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첫 번째 기회

by 폴작가

"네가 온다면 학생들 졸업 촬영을 조금 앞으로 조율할 수도 있다."

사진으로 세계여행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삼촌께서, 베이징에 온 김에 자신이 운영하시는 학교의 학생들 졸업사진을 찍어보라는 기회를 주셨다.

사진으로 세계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다들 내가 사진을 매우 잘 찍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여행을 하며 무료로 사진을 찍어준 이유는, 내가 돈 받고 사진을 잘 찍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을 뿐, 결코 전문가가 아니었다. 보정은 커녕 포토샵도 전혀 사용할 줄 몰랐고, 조리개가 무엇인지, 셔터스피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진 문외한이었다.

그렇다. 나는 여행비용 뿐만 아니라, 사진을 잘 찍을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로 여행을 출발했다. 정말 그야말로 최악일 수 밖에 없는 나의 모습이었다. 그 때는 나름 만족하면서 찍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창피한 사진들로만 가득한 나의 흑역사이다. 도대체 뭘 믿고 그랬는지 모르겠다. 낯짝이 참 두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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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우왕좌왕]

학생들은 서로 이쁘게 찍겠다고 화장을 하고 난리가 났다. 나에 대한 기대심으로 가득찬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그야말로 처음 마주하는 상황에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말이 좋아서 사진으로 세계여행이지, 첫 촬영부터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몇몇 사람들과 스냅이라는 것을 아주 조금 찍어봤지만, 인원이 많은 졸업사진은 또 어떻게 담아야 할지를 몰랐다. 어떻게 사람들을 세워야 하고, 무엇을 담아야 하며,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없애야 하는지 전혀 생각할 틈이 없었다.

"여기 보세요~ 하나, 둘, 셋, 찰칵!"

이렇게 찍으면 되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학생들 중 누군가는 이유도 없이 시선을 돌리기도 했고, 갑작스럽게 하품을 하기도 하는 둥, 대열이 흐트러지고... 머리가 하얘졌다.

학생들의 시선이 떠나지 않도록 이끌 수 있는 카리스마도 필요했고, 찰나의 순간이지만 나에게서 모두가 시선을 떠나지 않는 그 순간에 셔터를 눌러야 하는 집중력도 필요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작업이었다.

나의 모습이 답답하셨는지, 삼촌께서 직접 학생들을 진두지휘하시며 대열을 정리해주셨다. 확실히 평생을 학생들을 가르치시며 살아오신 분이라서 그런지 대열정돈이 빠르셨다. 사진기술이 좋다고 해서 사진을 잘 찍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다. 사진기술도 중요하지만 사람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단순히 셔터 만을 누르는 일이 아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들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촬영이었다.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오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다음에는 어떠한 시각들을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한 기대감으로도 부풀어 있던 시간이었다.

촬영은 내가 했지만 사진은 결코 혼자서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결과물이 아니었다. 외삼촌께서 나에게 이런 기회를 주지 않으셨다면, 학생들이 시종일관 나에게 미소를 지어주려고 노력해주지 않았다면, 촬영을 위한 이런 멋진 환경들이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결코 아무런 결과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부족한 나의 사진 실력이 그나마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함께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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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

"신세를 지면서 하는 여행인만큼, 늘 사람들에게 네가 먼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다녀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지금 당장 여행을 그만두는 것이 낫다."

베이징에 도착하자마자 삼촌께서 해주신 말씀이다. 오래간만에 찾아뵙는 삼촌댁이었는데 아무런 선물 하나 준비해가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선물을 살 수 있는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나의 전재산은 한화로 10만 원이 채 못되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았을 때, 나는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드리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부족했다는 것을 알았다. 전문사진가도 아니면서, 그저 학교 졸업사진을 찍어드리니까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교만하고 무례한 생각이었다.

이론적으로 10만 원으로 세계여행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10만 원에서 3만 원 정도를 누군가를 대접하는데 쓰더라도 사실 달라지는 것은 크게 없다. 3만 원이 모자라서 세계여행을 포기해야 한다면, 애시당초 출발부터 하지 말았어야 했다.

세계여행에 있어서 10만 원이라는 돈은 아낀다고 해서 여행을 더 할 수 있는 그런 자금이 아니다. 아무리 아껴도 10일도 버티지 못하는 소액인데, 아무런 이유나 목적이 없으면서 여행을 3일 더 한다고 달라질 게 무엇이 있겠는가.

왜 여행을 떠나는지에 대한 생각보다, 어떻게든 이 여행을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냥 무조건 좋은 대학을 가야하고, 무조건 좋은 어학성적을 받고, 무조건 어디를 가야한다라고 생각했던 20대 초반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실제로 내가 여행을 출발하기 전, 어떻게든 후원을 받기 위해 클라우드 펀딩과 기업후원을 진행했다. 하지만 결국 모든 기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난 그 이유를 몰랐다. 시간이 흘러, 왜 그 때 내가 실패를 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세상 어떤 사람도 아무런 이유없이, 구걸의 열정만을 가진 사람에게는 마음도 열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받기 이전에,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까를 고민해야 했고, 거기에 해답의 실마리가 있었다.

삼촌 말씀대로,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지 못하는 여행이라면 사실 그만두는 게 나았을 것 같았다.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한 여행이라면 그만 두는 것이 나아보였다. 하지만 이미 베이징까지 날아왔는데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을 아무런 이유 없이 아끼지 않기로 다짐했다. 지금 당장 가지고 있는 돈을 써서 여행자금에 타격이 가더라도, 써야 할 돈이라면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여행자금이 결국 바닥을 쳐서 한국을 가야 된다면 그때는 나의 자존심을 버리더라도 집에 돌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상대방보다 턱 없이 가진 것이 적을 지라도 내가 먼저 대접하려는 연습은 이 날부터 시작된다. 비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 전부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많은 나라를 가보지 않아도 좋다. 많은 경험을 해보지 않아도 좋다. 그냥 여행을 하면서 타인에게 이로운 사람이 되어보고 싶었다. 내가 여행을 떠나온 이유는 진정한 나를 발견하기 위함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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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글 폴작
작가블로그 walking-studio.com
작가인스타 @walking_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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