상징이 될 수 있는 이 건물을 철거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창 보수 공사 중이었고, 지금은 콜카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나중에 바라나시에서 듣게 된 사실이지만, 인도의 경우는 과거의 아픔은 없애는 것보다는 교훈으로 삼기 위해 남겨두는 관습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인도에는 아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곳이 많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영광스러웠던 순간뿐만 아니라, 치욕스러웠던 순간도 인도이기 때문에 모두 함께 끌고 가는 것이 맞다고 한다. 과거의 아픔이 지금 이 순간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그 시대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역설했다.

당시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이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중요한 것은 건물 자체를 철거하는 것보다는 국가에 해악을 끼쳤던 세력을 청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본질에 더 가까웠다. 우리나라는 친일파가 세운 건물은 청산했지만, 여전히 친일파는 청산하지 못 했다. 건물은 무너졌지만, 세력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용서받은 친일파는 여전히 우리나라 사회 기득권을 쥐고 흔들고 있다.

과거를 바라보는 우리와 다른 그들의 시선에 새로운 것들을 배운다. 어쩌면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생각보다 본질에서 멀리 떨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작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 다루고 처리할 것인가를 고민할수록 본질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사진 / 글 폴작
작가블로그 walking-studio.com
작가인스타 @walking_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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