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동행을 구하다
운좋게도 식당에서 한국여행자들을 두 명 만났다. 다행히 그들도 레로 올라갈 동행을 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좀 더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는 동행을 더 구해야 했다. 최대 6명까지 구해야 1인당 3만원 정도만 부담하면 됐으니까. 다행히도 두 친구가 발품(?)을 팔아준 덕분에 한 커플 동행자를 구했다. 이제 한 자리가 비었지만, 굳이 못 구하더라도 크게 부담이 없었다. 단, 남자 넷에 여성이 한 명이라는게 좀 마음에 걸렸지만.
다음날 아침 일찍 마날리를 떠나기로 하고, 우리는 친해질 겸 건너편 바쉬쉬로 놀러 갔다왔다. 트랙킹도 하고 물놀이도 하면서 각자가 자신의 여행기를 풀어놓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역시 여행자들이라 사건사고가 많은지, 각자의 여행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모두가 책을 써도 되겠다고 생각이 들 정도. 그만큼 여행은 사람을 깊어지게 하나보다.
다시 마날리로 돌아와 레로 가는 지프를 예약하기 위해 여행사를 찾아갔다. 흥정을 시작하는데, 용규라는 친구가 매우 적극적이다. 용규 덕분에 정말 너무 싸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가격에 예약을 하게 됐다. 예약을 하는 도중, 옆에서 컴퓨터로 뭔가를 찾고 있는 여성이 있어 말을 걸었다. 알고보니 레를 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던 여행자. 또 화려한 말빨로, 그 여성분까지 동행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 6명 만석을 채우는데도 성공했다.
_ 특전사 장교출신 동생
다른 동행들은 볼 일이 있어서, 용규라는 친구와 함께 저녁을 함께 했다. 함께 먹은 식사는 뚝바(티벳식 수제비)였는데, 한국 음식과 비슷해서 한국 여행자들이 좋아하는 요리다. 게다가 가격도 100루피 (1,800원) 정도로 저렴하다.
그래도 내가 한 살 형이라서 동생을 위하는 마음에 내가 계산을 했다. 하지만 내 사정을 아는 용규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에이, 형 허세 떨지 말아요. 저 돈 많아요."
특전사 장교로 전역을 여행을 떠나온 용규는 공수활동까지 하면서 끌어모은 여행자금이 꽤나 됐다. 대충 불러도 내가 가진 전재산의 50배는 넘었다.
"너 밥 사줄 정도 돈은 있어. 없으면 없는대로 사는거지. 그냥 형이라서 사주는거야."
내 말에 머쓱했는지 용규는 웃으며 잘 먹었다며 인사를 건넸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이 동생과 오랜 시간 연락을 하고 지낼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나중에 용규는 라다크에서 나에게 잊지 못할 행동을 하나 하게 되었고, 그 이야기가 지금까지 연을 이어오게 했다.
아침부터 짐을 지프에 바리바리 올리면서 출발 준비를 했다. 날씨가 흐려지며 비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온도 평소보다 훨씬 더 낮아져 모두 점퍼를 챙겨 입었다. 이제 약 최소 18시간 동안 산악길을 달려야 한다. 날씨 때문에 산사태가 나서 차들이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기도 했다는데, 죽기 전에 기념사진이라도 남기려고, 출발 전에 단체사진을 찍었다.
_ 혼자하는 여행의 가장 큰 묘미
라다크로 진입하기 시작하자 정말 입을 다물기 어려울 정도로 멋진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곳마다 사진 찍고 싶은 곳 투성이라 지프 드라이버에게 계속 부탁해 차를 세웠다가 가기를 반복했다. 덕분에 일정이 많이 딜레이가 되긴 했지만 그 정도로 멋진 광경이었다.
돈이 많아서 혼자 지프를 예약하고 올라갔다면, 혹은 돈을 아끼려고 로컬버스를 타고 올라갔다면 이런 사진들을 남기기 어려웠을 거다. 조금 불편해도 함께 여행을 하면 그만큼 이야기 거리도 많이 생겨난다. 혼자서 감탄을 하는 것보다는 같이 감탄을 하는 것이 더 좋고, 혼자 멀미하는 것보다 같이 멀미를 하면 통증도 조금 완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나는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늘 혼자 여행하는 것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혼자 여행을 해야 누구와 만나도 편하게 함께 어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나에게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동행이 있다면, 다른 여행자들과 어울리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여행자들은 동행이 있는 여행자들의 울타리 속에 끼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니까. 나 또한 동행이 있다면, 동행을 신경써야 하니 다른 여행자들과 잘 어울리기도 어렵다. 너무 어울리다가는 동행에게 핀잔을 듣기 일쑤일테니까. 혼자서 여행을 하는 가장 큰 묘미는 아이러니하게도 늘 누군가와 동행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함께 여행하기 위해서 기꺼이 혼자 여행한다. 생각해보니 우리의 인생도 그랬다. 이 세상에 혼자왔다가, 떠날 때도 결국 혼자 떠난다. 외로운 사실이지만, 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혼자 있을 때는 지나치게 우울해지고, 함께 있을 때는 타인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질 수 있다. 혼자서도 자존감을 잃지 않고 잘 살 수 있어야, 다른 누구와 관계를 맺어도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듯이, 혼자 잘 여행할 수 있어야, 다른 동행들을 만나도 민폐를 끼치지 않고 잘 여행을 할 수 있었다. 혼자서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혼자 있는 것을 못 견디는 여행자들이 간혹 있다. 그런 여행자들의 경우,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고자 타인을 이용할 때가 많았다. 동행의 결과 또한 늘 좋지 못했다. 이것은 특정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도 그랬다. 여행을 하며 내 안에서 짓누르는 외로움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나 또한 관계 속에서 늘 미끄러져 좋지 못한 결말을 맞았다.
_ 히말라야 캠프
10시간 정도 달리니 어느새 해가 지기 시작했다. 라다크에는 가로등은 커녕 포장이 잘 되어 있는 곳을 거의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밤이 되면 무조건 하루를 쉬었다가야했다. 우리는 해발 3,000미터 지점 한 캠프에서 하루를 묵고 가기로 했다. 비록 열악한 텐트였지만, 생각보다 난방이 잘 되어 초겨울과 같은 새벽기온에도 따뜻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이른 새벽, 텐트 바깥으로부터 스며들어온 냉기가 새벽잠을 깨웠다. 직원이 잉글리쉬 브랙퍼스트가 준비되었다며 얼른 일어나 식사를 하라고 보챈다. 그럴듯한 잉글리쉬 브랙퍼스트는 살짝 구운 토스트와 따뜻한 짜이 (밀크티)가 전부였다. 식사를 하기 전 씻어야 했다. 씻을 곳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머뭇거리고 있는 순간, 해병대와 특전사 출신인 두 친구가 캠프 옆에서 흐르는 개울가에서 과감하게 머리를 감기 시작한다. 히말라야의 빙하가 흘러내려오는 물이라서 그런가, 얼지는 않았는데 얼음장처럼 차다. 하지만 씻지 않는 것보다는 잠깐의 고통이 낫지 않던가.
이제 드디어 라다크 문턱으로 진입한다. 아직도 가야할 라다크의 중심까지는 아직도 꼬박 반나절이나 넘게 남았다.
사진 / 글 폴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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