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길 위에서
사흘에 걸쳐 캄보디아 씨엠립의 앙코르 유적지를 돌아다녔다. 마지막 날, '따솜'이라는 작은 유적지에 갔다.
이곳은 '따프롬'(안젤리나졸리 주연의 툼레이더 배경이 되었던 곳)과 유사하게 고프라(탑 형태로 된 출입문) 위에 거대한 보리수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유적 하나만 보러 가기에는 거리 대비 효용은 적어 사람들이 많이 오지는 않는 곳이다. 나 역시 교외에 있는 다른 유적지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르게 되었다.
늦은 오후. 아니나 다를까 사람이 거의 없다. 고푸라 앞에서 사진을 찍고, 앙코르 유적에서 흔하지 않은 그늘을 발견하고 잠시 쉬어 갈 겸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이곳에서 기념품을 팔던 소녀 한 명이 내게 다가와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앙코르 유적을 다니다 보면, 너무나 자주 기념품을 파는 아이들과 만나게 된다. 엽서나 자석(냉장고에 붙이는 기념품), 팔찌, 스카프 등을 바구니에 담아 천으로 만든 끈으로 어깨에 메고 돌아다니며, "Please, Just 1 dollar. Buy a postcard. 10 pieces.."라고 말하며, 기념품을 하나 사달라고 끈덕지게 조른다. 눈망울이 너무 예쁘고 목소리도 나긋나긋 예쁘고 구슬프다. 하나 사주고 싶은 마음도 종종 생겼으나, 나는 장기 여행자. 여행 중 짐을 줄이고, 불필요한 물건은 절대 사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물욕 때문에 무언가 사게 되면 무거워진 배낭으로 내 몸만 고달프게 된다는 것을 이동할 때마다 처절하게 느꼈기에 아이들이 안쓰러웠지만 매번 거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안쓰럽다고 모든 아이들의 물건을 사 줄 수도 없는 법이다.
따솜에서의 이 소녀는 내 옆에 와서 앉더니 혼자 여행하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어디서 왔냐, 이름은 뭐냐 물어본다. 그러면서 자기 기념품을 하나 사달라는 거다. 엽서와 자석, 팔찌 등을 보여준다. 엽서를 꺼내서 하나하나 넘기며 이거 고향에 있는 친구들한테 주면 얼마나 좋겠냐고 한다. 내가 "I'm sorry. No."라고 말하니 약간 풀이 죽는다. 멀리 있던 또 다른 소녀도 다가와 같이 앉는다. 처음 온 소녀는 13살이고, 두 번째 온 소녀는 7살. 둘은 친구란다. 이 일곱 살짜리 소녀도 내게 기념품을 사달라고 조른다. 다시 한번 안 산다고 말한다. 이 소녀들도 이 참이 쉬고 싶은 시간인지 더 이상 호객 행위를 하지 않고 내 옆에 앉아 몇 가지 간단한 대화를 한다. 그러다 일곱 살짜리 소녀는 지루한지 도로 자신이 있던 곳으로 가 관광객을 기다린다.
처음 내게 온 소녀와 조금씩 이야기를 더 해 본다. 할머니, 엄마, 아빠, 동생 둘, 그리고 자신 이렇게 여섯 식구가 산단다. 내가 학교는 다니냐고 물어봤더니 다닌다고 한다. 지금은 방학이란다. 어떤 질문을 했더니, 자기는 영어를 아주 조금밖에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잘 모르겠다고 한다. 이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물건 팔기 위해 필요한 영어만 습득했을 테니 그럴 법도 했다. 말없이 쉬는데, 이 아이가 또다시 기념품을 하나 사달라고 슬며시 이야기한다. 내가 "내가 정말 필요한 거면 사겠는데, 지금은 필요하지 않아서 살 수 없어."라고 조금 단호하게 이야기했더니 엽서가 담긴 봉지 입구를 여민다. 단념하는 손 매무새이다. 그 여미는 손에 가슴이 아려왔다. 속으로 '그냥 하나 사 줄까? 어차피 여행 중 친구들에게 엽서 써서 보내주기로 했는데..'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엽서를 보내고 싶은 곳은 인도쯤이었기에 크게 내키지는 않았던 터다.
