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일단 다녀올게요”
아침 9시 비행기였는데, 전 날까지 있었던 촬영을 정리 하니라 짐도 제대로 싸놓지 않은 상태로 잠에 들었다. 아침 7시 반에 나가야 했는데 일어나 보니 7시 반, 정신없이 헐레벌떡 대충 씻고 생각나는 대로 짐을 싸고 다급하게 집을 나섰다. 불과 한 달 전 까지만 해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인천공항 출국장에 서있었다.
나름 최소 1년 정도는 다녀오겠다는 마음을 먹었는데, 몇 박 며칠로 여행 가는 짐보다 더 대충 싸서 집을 나섰던 것 같다. 정말 무슨 생각으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분으로 뽑아두었던 여권사진도 안 가져오고, 가장 중요한 은행어플관련 공인인증서 설치도 못하고 왔다는 것을 알았다. (나중에는 결국 이것이 계속 내 발목을 잡았다)
“찰칵~"
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 언제 돌아올지 몰랐지만, 그래도 나름 세계일주를 떠나는 데 개인적으로 역사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페이스북에도 잘 다녀오겠다고 거창하게 글을 올렸다. 실패하면 정말 쪽팔린 상황이 되지만, 정말 쉽게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기에 배수의 진을 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베이징 도착해서 써라”
인민폐 100위안(한화 18,000원)을 손에 쥐어주시며 엄마는 집으로 돌아가셨다. 걱정을 하시는 눈치셨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해낼 거라고 생각하셨는지 얼른 차 빼야 한다며 뒤도 안 돌아보고 가셨다.
여행을 떠나기 일주일 전, 통장에 30만 원도 남지 않았는데 청도 경유 베이징 티켓이 나온 것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구매했다. 불과 몇 달 전, 전역하고 남은 전재산 120여만 원을 가지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이 돈으로 세계일주를 떠나는 것은 택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일을 저질러버렸다. 이건 진짜 실화다.
말이 좋아서 세계일주지, 당장 있는 돈으로는 일주일도 버틸 수 없었다. 며칠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한 잔액이 15만 원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공인인증서도 설치를 안 하고 와서 인터넷 뱅킹으로도 확인을 할 수 없으니 떠나기 전에 잔액이라도 확인을 해야 했다.
“73,432”
절망스러운 숫자였다. 순간 두려움이 엄청나게 몰려왔다. 내가 지금 가진 전부였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신용카드를 만들 수 없어 빚도 질 수가 없었고 가진 것이라고는 현금으로 인민폐 100위안과 통장잔고 73,432원이 전부였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을 하는 꼴이었다.
“(혼잣말)...너 정말 미쳤구나.”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인해 멍한 표정으로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이게 정말 될까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몰려왔다. 머리로는 두려움이 몰려왔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평온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우선 할 수 있는 데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목적지 베이징은 나의 제2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베이징은 여행을 목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삼촌이자 스승이셨던 목사님을 만나 뵙고 여행을 출발하고 싶었다. 그래야 이 말도 안 되는 여행을 꾸려나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적어도 일주일간은 지낼 곳이 있었다.
그 이후로는 곧바로 기차를 타고 홍콩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곳에는 나의 오랜 홍콩 친구 천인옌이 살고 있었다. 세계일주를 떠나기 전, 그녀에게는 내가 그곳으로 간다고 이미 이야기를 전한 터였고, 그녀는 부담 갖지 말고 오라고 했기에 적어도 홍콩까지는 갈 곳이 있었다.
“그래, 최소한 한 달이라도 좋으니까 동남아 땅이라도 밟아보자, 그 이후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는 거야.”
대책이 없다는 것은 알았다. 그렇다고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저 우선 베이징에 계신 삼촌 댁에서 일주일동안 있으면서 천천히 생각해보는 수 밖에. 그렇게 나는 중국동방항공을 타고 첫 번째 여행지 베이징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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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글 폴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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