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정직한 사람이 주는 힘

by 폴작가
아 제길, 또 망가졌네...


맥북 트랙패드가 망가졌다. 동남아에서부터 느낌이 오긴 했는데, 이제는 아예 멈춰버렸다. 노트북이 작동이 안되면 사진작업이 불가능하다. 고칠 곳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바라나시의 도시 꼬라지를 보면 애플서비스센터라는 게 있을까 의문이다. 주변에 사람이라고는 순례자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과연 애플제품을 쓰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을까. 수요가 있어야 센터도 있을 것이 아닌가.

구글링을 해보니 시내에 애플서비스센터가 있다. 그것도 사설 서비스 센터도 아니고 무려 공식서비스센터다. 시간을 더 늦출 것 없이 바로 센터로 달려갔다. 상담을 받아보니 문제가 없다고 한다. 실제로 다시 만져보니 또 이상하게 작동을 잘한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3시간이 지나고 나서보니 또 다시 작동을 하지 않는다. 다시 센터로 갔다. 그냥 무조건 작동을 안하니까 고쳐달라고 우겼다. 담당 엔지니어가 노트북을 뜯더니 이것저것 만지더니 다시 작동을 잘한다.

수리비 3,000루피 (54,000원). 바라나시에서 하루숙박을 150루피로 살고 있는 나에게는 무려 20일이나 머물 수 있는 엄청난 액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노트북이 안되면 사진관리를 할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하루도 다 지나지 않아서 또 작동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짜증이 몰려왔다. 거금을 썼는데도 이모양이라서 분노하기도 했지만 가뜩이나 날씨가 습하고 더워서 불쾌지수가 극도로 높았는데, 또 그 먼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다. 거리도 먼 것도 있지만, 또 릭샤 드라이버들과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위에서 흥정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라도 쥐 뜯고 싶은 기분이었다.



센터까지는 집에서 15분 정도를 걸어 나와, 자전거 릭샤를 타고 30분 정도를 가야한다. 릭샤비용은 대략 50루피 (900원) 정도이지만, 워낙 사기꾼들이 많아서 100루피부터 깎는 전쟁을 치뤄야 한다. 오늘도 릭샤 하나를 잡고, 오래 흥정하기 싫어서 시작부터 공격적으로 말을 걸었다.


저 시내까지 갈건데, 50루피 이상 못 줘요.
괜찮아요, 원래 그 가격이예요. 여기 타요.


응? 이게 뭐지? 인도에 온 이후로, 아니 동남아 여행을 통틀어 흥정을 하지 않고 부르는 가격에 가겠다는 아저씨는 처음 봤다. 단 번에 정상가격에 해주겠다는 말이 나도 어색했는지 나도 모를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가벼운 마음에 릭샤에 올라탔다.


그의 얼굴과 손에서 고된 일상이 느껴졌지만, 그의 얼굴에는 선한 미소가 연실 가득했다. 여행자들이 가격을 다 알고 있어도 대놓고 사기를 치는 사람이 판 치는 곳이 바로 인도인데, 이렇게 정직한 아저씨를 보니 나도 모르게 나의 마음이 뭉클해졌다.


아저씨, 아저씨는 지금까지 제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정직한 아저씨였어요.
고맙다는 의미로 50루피를 더 드리고 싶어요.
정직하게 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저씨는 거절은 하지 않고 100루피를 받았다. 그리고는 행복하다는 듯 나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셨고, 허락을 받고 그 순간을 담았다. 앞으로 이런 아저씨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무리한 꿈은 꾸지 않겠지만, 적어도 이런 아저씨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정말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저씨의 모습을 통해 감사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때 상대방에게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보일 수 있는지를 배운 순간이었다.

이렇게 더운 날, 노트북 때문에 짜증과 분노가 극도로 치솟아 있었는데 아저씨 덕분에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노트북도 다시 수리하고 나니 다시 작동을 잘 하기 시작한다. 뭔가 아저씨 덕분에 잘 된 느낌.

제게 좋은 감정과 이야기를 선물해줘서 진심으로 고마워요 아저씨. 나마스떼, 단야밧.

사진 / 글 폴작
작가블로그 walking-studio.com
작가인스타 @walking_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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