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삶과 죽음의 경계선 앞에서

by 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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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의 본질, 바라나시]


바라나시는 힌두교의 예루살렘이다. 그래서 도시 전체가 늘 순례자들의 발길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룬다. 힌두교는 인도의 국교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토속종교이다. 그 중심에는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이 있다. 수많은 순례자들은 갠지스 강을 파괴의 신 시바가 있는 히말라야에서 부터 내려오는 어머니강이라며 신성시한다. 갠지스에서는 힌두교도들의 각종 신앙의 행위들을 목격할 수 있다. 몸을 씻는 것을 시작으로, 죽은 시체를 장사하는 행위까지 모든 행위가 이곳 갠지스에서 일어난다.

멀리서 보면 그냥 평범한 강에 불과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수많은 각종 오물들이 떠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쓰레기는 물론이고, 사람 똥인지, 동물들의 똥인지 구분이 안되는 수많은 배설물도 보이고, 때로는 사람의 시체의 일부가 떠다니는 것도 볼 수 있다. 이런 경악스러운 모습들 때문이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다. 이질적인 모습으로 인해 불편한 점은 많지만, 그만큼 묘한 매력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바라나시 분위기와 맞지 않게 깔끔하게 입고 다니는 한 인도인을 만났다. 델리에서 대학을 다니는 대학생 기자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기자답게 꽤나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고 있었고, 갠지스강에서 일어나는 모습들을 호기있게 담아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호기심에 몇 가지를 그에게 질문했다.


왜 당신은 저들처럼 신발을 벗고 다니지 않나요?
저는 힌두교도가 아니니까요.
인도사람이라고 모두 힌두를 믿는 건 아니예요.


그는 힌두교를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신발을 벗고 다니거나, 더러운 강물에 들어가서 몸을 씻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힌두를 믿지 않지만, 힌두의 역사와 가치, 그리고 가르침에 대해서는 존중한다며, 대신 현대사회와 맞지 않는 점은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전했다.


인도라서 그런게 아니라, 아직 교육의 영향이 미치지 못한 곳이
많을 뿐이예요. 인도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았으면 해요.


자신들의 문화의 후진성에 대해서도 걱정을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역사적인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하는 그의 말이었다. 그의 말 덕분에 불편하게만 느껴지던 바라나시가 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온갖 냄새가 진동하고 후덥지근한 날씨가 온 몸을 지치게 하는 날이이었지만, 바라나시를 좀 더 엿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바라나시의 존재의 이유와 같다던, 화장터를 향해 몸을 돌렸다. 삶과 죽음의 경계인 그곳에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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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빙자한 자본주의의 본색]


어렵게 어렵게 골목을 지나 바라나시에서 가장 크다는 화장터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한 남자가 내게 다가오더니 이곳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며 괜찮으면 자기를 따라오지 않겠냐며 제안을 했다. 워낙 사기꾼이 많은 인도인지라, 나는 당연히 머뭇거렸다.


걱정하지말고 나를 따라와요. 친구. 난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아요.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예요.


그는 머뭇거리는 나를 능숙하게 다독이며 화장터 주변을 이리저리 다니며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더니 나를 한 화로로 데리고 갔다. 그곳은 바라나시에서 가장 신성시 되는 곳으로, 시체를 화장하기 위한 불을 관리하는 곳이라고 한다. 정말로 3,000년간 불씨가 한 번도 꺼지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냥 신화정도로 여기며 흘려들었다. 그는 이 불씨가 절대 꺼지지 않도록 3,000여년간 관리해온 집안이 따로 있다며 한 할머니를 소개시켜주었다. 할머니의 행색은 매우 초라해보였고, 마치 미망인처럼 그녀는 매우 울적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를 향해 가이드가 말했다.


괜찮으면, 이들이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주 조금이라도 괜찮아요.


결국 그가 바라는 것은 돈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열심히 설명을 해준 것도 있고 해서 고마운 마음에 100루피 (1,800원)정도를 그 할머니 손에 쥐어드렸다. 할머니는 그제서야 얼굴에 작은 미소를 보이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가이드는 마음에 든 표정을 지으며 나를 데리고 그 다음 코스로 향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바라나시에서 가장 크다는 화장터였다. 수많은 시체들이 장작 위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엄청 끔찍할 것이라는 걱정과는 다르게, 면사포로 시체가 쌓여진 채로 화장이 되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끔찍한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한동안 지켜보고 있던 나를 향해 가이드가 갑자기 나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혹시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지 않으세요?


그는 내가 갖고 있는 카메라를 의식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나는 사진을 찍고 싶지만, 당신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담지 않겠다는 생각을 전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고개를 저으며 자기가 특별한 제안을 하나 하고 싶다며 말을 이어갔다.


만일 당신이 가장 아끼는 그것을 제게 주시면, 제가 이곳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권리를 드릴게요.


사진을 찍게 해준다는 말에 솔깃했지만, 그의 의중이 느껴졌고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아까 당신이 종교적인 이유로 이곳에서는 사진을 절대 담을 수 없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지금은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의 말의 모순을 지적하며 나는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저에게는 그런 권한이 있기 때문이죠, 만일 저 사람들이 뭐라고 하면 제가 허락했다고 말하면 돼요.


그에게 있어 힌두교는 대체 어떤 존재였던 걸까. 그가 나에게 말한 힌두교의 본질은, 결국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 했던 것일까. 절대 하면 안되는 것 조차도 돈만 쥐어준다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사실 그에게는 그런 권한이 있을리가 없다.


그러면 지금까지 내가 수고한 것들에 대해서 보상이라도 조금 해줘요.


나는 그에게 설명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지도 않았고, 그가 나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에게 더이상 줄게 없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등을 돌려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갑자기 그들의 친구처럼 보이는 남자 세 명이 내게 다가오더니 위협적인 눈으로 나를 향해 말했다.


너, 내일부터 이 근처 얼쩡거리면 가만 안둘 줄 알아. 내 눈에 띄지마.


그 날 이후 나는 화장터 주변에는 두 번 다시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무서워서라기보다는 힌두의 성지 가운데서 목격한 왜곡된 종교의 본질을 더 이상을 눈으로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엄숙한 곳에서 조차, 자본의 논리가 판을 친다는 사실에 씁쓸한 감정을 숨길 수 없던 하루였다. 개인의 기분에 따라 신이 저주하고 말고를 결정한다니 그들에게 종교의 의미는 무엇일까. 돈에 의해서 종교적 신념이 이리저리 왔다갔다해야하는 현실을 바라보며, 결국 문화는 다르지만,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라나시에서 봐야할 것을 다 본 것 같다. 이것으로 인도인을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도인이 잘못된 게 아니라 한 개인의 욕심과 잘못된 방번이 빚어낸 결과니까.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최대의 힌두성지 바라나시,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는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인 진리보다는 돈과 얽힌 이해관계가 더 많았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에게 힌두교는 욕심을 구현하기 위한 통로일까, 행복하기 위한 통로일까. 바라나시에 그리 오래 있지 않을 것 같다. 싫어서가 아니라 봐야할 것을 빨리 보고 깨달았기에. 이곳에서 이행해야할 사진 미션이 이행되는대로 마날리로 떠날 생각이다.

사진 / 글 폴작
작가블로그 walking-studio.com
작가인스타 @walking_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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