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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을 거닐다 Feb 05. 2020

문화적 오만함을 깨우친 네팔 축제

II. 길 위에서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마칠 때쯤 띠하르(Ti har) 시즌이 되었다. 띠하르는 네팔의 큰 축제 중 하나로 힌두교의 락슈미 여신을 숭배하는 종교 축제이다. 축제는 산골마을에서도 예외는 아닐 터, 내려오는 마지막 날에 '레썸 삐리리'라는 후렴구가 들어간 민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길목에서 '레썸 삐리리'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서로의 팔짱을 끼고 길을 막아서는 아이들 때문에 지나가는데 곤혹을 겪게 되었다. 아이들의 요구는 꽤나 끈덕지고, 팔짱은 어찌나 단단하던지... 포터인 오르준이 아이들을 제지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때는 이런 행동을 축제와 연결 지어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초콜릿, 사탕, 때로는 돈을 요구하는 행동으로 바라보며 아이들의 행동을 개탄해했다.  


길을 같이 걷던 마크에게 내가 말한다.
"저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지만, 한 번 두 번 돈을 주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그런 구걸에 익숙해지고 그런 삶에 종속되게 될 거야. 그들에게 돈을 주는 것은 그들을 돕는 현명한 방법이 아니야."

그러면서 내가 후원하고 있는 네팔 소녀가 떠올랐다. 그래서 마크에게 덧붙인다.

"저 아이들을 보니 내가 후원을 하고 있는 네팔 소녀가 떠오르네. 저 아이들을 도와주는 방법은 작은 돈이지만, 공부하고 기술을 익히도록 정기적으로 후원을 해 주는 것이 아닐까 싶어."

마크도 내 의견에 동의하며, 그 후원에 관심을 보였다.  
 

하산하고 포카라에 돌아와 일주일 지내는 동안, '레썸 삐리리' 노래를 부르며 상점과 여염집 문 앞에서 단체로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며 돈을 요구하는 아이들을 계속 보게 된다.  때는 10월 말, 크리스마스처럼 형형색색의 전구를 상점과 집집마다 달아 놓는 모습을 보며 크리스마스, 그리고 할로윈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꽝'하고 머리를 치는 생각, '아... 혹시 저렇게 노래를 부르며 돈을 요구하는 것이 마치 할로윈 때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사탕과 초콜릿 등을 걷으러 다니는 서양의 풍습과 유사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내가 머무르는 숙소 1층에서 등산용품점을 하는 라즈에게 물었더니, 띠하르의 풍습 중 하나로 아이들은 이렇게 모은 돈이나 먹거리를 가지고 축제가 끝나고 소풍을 간다고 한다.    


그렇구나. 잠시나마 그들의 풍습을 가난한 나라 아이들의 구걸로 바라본 나의 문화적 무지함과 오만함에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서양의 할로윈 풍경에 집집마다 초콜릿과 사탕을 받으러 다니는 아이들을 불쌍한 눈으로 개탄하며 보는가?  설날  세뱃돈을 받는 아이들을 안쓰럽게 보는가? 나도 모르게 경제적으로 조금  풍요로운 나라 사람의 눈으로 그들의 문화를 너무 쉽게 속단해 버린 것이었다. 이것도 어찌 보면 일종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   있겠다.(비록 문자 그대로 하면  역시 동양인이지만, 우월한 관점으로 타국의 문화를 재단하고 단순화했다는 점에서 광의의 오리엔탈리즘이라 말할  있다.) 문화적 오만함과 무지함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산에서 대화를 나눴던 마크에게 우리의 잘못되었던 관점에 대해 이메일로 의견을 전했다. 그 화두를 꺼낸 것이 나였기에,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게 느껴졌달까.


시선을 바꾸니 그들의 문화가 있는 그대로 보였다. 그러자 산에서 그들에게 용돈을 건네주지 못한 것이 아쉬움이 되었다. 만약 다음번에 이 축제 기간에 네팔을 방문한다면 어른으로서 나 역시 그들에게 소풍 갈 돈을 조금 보태주고 싶다.  어디서나 축제는 즐겁고 흥겨운 법이니까... ^^


타문화에 대한 존중과 수용의 태도를 나름 갖췄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던 것이다. 천천히 머무르며 체험하고 바라보고 돌아보는 여행을 하면서 타문화와 더 나아가서는 타인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태도를 확장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물론 아직도 내 안에 내가 모르는 어떤 문화적 편견이나 자기중심성이 자리잡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깨어있으려 노력한다. 타문화와 타인에 대한 나의 시선이 옳지 않을 수 있고,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띠하르 기간 집 앞에 만들어 놓는 꽃장식
띠하르 기간 중 하루는 개에게 축복을 내리는 날이 있다. 개에게 꽃목걸이를 씌워주고, 이마에 바르는 붉은 칠인 띠까를 해줌
띠하르 기간 상점이나 집 앞에 형형색의 전구로 장식을 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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