그러고 나서 내 옆에서 조용히 쉰다. 이 아이의 이런 태도가 참 마음에 들었다. 환경이 좋지 않아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풍족하지 않지만 풍겨져 오는 느낌이 예의 바르고, 똑똑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후원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아이가 생각났다. 이 아이도 그런 후원을 받으면 좋을 텐데...
"너 오늘 많이 팔았니?" 내가 묻는다.
"아니 오늘은 실적이 좋지 않아."
"몇 개 팔았는데?"
"3개."
이 아이는 적게 팔았다고 하는데, 난 3개란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 사주는 사람은 있기는 하구나 하고 약간은 놀라면서도 안도했다.
"그리고 여기는 사람이 많이 안 와." 이 아이가 덧붙인다.
"그래, 그런 거 같다. 그럼 사람들 많이 오는 앙코르와트나 앙코르 툼 이런 데 가서 파는 건 어때?"
"그럴 수 없어. 경찰이 각각 어디서 팔지를 정해줘."
"뭐라고? 경찰이?"
"응. 그리고 우리는 한 달에 15달러씩 경찰에게 돈을 내야 해."
"뭣이라? 헉 15달러? 경찰에게?"
이런 X 같은 경우를 봤나. 가뜩이나 국경 캄보디아 공무원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받았는데, 참 내 이런 꼬맹이들을 대상으로 자릿세나 처 받고. 너무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드는 생각이 관광객이 많이 오는 좋은 자리는 일종의 빽을 이용하거나 웃돈을 받고 내어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소녀에게 물었다.
"그럼 경찰은 너희가 어디서 팔지 장소는 어떤 식으로 정하는 거야?"
소녀는 내 이 질문을 잘 이해 못하는 듯했다. 자기는 영어가 짧다며 미안하다고만 한다. 조금 더 쉽게 풀어서 물어보니 자기는 잘 모른단다. 그냥 경찰이 어디 가서 팔라고 하면 거기서만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어린 네가 그런 부패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어찌 알겠니...모르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 싶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도 그렇고, 이 소녀랑 이야기를 나누면서 감정의 교류가 이뤄졌다고나 할까... 여러모로 마음에 들어 엽서를 하나 사주고 싶어 진다.
그래 어떤 엽서면 어떻고 지금 보내면 어떻냐. 또 짐이 되더라도 내가 감당하기로 하면 될 터...
"저기, 나 엽서 하나 살게."
아이가 흠칫 놀라는 눈치다. 포기했는데, 웬 일?
"어떤 게 좋을까? 네가 골라줘 봐."
10개 들이 엽서는 구성이 비슷비슷했지만, 그래도 이 친구에게 골라달라고 부탁했다.
이 친구가 이런저런 엽서를 보여주더니 하나를 제안한다. 나도 그게 좋겠다고 한다.
악수를 청하고, '공부 열심히 해라'는 말을 할까 하다가 대신 "행복해!"라고 말해 주었다.
굿바이 인사를 하고 뒤돌아 오는데, 한편으로는 그 친구에게 물건을 팔아주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저 아이가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면 더 좋을 텐데라며 마음이 쓸쓸했다. 그러나 이건 단순히 내 눈으로 바라본 걱정일 수도 있겠다. 누구나 자기 조건에서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고, 저 소녀도 소녀 나름대로 삶을 꾸려 나갈 테니.
앙코르 유적 '따솜'에서 만난 소녀들. 왼쪽이 7살, 오른쪽이 13살. 오른쪽 큰 아이가 나와 대화를 나누던 아이. 이 아이의 단정하고 기품 있는 몸짓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모든 인물 사진은 블로그에 게시할 거라는 양해를 구하고 찍었음을 밝힙니다.)
