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를 거쳐 히말라야가 시작되는 곳, 인도의 북부 마날리에 도착했다. 18시간 험한 산길을 달려오면서 심한 멀미로 인해 고생을 하긴 했지만, 마날리에 도착하자마자 그 모든 피로가 한 번에 잊혀졌다. 그래.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시원한 가을날씨였기 때문이다.
세계일주를 떠나온 이후로 4개월 동안 줄곧 영상 35-45도에서 여행을 해왔다. 단 한 번도 시원한 곳을 여행해본 곳이 없다. 그나마 시원했다라는 태국 빠이도 밤기온은 늘 25도를 넘어섰다. 지금까지 여행한 곳중에서는 태국 치앙마이가 최고였다. 도처에 저렴한 먹거리가 깔려있었고, 숙박비도 최고로 저렴했으며, 3주동안 있으면서 가장 많은 영감을 받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 마날리가 그 자리를 이어받을 듯 하다. 최고기온 28도, 현재 밤온도는 17도를 가르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씨다. 사진 찍기에도 가장 활동하기 좋은 날씨였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곡과 수림들 사이에 둘려싸여있어 마음이 편안했다.
단지 숙소가격이 조금 비싸서 1시간 정도를 무거운 가방을 이리저리 메고 숙소를 찾아다니니라 고생을 했다. 인도는 도미토리 개념이 별로 없고 대부분이 개인룸이다. 하지만 싱글룸이 300-400루피(한화5,000-6,500원)정도라서 사실 동남아와 비교했을 때 정말 싼 가격이지만, 바라나시에서 하루에 100루피(1,800원)에 있다가 오다보니, 상대적으로 비싸게 느껴졌다. 동남아 때는 이것보다 더 형편이 안 좋았는데, 사람 마음이 이토록 상대적이고 간사하다. 한국식당에 들어가서 밥 한끼를 먹으면서 룸을 쉐어할 한국인이 있을까하여 찾아갔다. 하지만 찾기 쉽지 않았다.
잠시 짐을 식당에 나두고 다시 숙소를 찾으러 다녔다. 왠걸 메기라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자기가 쓰는 방을 깨끗하게 청소해서 줄테니 여기서 200루피에 지내라는 제안을 해주셨다. 따뜻한 물도 안 나오고 찬물로 샤워를 해야했지만, 겨울에도 찬물샤워를 하는 나인데,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덕분에 레를 갈 때까지 바라나시와 비슷한 가격으로 저렴하게 마날리에서 머물 수 있게 됬다.
이제 라다크로 올라갈 준비를 해야 했다. 라다크로 올라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로컬버스를 타고 올라가거나 지프차 드라이버를 고용해서 4-5명이 비용을 쉐어해서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비용을 아끼려면 로컬버스가 단연 최고지만, 레를 다녀온 여행자들의 말에 의하면, 레보다 레로 올라가는 길이 정말 이쁘다는 말에 중간에 자유롭게 세울 수 없는 로컬버스는 타고 싶지 않았다. 난 돈보다 사진이 더 중요하니까.
한국 사람이 꽤 있었지만 대부분이 마날리를 떠나는 모양새였다. 대부분이 레를 다녀오셨다고 하여 지프차 동행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유인즉, 레여행은 6월부터 8월 중순이 성수기고 그 이후로는 날씨가 추워져서 사람들이 잘 올라가지 않는다고 했다. 간혹 레를 곧 올라갈 계획이 있던 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일행이 있는 분들이라 쉐어하기 어려웠다. 우선 급할 것은 없으니, 저렴한 마날리 물가를 핑계삼아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못 올라가면 말지 뭐.
마날리 주민들은 인도라기보다는 티벳인의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인도인들처럼 눈이 깊지도 않고, 중국계와 아랍인을 살짝 섞어놓인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마을도 인도 여느 도시처럼 지저분하지도 않고, 곳곳이 정말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인도여행을 하면서 이제 겨우 콜카타와 바라나시, 델리 밖에 다녀오지 않았지만, 그 중 가장 깨끗한 도시였다.
앞으로 여행할 라다크는 평균해발 3,500미터, 가장 높은 곳은 5,000미터가 넘는 고산지역이다. 갑자기 올라가면 고산병으로 고생할 수 있어서 해발 1,600미터인 마날리는 고산지역을 적응하기 위해 반드시 쉬었다 가야하는 중간지점이다. 델리에서 마날리를 거치지 않고, 비행기를 타고 레로 바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2-3일간 토를 하며 누워 지낼 고생을 감수해야한다. 등산을 할 때도 정상이 아무리 멋있어도 늘 힘들어서 중간에 쉬었다 가야하는 곳이 그 순간만큼은 상대적으로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듯이, 마날리가 그런 마을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쉼이 필요하다. 쉬어야 하는 보편적인 타이밍도 있지만, 사람마다 타이밍은 각자 다를 수 있다. 대책없는 나태함은 지양해야겠지만 이유있는 게으름이라면 적극적으로 누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왔다하면 3-4주간 발이 묶여있다는 마날리에서, 나는 딱 4일만 쉬고 운좋게 동행을 만나 라다크로 올라갈 준비를 하게 된다.
사진 / 글 폴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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