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길 위에서
정신없이 시간에 쫓겨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처럼 바쁘게 살아온 대가로 그동안 고이 아껴서 잘 감아왔던 자유로운 시간의 실뭉치들을 언젠가는 조금씩 풀어가며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많은 과제들 때문에 시달리는 일 없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살 수 있는 그런 자유로운 시간을. 하지만 우리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이 과연 그렇던가? 이상하게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고군분투하는 피곤한 삶으로서 해방될 순간을 항상 고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항상 뭔가 결핍된 듯한 갈등 속에서 쉼을 얻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독자들은 내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게 될 ‘느림’이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삶의 선택에 관한 문제라는 점을 곧 이해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느 한 기간을 정해 놓고서 그 안에 모든 것을 처리하려고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시간에 쫓기지 않는 그런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모든 것이 우리를 서두르게 만들고 있는 이 사회, 그리고 우리가 자발적으로 그 요구에 따르고 있는 이 사회 속에서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과제이다.
느림이라는 태도는 빠른 박자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또한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어떤 부자가 바닷가에 놀러 갔다가
한 어부가 자기 배 곁에 드러누워 빈둥빈둥 대는 것을 보고 알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왜 고기잡이를 안 나가시오?
"오늘 몫은 넉넉히 잡아 놨거든요."
부자가 다시 물었다.
"더 많이 잡으면 되잖소?"
이번에는 어부가 부자에게 물었다.
"그래서 뭘 하게요?"
부자가 대답을 했다.
"돈을 더 벌 수 있지요. 그러면 더 큰 배를 살 수 있고, 그러면 거기서 번 돈으로 좋은 그물을 갖출 수 있고,
그러면 또 더욱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어서 그만큼 돈을 많이 벌게 되지 않겠소?
그럼 얼마 안 가서 어선을 한 척 더 살 수 있겠고...
그러다가 어쩌면 거대한 선단까지 거느리게 될지도 모르지요.
그렇게 되면 당신도 나처럼 큰 부자가 되는 거요."
그러자, 어부가 부자에게 물었다.
"그러고 나서는 또 뭘 하지요?
부자가 대답을 했다.
"다음에는 편안히 쉬며 삶을 즐길 수 있지요."
어부가 부자에게 물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그거지 않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