나파하이 호수를 지나 눈 앞에 불현듯 펼쳐지는 고산 초원. 정신이 아득해지고 눈이 황홀해진다.
(https://brunch.co.kr/@walkinmind/13 자연과 풍경이 주는 황홀감)
아침에 출발했는데, 벌써 점심때가 훌쩍 지났다. 출발할 때 이렇게 큰 호수라고 생각을 못 해서 먹을 것도 안 챙겨 왔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도심이 다시 나올까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니 20Km는 더 가야 한단다. 허거걱... 지나가다 식당 비슷한데라도 나오면 끼니를 때우고 가야겠다 생각했지만, 끝없이 펼쳐진 길에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얼만큼 왔을까, 저만치 앞에 작은 구멍가게가 보인다. 저기 가서 빵부스러기라도 집어넣고 가자란 생각에 발길을 멈추었다.
들어가 보니 빵 종류는 없다. 컵라면을 발견하고, 비록 내가 좋아하는 맛은 아니지만, 요기를 할 겸 여기서 먹을 수 있는지 물어본다. 예쁘게 생긴 젊은 엄마(진짜 미인.. 사진을 못 찍은 게 아쉽다)와 두 딸이 함께 있었는데, 첫째 딸이 컵라면을 먹을 수 있다고 대답한다. 제대로 의사소통한 게 아니라, 얼굴 표정과 손짓으로 겨우 소통했다. 나는 당연히 뜨거운 물이 구비되어 있는 줄 알고, 돈을 지불하고 앉아 기다리는데 엄마가 첫째 딸에게 뭐라 뭐라 말을 하더니 그 아이가 나무를 가져다 불을 지피기 시작한다.
'어머나, 물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이제 불 지펴서 끓여야 하는 것이야?' 허거걱...
이제 와서 괜찮다고 말은 못 하고, 급한 일도 없는데 기다리지 뭐.. 하며 구들장에 앉아 기다린다. 불이 잘 안 붙는지 첫째 딸이 안간힘을 쓴다. 그러자 좀 있다 엄마가 와서 나무를 더 넣고 불을 지피는데, 그 또한 여의치 않은지 밖에 나가서 장작을 패기 시작한다. 아이고... 기다리는 건 둘째 치고, 괜히 나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 호도협 간이매점에서 10위안 주고 사 먹었던 같은 컵라면인데, 여기서는 컵라면 값만 받는지 5위안을 받았다. 나 때문에 고생하는데, 5위안 더 얹어줄까 하다가 그렇게 하는 것은 이 사람들의 경제논리와 순수성을 훼손시키고 상업성을 조장하는 일이 될까 봐 그리고 돈으로 보상하는 것은 어쭙잖은 배려와 더 나아가 무례한 일인 것 같아서 달라는 대로 5위안을 지불한다. 라면 먹고 나갈 때 아이들한테 과자라도 사서 줘야겠다란 생각을 한다.
불을 지피는 것만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려서 물이 끓기까지 40분가량 기다리게 되었다. 기다리고 있는 내 옆에서 작은 딸이 알짱거리며 논다. 하는 행동이 귀여워, "사진 찍어도 되니?" 물어보니, 새침한 표정을 지어준다.
