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카메라 1대, 4년된 맥북, 옷 3벌, 바지 2벌, 속옷 4벌
현금카드 1개와 잔고 73,432원
"여행 경비도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여행을 하겠다는거냐. 밥을 먹을 때도, 이를 닦을 때도 돈이 필요한데..."
여행을 떠나기 전, 아버지께서 걱정하시는 투로 말씀하셨다.
"사진 찍으면서 그냥 어떻게든 버텨볼게요."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정말 어찌해야할 지를 몰랐다. 사진으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이유도, 사진작가로 살아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당시 내가 여행을 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이 사진 말고는 딱히 생각난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사진을 잘 찍는 것도 아니었다. 여행을 출발한 지, 3년이 넘게 흐른 지금, 그 당시 찍었던 사진들을 보면 정말 얼굴을 들기 힘들 정도의 수준이었으니까. 단지, 사진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게도 당시 사진이 내게 주었던 특별한 감정 때문이다.
[군생활, 사진이 내게 준 추억]
27살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갔지만,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며 후회없는 시간들을 보냈다. 울며 겨자먹기로 기중기운전병으로 입대를 해서, 군생활 내내 번역을 하며 지냈던 이야기, 책만 180권을 넘게 읽고 독후감 80편을 써서 포상을 받은 이야기, 밴드를 구성해서 포상만 3번을 받은 이야기 등등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생뚱맞게도 사진과 관련이 있다.
당시 나는 사진병도 아니었지만, 군내 교회에서 우연히 사진을 자주 찍었다. 뿐만 아니라, 부대 카메라가 아닌 내 개인카메라로 군생활 내내 사진활동을 했다. 단순히 찍는 것만으로는 아쉬워, 휴가 때마다 사비를 들여 사진을 인화하여 찍힌 장병들에게 주기도 했다. 당시 사령관과 여단장이 이를 기특하게 생각해, 부대 내에서 행사를 진행할 때 종종 초대되어 촬영을 하기도 했고, 심지어 파견을 나가 대대장 이취임식까지 촬영을 한 적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전역 전, 함께 지낸 중대원들의 사진을 찍어 각자의 전역일이 기록된 맞춤달력을 선물했을 때다. 대부분 전역을 할 때면, 중대원들이 전역 축하선물을 해준다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내가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당시 나의 마지막 병장월급은 15만원.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중대원들의 사진으로 특별한 달력을 만들어 주기로 결심했다. 부대 내에서는 특별한 허가가 있지 않으면 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 때문에, 사진을 찍으려면 교회를 나가야 했다. 말년 휴가를 나가기 전, 나는 중대원들을 교회로 초대하여 사진을 찍어주었고, 휴가 중 찍은 사진들로 직접 디자인해 달력으로 제작했다.
부대에 돌아와서 중대원들에게 달력을 나누어주며 아이들의 좋아하는 표정을 보았을 때, 그 때 감정을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타부대원들도 와서 참 부러워했고, 어떻게 대대장님의 귀에 까지 들어가게 되어 전역신고날 당시 큰 칭찬을 받았다.
"좋은 일을 했으니, 정현이의 소원 하나를 들어줄까 하는데..."
대대장님께서 갑자기 뜻 밖의 제안을 하셨고, 그 순간 무언가 내 머리를 스쳐가며 나도 모르게 이렇게 대답했다.
"대대장님, 가능하다면, 제 카메라가 부대교회에 있는데, 제 카메라로 부대 내에서 함께 했던 간부 및 병사들과 마지막으로 기념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대대장님은 고민을 하시다가, 부대 내 보안시설을 피해서 찍는 조건 하에, 그렇게 하라며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덕분에 나는 전역 전날, 추억이 깃든 부대 안에서 친하게 지냈던 장병들과 마지막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막연히 사진을 찍으면서 세계여행을 하겠다고 다짐한 이유도, 군대에서 마지막 순간에 느꼈던 좋은 감정 때문이다. 사진이 찍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누군가가 나의 사진으로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참 좋았다.
그것이 내가 사진으로 세계여행을 하겠다고 다짐한 이유다. 결코 작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 단지, 그 행복한 기분을 여행을 통해 이어가고자 했을 뿐이다. 여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 선물해준다는 생각만으로도 설레고 즐거웠다.
[내 자신과 한 약속]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 내 자신과 한 약속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여행을 하며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며 여행을 한다. 절대로 수익을 내지 않는다.
둘째, 자발적인 타인의 도움은 '감사하게' 받는다.
셋째, 이 약속을 1년간 지켜내면, 평생 사진을 찍으며 살겠다.
아버지는 돈도 벌지 않고 어떻게 여행을 하냐고 걱정을 하셨다. 나도 물론 걱정이 됐다. 하지만, 형편없는 실력으로 돈을 벌 자신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내 자신과의 싸워보고 싶었다.
나는 20대 학창시절을 제외하고는 영어강사로 지냈다. 영어강사로 지낸 이유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중국유학을 9년을 했는데도 중국어가 아닌 영어강사를 했던 이유는 당시 영어강사가 더 돈이 됐기 때문이다. 20대의 나는 그럴듯한 스펙과 물질적 성공을 탐닉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다 나를 떠나고 나니, 그것들이 결코 나에게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풍족할 때 옆에 있던 사람들은, 풍족함을 잃고 나니 자연스럽게 내 곁을 떠나갔다. 나에게 멋진 후광이 있을 때 다가왔던 사람들 또한, 그것을 잃고 나니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내가 위와 같은 약속을 한 이유는 단순하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가장 좋아한다. 나도 예외없이 그렇다. 하지만 돈보다 좋아하는 무언가를 발견하면 그곳에 행복의 단서가 있을 것 같았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다. 돈이 있어야 숙식도 해결할 수 있고 다양한 경험도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돈이 없었다. 고로 숙식도 해결할 수가 없고, 다양한 경험도 할 수 없었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불행한 여행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내 자신과의 밑바닥 싸움에서 나를 직면해보고 싶었다. 정말 돈이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 가운데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꼭 사진작가의 삶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살아갈 결정적 단서라도 있지 않을까. 그런 심정으로 나는 여행을 떠났다. 처음 나에게 사진은 그저 여행을 위한 '수단' 에 불과했다.
그렇게 나는 첫 번째 여행지 중국 베이징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의 사진을 찍으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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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글 폴작
작가블로그 walking-st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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