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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을 거닐다 Dec 30. 2019

여행자의 윤리(1)

II. 길 위에서

여행자의 일탈 vs. 현지인의 삶


라오스의 비엔티엔에서 출발한 미니밴에 몸을 싣고 방비엥으로 향한다. 사실 나는 방비엥에 갈까 말까 고민했었다. 한국에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시청했던 여행 프로그램 (EBS 세계 테마 기행)에서 본 방비엥의 느낌은 서양 젊은이들이 흥청망청 일탈하며 노는 장소로 느껴졌다. 논다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싼 값으로 자기네 나라에서 못해 본 기행과 일탈을 일삼는 곳으로 여기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런 모습에서 불편감이 느껴졌고, 내가 굳이 방비엥을 가야 하나 회의가 생겼다.  


태국의 카오산 로드도 비슷한 느낌의 장소이지만, 그곳에서는 불편함이 덜 했다. 이유는 카오산 로드는 도시에 위치해 있고, 주거지라기보다는 상점 위주의 거리였기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위화감이나 불쾌함을 덜 주겠다 싶어서였다. 그러나 방비엥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리 잡은 현지인들이 사는 주거지인데, 그 속에서 행여 여행자들이 자연 파괴와 고성방가를 일삼으며 현지인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에 거부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카오산로드에서 만난 말이 잘 통했던 여행자 제이크와 그 이후 가끔 페이스북 메시지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제이크도 방비엥을 몇 번 가봤지만 그곳이 싫다고 했다. 여행자들이 할 일 없이 누워서 TV나 보고 술이나 마시며 흥청망청하는 게 꼴 보기 싫다는 것이었다.


돈뎃에서 방비엥으로 갈까, 루앙프라방으로 갈까 고민하다 어차피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길에 방비엥이 있고, 방비엥을 싫어하는 것도 내가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해 보고 나서 결정하는 것이 옳다 싶어 방비엥에 가보기로 했다. 비엔티엔에서 방비엥으로 가는 길은 험했다. 굽이굽이 산속으로 들어갔고, 길은 포장이 안되어 울퉁불퉁. 차는 덜컹덜컹. 덕분에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풍경은 아름다웠다. 가는 길이 불편하다는 것과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점이 아이러니하게도 방비엥을 좋아하게 된 첫 번째 이유가 되었다. 드디어 방비엥에 도착. 멀리 마을이 보인다. 깎아지른 듯한 산세가 특이하다. 마치 중국 계림에 온 듯한 느낌이다. 알고 보니 방비엥의 특이한 카르스트 지형은 계림을 닮았다 하여, '소계림'이라고 불린단다. 이 모습에 반해 방비엥이 또 좋아진다. 이것이 방비엥을 좋아하게 된 두 번째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흥청망청한 여행자로 가득 찬 거리에 대한 걱정은 비수기라는 시기 상의 '이점(?)'으로 완전히 일소되었다. 적막하리만큼 조용하고 한산한 거리가 내 마음의 안식을 주었고, 덕분에 아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내게 방비엥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작은 시골마을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그래서 결론은 방비엥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저녁에 아주 작은 규모의 여행자들이 바에서 고성방가 하는 모습을 간간히 목격하기도 했다. 방비엥은 너무 작은 동네라 관광지와 거주지가 구분되지 않는 곳이다. 술과 마약에 취한 여행자가 소란을 부리는 길 옆으로 동네 꼬마가 지나가고 있었다.


이건 비단 해외여행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국내여행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곳으로 여행을 가든지 그곳은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리 그곳이 관광으로 먹고사는 곳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삶을 방해할 권리까지 파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행지의 개발 vs. 잃어버린 풍경


비 오는 어느 날 이른 아침 눈이 떠져 아침 산책으로 메콩강가로 나가본다. 아쉽게도 강가는 모두 리조트, 게스트하우스, 레스토랑이 점령해 버려 발 디딜 공간이 거의 없다. 강가의 아름다운 풍경은 돈을 지불하고 이곳에 기거하는 여행자들의 몫으로 넘어간 듯하다.


이런 풍경은 방비엥 외에도 많은 여행지에서 발견된다. 강과 바다의 풍경은 여행자들을 위한 유료시설로 가려진다. 자연스레 현지인들은 이 풍경에서 배제된다. 강에 인접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풍경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리면서도 마음이 불편한 이유이다.





체험 vs. 현지의 문화 존중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의 독특한 아침 풍경. 매일 아침 새벽 5시 40분경부터 시작되는 탁발 행렬이다.

여행자들은 이 주홍빛 행렬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눈을 비비고 나온다.


승려들이 걸식으로 의식(衣食)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불교에서 출가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규율인 12 두타행 중 걸식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발(鉢)이란 음식을 담는 그릇인 발우를 가리키는 것으로, 따라서 탁발이란 걸식하여 얻은 음식을 담은 발우에 목숨을 기탁한다는 의미이다. 수행자에게 탁발을 생활수단으로 할 것을 규정한 것은 그들이 상업활동은 물론 어떤 생산활동에도 종사할 수 없다는 현실적 필요에서였다. 그리고 수행자로서는 탁발을  통하여 수행의 가장 큰 적인 아만과 고집을 없애고, 보시하는 쪽으로 보면 선업을 쌓는 공덕이 되기 때문이다.  (출처:두산백과)




루앙프라방 산책을 하다가 발견한 탁발에 대한 안내 문구이다. 첫날 탁발을 구경하고 나서 다음번엔 직접 참여해 봐야겠다 생각했는데, "Make an offering only if it is meaningful to you."라는 문구를 보고 나서 보시하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결국 나는 어떤 종교적인 또는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참여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저 여행 중 경험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체험으로만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고 직접 참여하겠다는 생각은 접었다. 이것이 여행자로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책임감 있는 윤리적 태도라 생각했다. 물론 참여하는 내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참여하는 것인지 다른 사람들이 알 길은 없겠지만 말이다.


여행에서 다양한 것을 체험해보는 것은 여행자의 특권이다. 그러나 그 체험도 현지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수용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여행은 나를 확장하는 경험이지 타인을 침범하는 행위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타문화를 존중하기 위해 나의 경험을 제한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나를 확장하는 경험의 기초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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