낱개로 포장된 요거트 젤리를 하나하나 뜯어먹고, 그 플라스틱 용기로 장난감 삼아 논다. 수를 세기도 하고, 탑을 쌓기도 하고, 기차를 만들기도 하고, 짝을 지어 기하학적인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관찰하고 있노라니 이 아이 참 창의적이다. 그러고 보면 장난감이란 게 별거 있나 싶다. 비싼 장난감이 아니어도 이리 창의적이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데 말이다. 풍요로운 장난감 속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장난감을 갈아치우는 아이들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장난감의 홍수 속에서 아이들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잃어가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처음에 내가 반응을 해 주며,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었더니 계속 내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내가 안 보고 있으면, '칸(看; 봐), 칸' 그러면서 보고 호응 좀 해달라는 거였다. 네가 지금 인정 욕구가 발달할 나이이긴 하지. ^^
(가게 내부. 아주 아주 작고 초라하지만, 내게는 따뜻함과 아늑함으로 기억되었던 장소)
결국 40분가량 걸려 라면 완성. 세상에서 제일 오래 걸린 컵라면이다. ^^ 맛있게 먹고 감사의 인사를 한다. 애들에게 뭘 사주면 좋아할까 해서, 작은 딸이 먹던 요거트 젤리를 찾는데, 그건 없단다. 애들 엄마는 내가 먹고 싶어서 그런 건 줄 알고, 그건 없다면서 미안해한다. (아마도 자기 딸이 먹는 거 보고, 이 손님도 먹고 싶었나 보다 생각했을 터) 대신 우리나라 카스타드와 비슷한 과자가 있길래 그걸 한팩 산다. 7위안이란다. 내가 그 과자를 아이들한테 주니, 애기 엄마가 그러지 말하며 한사코 말린다. 내가 바디 랭귀지와 중국어 단어를 나열하며 "내가 배고파서 죽을 뻔했는데, 여기서 라면 먹을 수 있어서 살았어. 고마워서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어서 그런 거야."라고 표시를 한다. 부담스러워하는 거 같아, 팩을 뜯어 한 개만 내가 갖고, 나머지는 아이들한테 주었다. 애 엄마도 더 이상 사양할 수 없는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맑은 표정도 표정이지만, 외모도 너무 예뻐서 연예인이 울고 갈 얼굴이다. 가족들이 창문 틈으로 나를 배웅하며 손을 흔들어준다.
(조금 가니 새로 깔린 듯한 도로가 나온다. 완전 급경사 오르막이다. 지나가는 차들이 부럽다. 그래도 어마어마한 호수를 다 돌고, 도심으로 갈 수 있어서 어찌나 다행인지)
경제적으로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곳을 여행하면서 여행자가 경계해야 할 것은 알량한 동정이나 연민의 마음이다. 그런 연민의 마음이나 시선으로 일회성 동정의 손길을 준다거나 동정의 말을 내뱉을 때 자신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런 연민의 배후에 어떤 우월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나 또한 앙코르 사원에서 엽서를 사준 것과 나파하이에서 과자를 사서 나누어준 행동이 연민에서 나온 것을 아닌지 자문해봤다. 그 아이들보다 내가 우월하거나 특권의식이 있어서 한 행동이라기보다 그들과 잠시지만 교류하면서 마음을 주고받았기에 이뤄진 일이다. 엽서는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산 것이고, 과자는 허허벌판에서 장작까지 패고 불까지 피워서 아사 직전의 나를 구해준 가족들에 대한 보답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연민이라기보다는 감사와 흐뭇함이었다.
주로 저개발국가로의 여행이었던 이번 여행을 통해 이런 시선과 윤리에 대해 성찰하고 배울 수 있게 되었던 것은 나로서는 큰 수확이었다. 비단 저개발국가의 사람들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나와 다른 타인들에게 대해 쉽게 동정하거나 연민하지 않는 태도, 그러나 공감하고 소통하려는 지향점을 갖추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와 관련해서 고백하건대 이 여행 전에 저개발국가의 아동에게 정기후원을 했을 때는 내 마음 한켠에 누군가를 돕는다는 우월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는 그런 우월감에 기반한 자의식이 완전히 사라졌던 것 같다. 내가 누구에게 후원한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매달 나가는 세금처럼 여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아동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기적으로 오는 편지나 사진으로 한 아이가 아동기 때부터 성인으로 독립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안심하지만, 대단한 가슴 뭉클함이나 감동 같은 것은 사실 없다. 우연히도 나는 조금 풍족한 땅에 태어났고, 또 누군가는 우연히도 덜 풍족한 땅에 태어났을 것이다. 그런 누군가에게 아무런 연민 같은 것 없이 풍요로운 땅에서 태어난 운으로 얻은 내 몫을 그저 의무처럼 아주 조금이나마 나누는 것뿐이라고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